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심은 누가 뭐라해도 수도 서울이다.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에 정치-교통-경제-문화의 모든 주요 인프라가 밀집해있는 심장부다. 프로야구단도 전체 9개구단 중 서울에만 무려 3팀이나 몰려 있다. 그러나 적어도 프로야구의 역사에 있어서만큼은 서울이 중심이 아니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가을이 다가올 때면 서울 팬들은 항상 야구장의 조연 혹은 구경꾼이 되어 다른 구단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서울에도 드디어 야구의 봄이 찾아왔다. 가을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4장의 초대 티켓 중 삼성을 제외하고 LG-두산-넥센으로 이어지는 서울 연고의 3팀이 나란히 동반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프로야구 역사 31년 만에 처음 있는 사건이다.
프로야구 '서울 삼국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2008년부터다. LG의 전신인 MBC 청룡이 82년 서울 연고로 처음 창단했고, 85년부터 대전-충남을 본 연고지로 하던 OB베어스(현 두산)가 서울로 이전하며 LG와 잠실을 홈구장을 공유하는 '한지중 두 가족' 시대를 처음으로 열었다. 이어 2008년부터 현대를 인수한 히어로즈가 목동을 홈구장으로 서울에 새롭게 둥지를 틀며 LG-두산-넥센으로 이어지는 서울 삼분(三分)구도가 드디어 완성됐다.
하지만 서울 라이벌들이 함께 빛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LG와 두산이 서울을 양분하던 시절(1985~2007)에 두 팀이 동반으로 4강에 진출한 것은 고작 4차례(1993, 1995, 1998, 2000년)뿐이다. 서울 팀간의 포스트시즌 마지막 대결이 13년 전 플레이오프(당시 두산이 4승 2패로 LG를 제치고 한국시리즈 진출)였으니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하다.
LG는 2002년 이후 10년연속 4강진출에 실패했고, 2008년부터 합류한 넥센 역시 올시즌 전까지 아예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못했으니 그야말로 '서울의 암흑기'였다. 다만 두산만이 2000년대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으로 꾸준히 4강무대를 밟으며 자존심을 세웠다.
2013시즌, 부쩍 쌀쌀해진 날씨는 가을이 다가온 것을 알리고 있지만 서울에는 때아닌 봄의 훈풍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희소식을 알려온 것은 그간 가을잔치에 대한 기다림이 가장 길었던 LG였다. 22일 마산 NC전에서 6-1로 승리하며 2002년 한국시리즈(KS) 준우승 이후 11년 만에 가을잔치 티켓을 처음 손에 쥐었다. 뒤이어 두산이 25일 경쟁팀들의 패배로 자동적으로 4강을 확정지었고, 마지막으로 넥센이 28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4-0으로 완승하면서 드디어 서울 3형제의 첫 동반 PS행이 모두 완성됐다. 여기에 디펜딩챔피언 삼성까지 더하여 올시즌 4강 구도가 마침내 확정됐다.
서울 3팀의 동반 4강행은 기존의 프로야구 지형도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다. 일단 LG이 10년 연속, 넥센이 창단 이후 6년 연속 이어오던 지긋지긋한 4강징크스를 깨며, 반대로 PS 단골손님으로 꼽히는 SK(6년연속), 롯데(5년연속)의 4강진출이 좌절됐다. 2008년 이후 4강의 세 자리만 전년도와 동일하고 한 팀만 바뀐다는 공식도 깨졌다. 매년 똑같은 팀들끼리 4강에 진출하여 식상한 매치업만 계속 봐야했던 팬들도 모처럼 새로운 볼거리를 기대할수 있게 되었다.
젊은 리더십의 성공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LG-두산-넥센이 모두 1군 감독 경력 2년차 이내의 젊은 사령탑들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기태 LG 감독과 김진욱 두산 감독이 2년차, 염경엽 넥센 감독은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 김기태 감독은 또한 프로야구 현역 최연소 감독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많은 명장급과 베테랑 감독들이 거쳐갔음에도 이루지못했던 4강의 꿈을 현실화한 것은, 그만큼 프로야구 사령탑에도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는 세대교체의 바람을 보여준 것이라 할 만하다.
팀간 3~5경기를 남겨둔 상황이라 최종순위결정은 좀 더 지켜봐야지만, 현재 구도라면 4강에서부터 최대 두 번까지 서울팀들간의 가을 대격돌이 현실화될 수 있다. 과거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LG와 두산의 잠실 맞대결을 흔히 '덕아웃 시리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면, 이제는 목동을 쓰는 넥센을 더하여 '지하철 시리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같은 서울연고팀으로서 홈과 원정을 지하철로 짧은 시간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현재 삼성이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2~4위인 LG-두산-넥센이 모두 3게임 차 이내로 촘촘하게 늘어서있는 상황이다. 만일 서울 3형제 중 한 팀이 정규리그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포스트시즌에서 삼성이 탈락시키는 팀이 나올 경우 사상 첫 서울 연고팀간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이라는 빅매치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서울 연고팀이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서 마주친 것은 2000년 LG와 두산의 플레이오프였다.
사실 서울 연고팀의 강세가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지난 1995년이다. 당시 LG와 두산은 리그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다툼을 펼친 끝에 두산이 LG를 반게임 차이로 제치고 극적인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LG는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덜미를 잡혀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 LG와 두산의 KS 덕아웃 시리즈는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4강의 꿈 못지않게 서울 3형제에게 굶주린 것은 정상의 한이다. 넥센이 전신인 현대 시절 2004년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으나 서울로 연고를 옮기기 전의 이야기다. 4강단골손님이던 두산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1년이 마지막이고 이후로는 준우승만 3번이나 차지했다. LG는 무려 19년 전인 1994년이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LG는 프로야구에서 롯데(1992년 마지막 우승) 다음 두 번째로 우승을 차지한 지 가장 오랜 시간이 흐른 구단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포스트시즌의 기회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세 팀뿐만 아니라 3연패에 도전하던 절대강자 삼성까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구단들이 보여줄 자존심 대결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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