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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이천희의 '마이 웨이'

[이미나의 펜심작렬 ①] '분량' 보다도 '연기하는 재미' 찾는 이 배우, 응원할 수밖에

13.10.12 08:41최종업데이트13.10.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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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이천희
배우 이천희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천데렐라' '엉성천희'라는 별칭을 얻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지만, 배우 이천희의 필모그래피는 조금 이색적이다. 영화에서는 치열한 청춘들의 삶을 그린 <태풍태양>과 위험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소재로 한 <아름답다> 등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아예 조카까지 팔아넘기는 매정한 삼촌(<바비>)과 끔찍한 고문을 서슴지 않는 '공무원'(<남영동 1985>)으로까지 변신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로는 조선 후기 격동의 정치사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한성별곡>에서부터 따뜻한 가족 드라마를 표방했던 <그대 웃어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물었던 <천 번째 남자>, 그리고 다수의 단막극까지 섭렵했다.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연애조작단 ; 시라노>(아래 <시라노>)에서는 어둠의 세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셰프가 된 가슴 따뜻한 남자 승표를 연기했고, 특별출연으로 모습을 비춘 <주군의 태양>에서는 주인공의 비밀을 알고 그가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길잡이'의 역할도 맡았다.

'분량'보다는 '재미' 추구…"인간적인 모습 있는 캐릭터에 끌려"

이정민

2003년 데뷔했으니 어느덧 배우 11년차. 쉬운 길이 눈에 들어올 법해도 이천희는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 "언젠간 재벌 2세나 '실장님'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천희는 "사실 재벌 2세 캐릭터와 또 다른 캐릭터가 있다고 하면 후자가 끌린다"고 고백한다. "재미가 없다"는 게 이유다. "리액션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뭐든 초월한 미소만 짓고. 인간다운 맛이 없거든요."

그 '연기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분량'마저 포기할 수 있다는 말에는 배우로서의 소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다양한 모습이 등장했던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한 가지 또한 '재미'다. 이를 두고 "아무래도 성향인가 보다"라고 말하는 이천희는 "인간다운 모습이 있는 캐릭터에 끌린다"고 말한다.

일례로 원래 영화 <태풍태양>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갑바'가 아닌 '모기'였지만, 모기의 책임감 없어 보이는 모습이 연기하는 데 재미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김강우와 역을 맞바꿨다. 지난해 KBS 2TV <드라마 스페셜-내가 우스워보여?> 또한 평소엔 무능력하고 찌질한 검사였지만, 어떠한 계기로 인해 맡은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 역할이 마음에 들어 출연했다.

"내 안의 틀 깨는 역할 하고 싶어…'연기 잘 하는' 배우 되고파"

이정민

물론 아직 고민도 있다. 이천희는 "내 안에 정해진 선을 뛰어넘고 싶다"고 털어놨다. 악역을 해도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 안에서만 그 악함을 드러내는 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 <바비>의 삼촌 역할을 연기할 때도 조카를 향해 장아찌를 던지는 신은 결국 조명감독의 손을 빌렸다고 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 싶어서다. 이천희는 "내 안에 있는 모습만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이 틀을 깨는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극장에서 <바비>를 보면서 '더 (나쁘게) 할걸, 저 상황에서 저 만큼밖에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깊이 있게, 더 밑바닥까지 갈 수 있는데…. 아내에게도 늘 얘기해요. 일탈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조금 바꿀 수 있는 뭔가가 있을까' 얘기하죠. 제가 깨야 할 틀이 있는 것 같아서요. 아내(배우 전혜진)는 '오빠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벗어나라'고 하는데, 저는 그 범위에서 벗어났을 때 불안감이 있거든요.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이 저도 몰래 나왔을 때 '이건 뭐지? 이게 맞는 건가?' 싶고."

하지만 이천희는 "당장 뛰어넘을 산처럼 생각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것이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그의 목표에 보다 확실하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천희는 "과거엔 '좀 더 인간적인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욕심도 내 보고, 내 것은 확실히 챙긴다 싶을 정도로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이천희'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이정민

이천희는 누구보다 확실한 주관을 갖춘 사람이다. 연기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역할의 크기도 포기할 수 있다는 말도, '스스로 갖고 있는 틀이 있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고백도 그가 얼마나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마이 웨이', 이천희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식어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이천희 역시 "무슨 일을 하든 '이천희'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천희는 더욱 자유롭다.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걱정하지도, 대중의 평가를 앞서서 계산해 행동하지도 않는다. 가끔 팬들이 '다음엔 이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생각을 뛰어 넘은 다른 역할에 도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천희는 "내가 좋아서 연기해야 하는 거지, 팬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든지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연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웃어 보였다.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가구 디자이너로 전시회에 참여하고, 훌쩍 외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것도 확실한 자아와 개성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천천히, 하지만 아주 확실하게. 이천희는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선명하게 자신의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어찌 설득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하든 그 선택을 응원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천희 주군의 태양 연애조작단; 시라노 바비 전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