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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위한 변명, 참 대단하다

[리뷰] <엔더스 게임> 미국의 속죄와 평화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

14.01.02 14:05최종업데이트14.01.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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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더스 게임 포스터 엔더스 게임 포스터 ⓒ 이정훈


미국에서 28년간이나 베스트셀러였고, SF 소설의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 <엔더스 게임>이 동명 영화로 개봉됐다. 혹자에 의하면 쎈 어른들 영화에 어린 천재가 맞선 영화라고 했다. 또 어떤 혹자는 이 영화는 '엔더'라는 주인공의 성장 영화라고도 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미국을 위한 변명으로 가득찼거나 속죄와 평화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간 미국이 수행했던 수많은 전쟁에 대한 합리화로 점철되어 있었고, 이제 그런 과거는 잊고 평화를 위해 머나 먼 길을 떠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간 전쟁을 일으켜왔던 것은 이전 세대의 책임이었고 성장한 후에는 전쟁에 대한 속죄 의식을 가지고 평화를 위해 애쓰겠다는 다짐이었다.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엔더(아사 버터필드 분)는 50년 전에 이유도 없이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의 또 다른 침공에 맞서기 위해 어릴 때부터 군사 지도자로 훈련되어지는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형도 누나도 입학했었지만, 형은 폭력성 때문에 누나는 유약함 때문에 탈락하고 만다. 그러나 엔더의 재능을 알아본 그라프 대령(해리슨 포드)에 의해 모진 시험을 거치고 결국 전쟁의 최전선에 선 사령관이 된다.

영화 중간 중간에 어른으로 성숙하는 것 같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내 눈에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느껴야 하는 인간성에 대한 장치들이었다. 사령관이 되기 위한 경쟁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훈련의 한 일종이기도 했고 심리적인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이었기도 했던 마이드 게임에서 적의 수장을 만나는 장면들을 통해 적을 이해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는 인간성에 대한 변명으로 그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면서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표현이었다.

결국 이렇게 폭력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갖춘 사령관 엔더는 최후의 전투를 승리를 이끌었지만 한 종족을 멸종시켰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적의 우두머리를 만나 종족이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머나먼 우주의 길, 평화와 속죄의 길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유심히 살펴보면 헐리우드가 미국의 적을 유형화하는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적이 자신들을 침공한 이유가 확실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었고 자신들은 공격을 당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적들의 전투력은 자신들을 압도하지만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지고 있다.

할리우드가 미국의 전쟁을 미화하는 모습 또한 여전하다. 미국은 그들과의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을 싹쓸이 하는 것은 그 적들이 다시 전력을 회복하여 자신들을 침공할지도 모를 미래의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종족 멸종의 전쟁이라는 합리화이다.

그렇게 종족 멸종의 최전선에서 섰던 엔더는 여전히 가슴이 따뜻한 인간이라는 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적들을 이해하고자 하고 그들을 멸절 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결국 그들이 다시 회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른으로 성장해 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다.

미국은 방어전을 치렀을 뿐이고 그 와중에 일어났던 많은 살육들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만, 자신들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어떻게해서든지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언제, 어디가 될지도 모를 먼 여행의 길을 떠난다는 점을 부각 시킨다. 이전의 미숙성함을 버리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육체가 화려한 부딪히는 액션은 없지만 그간 미국이 수행했던 게임과 같은 전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쩌면 게임과 같은 전쟁을 우주로 옮겨놓아 환상을 주는 것 같지만 이 땅에서 벌어졌던 게임과 같은 전쟁의 실제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러한 미국 합리화의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영화다.

이 영화는 또 이렇게 미국을 위해 변명하는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속죄와 평화 이데올로기의 프로파간다를 위해서 말이다. 잘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http://www.ecumenian.com)에도 송고했습니다.
엔더스 게임 헐리우드의 이데올로기 헐리우드의 영화는 미국의 위한 선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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