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비틀즈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공연한 일본 후쿠오카 야후돔.
오수용
티켓팅과 함께 입장이 시작됐다. 카메라는 보기 좋게 압수당했다. 가방 속까지 하나하나 검색했다. 폴의 공연기념품(굿즈) 판매대에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감히 둘러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좌석을 찾아 들어가니 무대 한가운데다. 무대와도 가까운 괜찮은 자리여서 기분이 더욱 좋았다. 아이들도 자리가 너무 좋다며 "엄마 최고!"라며 감탄했다. 돔 경기장에는 수만 명(약 3만 500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공연 시작 전 '한국비틀즈매니아' 팬클럽 회원들은 'We want paul'(우리는 폴을 원한다)라고 쓴 현수막을 펼쳤다. 시작도 하기 전에 공연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비틀즈 멤버들의 영상물이 상영되면서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폴이 등장하자 동시에 모두 일어섰다. 비틀즈 노래인 'Eight Days a Week'(에잇 데이즈 어 위크)로 첫 장을 열었다.
지난 10월 출시된 개인앨범인 < New >(뉴) 1번 트랙 'Save us'(세이브 어스)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열광했다. 비틀즈와 윙스(비틀즈 해체 후 폴 매카트니가 만든 밴드) 시절 노래, 개인앨범 노래들을 선보였다. 지난해 발표한 'My Valentine'(마이 발렌타인)의 뮤직영상은 인상적이었다. 화면을 가득채운 영화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조니 뎁의 수화가 눈길을 끌었다.
'링고 망고' '망고 스타'?...비틀즈 모르는 남편"엄마, 아빠가 저 드럼 치는 흑인 아저씨가 링고 스타냐고 해서...하하하!" 한참 공연을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중학교 2학년인 딸애가 정신없이 웃는다. 하도 어이가 없어 덩달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틀즈 멤버들 포스터가 집 거실벽면에 몇 년째 우아하게 걸려 있는데도 어째 그런 질문을 하는지... 남편은 본인의 관심분야가 아니면 그냥 흘려버리는 성격이다. 아예 머릿속에 저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도 쑥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사실, 남편은 비틀즈의 드러머인 링고 스타의 이름도 항상 헷갈려 한다. 어느 날은 '링고 망고'라 했다가 어떤 때는 '망고 스타'라고 불렀다. 그래도 신이 났는지 열심히 박수치며 리듬을 맞추었다. 와중에 유독 눈에 띄는 열성팬이 있었다. 바로 남편 옆에... 열정적이고 범상치 않은 춤사위는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폴의 새 앨범의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을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박자 감각, 춤 솜씨도 대단했다. 남편과 극과 극인 그 남성 팬은 두고두고 우리가족의 대화 소재가 됐다.
존 레논을 위한 추모곡 'here today'(히얼 투데이) 를 부르자 마음이 숙연해졌다. '세상을 뜬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 공연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노래는 폴이 존을 추억하며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1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는데도 폴은 지치지 않았다. 공연은 계속되었다.
▲지난 15일, 비틀즈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기 위해 팬들이 일본 후쿠오카 야후돔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오수용
'All together now'(올 투게더 나우)를 부르자 두 아이가 더욱 흥겨워한다. 이 곡은 두 아이가 평소 즐겨 부르던 노래다. 'everybody out there'(에브리바디 아웃 데어)를 부르자 관객들과 '헤이! 에브리바이 아웃 데어 워어워어'하며 몸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something'(섬씽)도 불렀다. 폴은 생전에 조지가 좋아했던 앙증맞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대형스크린에서는 조지의 모습이 비춰졌다. 간절하게 그가 보고 싶어졌다.
'let it be'(렛잇비)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이 순간 숙연해졌다. 폴이 먼저 "일본 지진피해자들에게 바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남편이 주책없이 몸을 흔들며 큰 소리로 "렛잇비!"하며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얼른 분위기를 깨는 남편을 꼬집어 뜯었다. 이날 남편이 유일하게 아는 첫 노래(이날 'let it be'는 폴이 부른 28번째 곡이었다)가 나왔지만 이렇게 무참히 제지당했다.
