어느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의 사장이 있다. 그는 유능하고 젊은 직원들과 해외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부하직원들이 재능은 있는데 상대적으로 이런 큰 기획을 처리해 본 업무경험이 부족한 게 걱정거리다. 그래서 과거 회사에 큰 공헌을 했고 경험도 풍부하지만 지금은 벌써 퇴사한 지 3년이 넘어가는 유명한 후배를 거론되며, 그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하여 '우리 회사로 돌아올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심지어 3월쯤에는 합류가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하며 기대치를 잔뜩 증폭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후배와는 사전에 아무런 협의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반전이다. 이미 오래전에 퇴사했고 업계에 공지까지 수차례 날렸는데, 지금은 사장이 된 옛날 직장 선배가 동의도 없이 이제와서 자꾸 자기 이름을 거론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 회사로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못박아 버린다. 직접 한번 만나보기도 전에 다양한 대화의 여지 자체가 막혀버린 셈이다.
난처해진 사장은 이제와서 '처음부터 후배에게 억지로 돌아오라고 강요할 생각이 없었다'고 변명한다.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차후에 또다시 유명한 후배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이 오면 회사 분위기에 악영향을 줄까봐 미리 매듭을 짓고싶었던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굳이 가만히 있던 후배를 먼저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논란의 불씨를 자초한 건 정작 사장 본인이다. 그것도 후배를 무조건 만나겠다는 것이나, 회사에 돌아올수있다는 가능성이나, 무엇 하나 당사자와는 사전조율이 되지않은 채 사장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린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
홍 감독의 소통없는 '일방통행'이 낳은 해프닝
여기서 사장은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고, 유명한 후배는 바로 박지성이다. 홍명보 감독은 최근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을 거론하며 팬들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박지성이 최근 공개적으로 '대표팀 복귀 불가' 입장을 재확인하며 말이 앞서간 모양새가 된 홍 감독의 처지가 자못 난감해졌다. 더구나 홍감독이 박지성 측과 그동안 아무런 사전조율이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지며 경솔한 언행이었다는 비판이 일고있는 상황이다.
최근 LA에서 전지훈련 중인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의 복귀설과 관련된 논란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박지성이 이미 대표팀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밝혔지만 팬들과 축구계에서는 아직 이 문제가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는 게 홍 감독의 입장이다.
덧붙여 "박지성이 3∼4월에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다시 대표팀 복귀 가능성에 대한 여론이 형성될수 있는데, 그때는 이미 최종엔트리 구성이 거의 완료될 시점에서 대표팀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수 있기에 미리 매듭을 짓고 싶었다"는 것이다.
홍 감독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가지않는 것은 아니다. 박지성의 복귀를 추진하든 안하든, 그 자체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신의 소신대로 판단을 내릴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홍 감독이 박지성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었다면 꼭 시간을 들여 직접 만나지않더라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있다고 봉화나 비둘기를 날려서 연락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간단한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히 오해의 소지는 없앨 수 있었을 것을, 굳이 언론을 통해 먼저 운을 띄우며 불필요한 엇박자를 자초한 건 홍 감독 본인이다.
만약 박지성을 반드시 직접 만나서 나눠야만 하는 대화가 있었다고 해도 박지성측과 아무런 사전조율없이 홍 감독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홍 감독이 아무리 박지성의 복귀를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변명해도, 대표팀 감독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여론몰이에 의한 강요도 비칠 소지는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박지성이 설사 대표팀 복귀에 대한 의지가 0.1%라도 있었다 할지라도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 정말 박지성에게 부담을 줄 생각이 없었다면, 조용히 서로의 의사만 확인한 뒤 그 결과만 차후에 밝혀도 무방한 사안이었다.
홍 감독은 논란이 벌어진 이후 박지성의 복귀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대표팀을 위해서' 박지성 문제를 빨리 매듭지으려했다는 식으로 해명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박지성이 여론의 압박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홍 감독이 대표팀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마땅히 자신이 짊어져야 할 부담까지 박지성에게 떠넘긴 것과 다름 아니다.
박지성은 이미 2011년 이후 대표팀 은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없이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박지성의 복귀에 대한 기대여론은 꾸준히 계속되어왔고, 아마 월드컵 직전까지도 그럴 것이다. 이에 대한 부담은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홍명보 감독이 당연히 감당해야할 몫이다. 박지성이 있건 없건, 대표팀 사령탑이 확실하게 팀의 중심만 잡고있으면 여론이 어떻든 흔들릴 이유가 없는 사안이다.
홍 감독이 정말 박지성의 선택을 존중했거나, 대표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과정이 필요했을까. 홍 감독의 언행은 대중들에게 '자 봤지? 박지성 복귀에 운을 띄워봤는데, 선수가 먼저 싫다잖아. 그러니 박지성이 돌아오지않아도 우리 책임이 아니야"이라는 식으로 박지성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려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제스처에 가깝다.
대표팀 감독은 여론의 반응을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불필요한 언론플레이는 오히려 홍 감독이 이제껏 쌓아온 리더십에 흠집을 남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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