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상구의 아내 정임 역의 배우 윤유선이 24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 이정민 기자| 반도체 회사에서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딸과 그 딸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며 밖으로 고군분투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또 다른 시선이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씨 곁엔 아내이자 엄마인 그녀가 있었다. 극 중 이름은 윤정임, 그저 자식과 남편만 생각하던 필부가 영화에선 그토록 남편의 일을 반대하며 홀로 아픔을 삭이고 있었다.
바로 그 엄마 윤정임 역을 맡은 배우 윤유선은 "황유미씨의 부모님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 영화로 좀 마음을 달랠 수 있길 바랐다"며 출연의 변을 전했다.
사실 <또 하나의 약속> 출연 전까지 윤유선은 삼성 반도체 사건도 잘 몰랐고, 유족들이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 생각조차 못했단다. "이 영화를 통해 오히려 사람들이 한국을 신뢰 없는 사회라고 단정지을까봐 걱정도 있다"던 윤유선의 말을 짚어보면 그녀는 정말 우리네 보통 엄마로서 이 작품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상을 원망만 할 수 없어..."아이 잃은 엄마 마음 담으려 했다"
▲"얼마 전 제 친구가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었는데 그 친구의 마음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겠죠. 어쨌든 영화 속 엄마는 아픔을 견뎌낼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해야 하기에 그 부분을 가장 생각하고 임했어요."
이정민
이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투쟁하는 상구 역할의 박철민과 백혈병을 앓는 딸 윤미 역의 박희정, 그리고 이들과 함께 대기업에 맞서는 변호사 난주 역의 김규리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하지만 윤유선이 맡은 윤정임은 자칫 이 작품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제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극 중 엄마와 같을 거예요. 윤미 아버지처럼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기엔 딸을 잃은 상심이 크잖아요. 그런다고 죽은 아이가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원망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뭔가 개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갖고 있을 거예요.영화 촬영 전에 실제 유미씨의 어머님을 몇 번 뵀어요. 마음도 따뜻하시고 천상 엄마같은 분이시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짠했어요. 그분의 마음을 대사로 표현하기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죠. 얼마 전 제 친구가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는데 그 친구의 마음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겠죠. 어쨌든 영화 속 엄마는 아픔을 견뎌낼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해야 하기에 그 부분을 가장 생각하고 임했어요." 말을 꺼내는 윤유선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고 있었다. 당시 감정을 떠올린 윤유선은 "갑자기 딸을 잃은 게 아닌, 병으로 꺼져가는 생명이었기에 슬픔을 예감했듯 그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촬영장의 쓴소리 대왕..."영화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영화 촬영 전에 실제 유미씨의 어머님을 몇 번 뵀어요. 마음도 따뜻하시고 천상 엄마같은 분이시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짠했어요."
이정민
윤유선은 인터뷰 내내 함께 했던 스태프들 실력이 최고라며 한껏 목소리를 높였고,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박철민에 대해 "별로 혹하는 매력도 없는, 설레게 하는 남자 배우 느낌도 아닌 오래된 부부처럼 편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사실 윤유선은 현장에서 모진 소리를 종종 했던 '쓴소리 대왕'이었다고 한다.
"우린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공감이 갔지만 동시에 영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제작 여건이 어려워 시민 분들의 지원도 받았지만 전 종종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왜 밥만 먹고 촬영 안 해? 돈이 부족하다며?'라고 말하곤 했어요. 저 때문에 제작자 분들이 힘들었을 거고, 섭섭했을 거예요. 현장에서 반대 의견도 많이 냈어요. 나름대로 자극의 의미도 있었거든요. 우리 영화를 좀 폭 넓게 많은 분들이 봤으면 했거든요. 관객 스스로가 주변을 불편하게 하진 않는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지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으면 했어요."오랜 배우 생활 노하우?..."상처받지 말고 욕심내지 않기"
▲"저 때문에 제작자 분들이 힘들었을 거고, 섭섭했을 거예요. 현장에서 반대 의견도 많이 냈어요. 나름의 자극의 의미도 있었거든요. 우리 영화를 좀 폭 넓게 많은 분들이 봤으면 했거든요."
이정민
아역배우로 데뷔한 윤유선은 연기경력만 4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기도 하다. 스타성을 인정받으며 급격하게 주목을 받진 않았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대중들을 만나고 있었다.
"저 역시 부침이 있었죠. 20대엔 뭔가 열심히 안했어요. 연기가 재밌었지만 설레지 않았죠. 제가 키도 작고 배우로서 좋은 조건은 아니잖아요. 몸도 통통한 편이었고요. 그러다 저보다 예쁜 후배들이 주목받는 걸 보며 객관적으로 날 바라볼 수 있었어요. 뭔가 큰 역할만 원하지 말고 현장을 즐기자고 생각했죠. 아역 배우 출신이니 뭐, 엄청나게 커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어요. 시켜주면 감사한 마음? (웃음) 25살 때 이정국 감독님의 <두 여자 이야기>라는 영화를 하면서 연기의 행복을 느꼈어요. 그 전까진 그저 그랬는데 제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제 나이 들어 더 열심히 하고 있네요(웃음)."걱정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조언을 달라하니 윤유선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말에 상처받지 말고 연기하면서 욕심 내지 않는 게 도움이 됐다"며 윤유선은 "더디게 발전한다 느낄 수도 있지만 억지로 오지 않는 기회를 원하기 보다, 기회가 하나 왔을 때 성실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유선은 "<또 하나의 약속>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비슷해 보이는 엄마가 아닌 자신의 내면 갈등을 표현하고 외부와 조정해간다는 점에서다. 영화 홍보 활동과 함께 현재 윤유선은 SBS 일일드라마 <잘 키운 딸 하나>에서 장은성(박한별 분)의 엄마 주효선 역으로 출연 중이다. 또한 곧 이어 KBS 주말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 노쳐녀 교감 역으로 등장한다. 중년을 넘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 중인 셈이다.
삼성을 비판하는 영화에 출연했다고 우려할 법하지만 떨쳐내도 되겠다. 바삐 현장을 누비는 윤유선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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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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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엄마, 투쟁만 하고 있을 순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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