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나정이를 좋아하는 칠봉이(유연석 분)는 TV에 나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뉴욕 양키스 요기베라의 명언을 언급하며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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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응답하라 1994>를 추동하는 동인은 바로 '나정이의 남편 찾기'다. 이것은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 주효했던 전략이기에, 보다 능수능란하게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떡밥을 던지며 유인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응답하라 1994>가 여느 멜로드라마처럼 주인공의 심리에 천착하며 관계를 추동 중이지는 않다. 회마다 한 계절을 건너뛰는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감정 선도 함께 건너뛴다.
지난겨울 한 해의 마지막 날 추운 터미널에서 나정이에게 입을 맞추며 사랑을 고백했던 칠봉이의 외사랑은 내내 대답이 없다. 나정이의 방문을 수시로 열어젖히며, 들락거리는 칠봉이에게 나정이는 그저 덤덤하다. 기껏해야 드러난 반응이란 게, "너랑 둘이서 뭐 먹으러 가지 않겠다"는 말로 친구 사이 이상을 넘어가지 않겠단 답을 13회에 이르러서야 시청자들은 겨우 얻어낼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 답답했던 것은 나정이가 그렇게 애태워하던 쓰레기의 반응이었다. 칠봉이가 신촌 하숙에 등장하고 나정이를 좋아하게 되기까지, 쓰레기는 나정이의 감정에 묵묵부답이었다. 오죽하면 쓰레기를 연기하는 정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부러 그의 감정을 누른다는 음모론이 퍼질 만큼.
계절을 건너뛰듯 감정 선을 잘라먹는 <응답하라 1994>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13회에 이르러 정우가 자신의 감정을 한껏 내보이고, 그걸 다시 칠봉이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맞받는 것처럼 제작진이 던진 떡밥을 언젠가는 회수하는 묘미 때문이다.
어쩌면 쓰레기와 나정이가 저렇게 한껏 키스를 하고도, 다음 회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개와 고양이처럼 아옹다옹하는 남매처럼만 그려질 지도 모른다. 그러다 또 성큼 곤충이 변태를 하듯 관계가 진전되고, 그렇게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기에 시청자들은 뻔히 알면서 <응답하라 1994>에 낚인다.
마치 그것은 '청춘의 열병은 교통사고와도 같다'는 문구를 되새기게 만들듯이 말이다. 사고처럼 맞닥뜨리는 주인공들의 연애 사건에 우리는 당황해 하면서도, 거기서 빚어지는 뜻밖의 '낭만성'에 또 환호하며 드라마를 열혈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매회 낚이고 낚이다 보니, <응답하라 1994>가 끝나고 나면 허무해 지는 경우가 점점 빈번해 진다. 뭐, 그렇다고 별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새삼 1994년의 청춘이 이랬나, 되돌아보게 된다.
1994년을 지나는 청춘...정말 90년대는 저랬던가?우스개로 1980년대의 대학 생활을 한 나는 아들에게 엄마의 시대는 결코 <응답하라 1994>와 같은 드라마로 만들어 질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했었다. 처음 대학에서 만난 것이 강의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형사들이요, 교정에서 만난 것은 매캐한 최루탄에, 선배를 만난 곳은 그가 유인물을 뿌리던 건물 옥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응답하라 1994>를 보면 어쩌면 이 제작진이 80년대를 드라마로 만든다면 저런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을 신청하면 들려주는 DJ가 있는 음악다방에, 고고장에, 민속 주점에, 그리고 거기에서 흐르던 이선희 'J에게' 정수라의 '바람이었나'에, 퀸과 스팅과 에어서플라이의 팝송이 흐르는 또 다른 청춘 연가가 될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응답하라 1994>의 연세대 학생들이 다니던 바로 그 연세대 캠퍼스에서 1996년 '등록금 인상 반대와 김영삼 정권 대선자금 공개' 데모를 하던 학생 노수석 학생이 죽었다. 여전히 대학에서는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떠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응답하라 1994>의 캠퍼스에는 그런 자욱이 없다.
물론, 꼭 추억을 논하는 드라마가 당시의 모든 것을 그려내야 할 의무는 없다. 대학을 다녔다 해도 다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제작진의 눈으로 본 90년대의 대학 생활은 드라마와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90년대는 운동을 했던 학생들조차도, 자신들의 세대는 80년대처럼 운동권이 주류도 아니었으며 '끼인 세대'라고 자조적으로 평가하는데, 굳이 그걸 다 그려야 한다고 강권할 이유도 없다.
누군가의 대학 시절에는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일 수 있으니까. 아니, 꼭 그 시대 화두를 다루지 않아도 좋다. 어쩌면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한 그들의 젊은 시절의 고민들은 정작 드라마에서는 쉽게 쉽게 넘어간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빙그레의 고민이 13회나 될 동안 그저 아르바이트를 하면 떠돌듯이. 사랑을 빼놓고서는 드라마의 중반을 넘긴 지금까지 <응답하라 1994> 속 젊은이들의 젊은 날은 순탄하다.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세한 물품 하나가 그 시대의 것이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나정이의 남편 찾기에 골몰하다 허무해지면, 문득 우리가 보는 1994년이 정말 1994년이 맞는지 반문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건 '젊은 날의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이 아니라, '첫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뿐인가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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