일본의 스모 동작 흉내..."폴 아저씨는 장난꾸러기" '007' 영화 시리즈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의 동명의 주제곡을 부를 땐 '쿵' 소리를 내며 여러 차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화려하고 웅장함마저 주는 무대효과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가족이 있던 자리까지 불기운이 느껴졌으니 맨 앞좌석 VIP석에 앉은 팬들은 엄청 뜨겁지 않았을까 싶었다.
폴은 피아노연주를 끝내자마자 불기둥이 솟구치기 전 재빠르게 귀를 막았다. 불기둥 쇼가 끝나자 폴은 능청스럽게 귀를 잡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소리가 안 들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며 좋아했다. 폴은 공연중간에 스모 동작을 따라해 팬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들 녀석이 "폴 아저씨는 장난꾸러기"라며 흥겨워했다. 'hey jude'(헤이 쥬드)를 끝으로 준비된 30곡의 노래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day tripper'(데이 트리퍼)를 시작으로 'hi,hi,hi' 'I saw her standing there'(아이 소우 허 스탠딩 데어) 등 앙코르곡 3곡이 이어졌다. 앙코르곡이 끝났지만 팬들의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폴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폴의 공연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밤 12시가 넘어 만원 심야버스에 시달리며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비틀즈 노래를 들으며 가족들은 한참 동안 폴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오수용
다시 이어진 앙코르곡은 전 세계인의 무한사랑을 받고 있는 'yesterday'(예스터데이)였다. 이어 메탈곡인 'helter skelter'(헬터 스켈터)를 불렀을 땐 감동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2시간 30여분을 쉬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상태로 노래하고 메탈 곡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팬들도 공연시간 내내 일어서서 몸을 흔들며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이날 공연을 비틀즈의 <애비로드> 앨범 수록곡인 'golden slumbers, carry that weight, the end'(골든 슬럼버, 캐리 댓 웨잇, 디 엔드)로 마무리 했다. 'the end' 도입부분의 드럼 단독연주는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다. 딸아이는 이어지는 웅장한 기타연주를 무척 좋아했다. 파도가 밀려오듯 몰아치는 기타연주에 딸아이가 열광했다.
이날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공연의 끝을 알리는 형형색색 종이가루가 공연장을 덮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른 한편 '이젠 마지막이구나'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 밀려오는 상실감이랄까.
폴이 외친 "싸이코, 판타스틱!"
▲폴이 공연 중간 중간과 마지막 부분에 내뱉은 "싸이코, 판타스틱"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가족들 간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오수용
폴이 공연 중간 중간과 마지막 부분에 내뱉은 "싸이코, 판타스틱" 때문에 공연이 끝나고 가족들 간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남편은 "폴이 우리보고 왜 '싸이코'라고 하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성질 급한 딸이 폴을 대변했다.
"아빤! 오늘 하루 환상적으로 함께 미쳐보자는 뜻이지. 같이 즐기자는 거야" 나도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폴이 "싸이코"라고 하면 나도 "싸이코!"라고 따라 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싸이코'는 일본말로 '최고(最高, 사이코)'라는 뜻이었다. 일본어를 알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폴의 공연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밤 12시가 넘어 만원 심야버스에 시달리며 숙소에 도착한 후에도 비틀즈 노래를 들으며 가족들은 한참 동안 폴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딸은 "가족끼리 공연을 주제로 이렇게 즐겁게 얘기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들은 자기가 특히 좋아하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를 부르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나와 두 아이는 지금 폴의 한국 공연을 고대하고 있다. (남편은 일본까지 가서 봤는데 또 보냐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국 공연이 성사되면 또 다시 온 가족이 기꺼이 참여해 리듬에 몸을 맡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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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왜 자꾸 우리한테 '싸이코'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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