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영화는 싼헌둔이라는 오지마을에서 40년 동안 교사로 지낸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도시에 사는 아들이 한 겨울에 지프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손수 베를 짜는 어머니는 멀리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장지로 운구해 올 때 차나 경운기를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마을 사람들이 손수 상여로 모시고 와야 한다고 고집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젊은 시절 나란히 찍은 사진을 아들이 바라보자, 영화는 과거로 플래시백한다. 18세 소녀인 자오 디(장쯔이)와 20살 청년 루오 유셍(순홍레이)의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절대적인 신뢰감으로 가득한 감동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 끝나고 스토리가 현재로 다시 돌아오면, 아버지의 시신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100명이 넘는 제자들의 손에 운구되어 학교를 바라보는 옛 우물가에 묻힌다. 아들이 도시로 돌아가기 전에 마을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40년 전에 손수 만들었던 교재를 가르치며 영화는 끝난다.
스토리가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 끝나는 동안, 현재를 다루는 부분의 시간 배경은 춥고 메마른 한 겨울이며, 화면은 흑백으로 촬영되어 겨울의 황량함을 잘 나타낸다. 흑백화면과 겨울은 현재 중국인들의 마음의 피폐함을 표현하는 미학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현재와는 달리 회상되는 과거 부분에는 아름다운 사계절이 등장하고 화면은 밝고 따듯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컬러화면이며 종종 자오 디의 배경에는 부드럽고 환한 빛이 쏟아진다. 이러한 과거 장면은 중국인들이 잃어버린, 그러나 여전히 가슴 속에 간직한, 순수하고 풍요로운 정신적 고향, 또는 현재와는 다른 미래의 이상향을 나타내는 미학적 장치이리라.
영화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순수한 사랑의 스토리와 그러한 러브스토리를 가능케 한 시골 마을 공동체의 아름다움이다. 먼저 러브스토리를 보자. 소녀 디가 눈이 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산골 마을에 학교가 지어지고 도시에서 젊은 선생님 유셍이 오자 그에게 온 마을의 관심이 집중된다. 디는 유셍을 자주 보려고 평소에 물 길러 가던 집 근처의 우물로 가지 않고 더 멀리 있는 학교 근처 우물로 간다.
그녀는 유셍이 언덕과 구릉을 넘어 학생들이 귀가하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고 길가의 밀밭 속에 숨어 있다가 그에게로 다가가 우연히 마주친 척한다. 그가 관심을 보이자 너무 기뻐하면서도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집집이 돌아가며 유셍에게 저녁 밥을 주는데 디의 차례가 된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그가 먹는 동안 그녀는 건너편에서 몰래 훔쳐본다. 마침내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유셍도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유셍은 도시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야 하며 12월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그는 디에게 머리핀을 주며, 저녁에 만두를 먹으러 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그가 도시 사람과 마차를 타고 떠났다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만두를 들고 언덕과 숲과 구릉을 뛰어 달린다. 달리고 달리던 그녀는 넘어진다. 만두 그릇은 깨져버린다. 슬피 울던 그녀는 머리핀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며칠을 머리핀을 찾으며 왔던 언덕과 숲과 구릉을 헤맨다. 낙담한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데 집 문의 바닥에 핀이 떨어져있음을 발견하고 그녀는 환하게 기뻐한다.
디는 유셍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눈보라치는 마을 길목 언덕에 하루 종일 서서 애타게 기다리지만 12월이 넘어도 그는 오지 않는다. 그를 찾으러 도시로 찾아가겠다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녀는 가는 도중 눈보라에 쓰러져 마을 사람들에게 실려 온다. 그녀의 마음을 안 마을 사람들은 유셍에게 디의 상태를 알리고, 유셍은 도시를 도망쳐 다시 돌아온다. 며칠을 병석에 있다가 그의 귀향 소식을 들은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 학교로 뛰어간다. 그가 학생들과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봄이 왔다. 눈이 녹는다. 푸른 잎이 돋는다. 농부들이 씨를 뿌린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디와 유셍의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것이지만, 영화는 자기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현재와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이 학교도 같이 짓고, 학교 짓는 남정네들이 먹을 밥도 모든 집에서 같이 해오며, 디가 아프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따듯한 관심을 갖고 돌보는 전통적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학교의 선생님은 이러한 공동체를 떠받치는 존재로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유셍이 시골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때는 1958년이다. 학교의 바깥벽에는 "아는 것이 조국건설의 무기이다"(知識是建設祖國的武器)라는 글자가 큰 붉은 글씨로 써 있어 당시의 대약진운동의 영향이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셍이 학생들에게 따라 읽으라고 하는 문장들은 "세상을 살려면 기개가 있어야 한다. 글을 쓸 줄 알아야 하며, 셈할 줄도 알아야하며, 큰일 작은 일 모두를 기록하고, 고금을 알고, 천지를 알라. 어른을 공경하라" 등 전통 교육의 내용이다. 기개는 맹자의 호연지기를, 글쓰기와 셈하기는 주나라 시대 이후 계속되어 온 전통적인 교육과목인 육예의 '예·악·사·어·서·수' 중 서와 수를, 고금과 천지를 아는 것은 논어의 '온고이지신'을, 어른 공경은 유교의 예, 효, 충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산골마을은 학교 벽의 구호처럼 마오쩌뚱의 공산사회 건설의 구호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산골마을 사람들의 따듯한 공동체 삶은 중국의 오래되고 급진적인 이상향인 '대동사회'에 가깝다. 예기의 대동사회가 이 마을 사람들처럼 서로 서로 따듯한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보살피는 사회가 아니던가?
장이모우의 <집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영화 <타이타닉>(1997)을 차용하면서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 <타이타닉>의 주제 음악을 중국악기연주로 쓰고 있다는 점, 아들이 어머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의 벽에 <타이타닉>의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점, 젊은 남녀의 순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타이타닉>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선 두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면, <집으로 가는 길>은 1990년대 자본주의 중국사회와 오래된 중국인의 대동사회의 꿈을 대비시키면서 대동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신뢰로 가득찬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한국의 우리를 더욱 감동케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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