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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머리가 즐거운 영화... 긴장감은 '덤'

[리뷰]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잭 리처>

13.04.30 11:51최종업데이트13.04.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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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CJ엔터테인먼트

분명하게 악당으로 설정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대부분의 결말은 '권선징악을 통한 정의구현'이다. 주인공이 착하고 선한 사람이든, 혹은 세상에 찌들어 삶을 연명해가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악역을 맡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 소용돌이에 주인공 본인이나 그의 소중한 사람이 휘말린다.

이러한 경우 많은 영화들은 악당을 응징하는 주인공의 동기유발을 위해 '분노'라는 매개체를 사용한다. '정의'가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일 수 있지만, '악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늘 정의로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물론, 영화는 관객의 확실한 대리만족을 위해 그런 물음은 접어둔다. 어찌되었든, 부당한 힘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던 악역이 거꾸로 비참한 몰골이 되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묘한 희열을 주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 영화 <잭 리처>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다. 악당을 단죄하려는 주인공 잭 리처는 처음엔 진실을 파헤치려는 의도로 사건에 접근한다. 그러나 불타는 정의감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드러내는 열정적인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악당을 끝장내기로 마음먹는 순간은 '무고한 여성'이 살해당한 것을 알게 된 이후다. 두 번 마주쳤을 뿐이지만 그 여성의 죽음에 잭은 분노를 느끼고, 악당 못지 않게 잔혹한 방법으로 역습에 나선다.

영화는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진부한 교훈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또한 복수라는 감정에만 휩싸여 활활 불타는 주인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주인공인 잭 리처는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어느 쪽으로도 쉽게 치우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확실한 제어력을 가진 인물이라 완벽한 캐릭터에 가깝다.

<미션임파서블>과 <테이큰>의 주인공을 한 인물로 만든다면? 바로 잭 리처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CJ엔터테인먼트

우리는 그런 완벽한 캐릭터를 이미 본 적이 있다.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상황이든 뛰어드는 남자. 몇 명의 적이든 침착한 움직임으로 거뜬히 제압하는 싸움 기술의 소유자. 다양하고 신출귀몰한 능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며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는 박력남. 바로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 연기한 '브라이언'이다.

하지만 '잭 리처'라는 인물은 단지 그것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모습도 물론 극적이지만, 잭 리처는 그보다는 고독한 독신남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며 외로움을 자처하는 모습은,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에서 동료에게 배신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이단 헌트'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톰 크루즈의 출연작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잭 리처'는 그런 두 인물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하다. 서로 다른 캐릭터의 매력만을 모두 취합해서 한 명으로 압축해놓은 느낌이다. 영화의 원작소설 <원 샷>의 팬들은 톰 크루즈가 잭 리처의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스크린 속에서 그는 나름의 매력으로 소설과는 다른 잭 리처를 멋지게 표현해냈다.

도심에서 다섯 명이 의문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는 "잭 리처를 불러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뇌사상태에 빠진다. 현역 시절 수사관으로 활동했다가 이제는 세상 바깥에서 살아가던 잭 리처, 그는 과연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추리와 액션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잭 리처>, 아쉽지만 매력 있어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CJ엔터테인먼트

잭 리처가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은 잘 짜여진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톰 크루즈가 보여주는 절제된 액션 덕분에 머리뿐만 아니라 눈도 즐겁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덤이다.

법의 테두리 바깥에 선 인물인 잭 리처가 진실을 알아내고 범죄자를 응징하는 장면은 통쾌하지만 또 그만큼 황당하다. 권력자로서 사건의 배후에 있던 악당의 우두머리가 법에 의한 단죄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 뻔하다고 판단한 잭은 자기 손으로 직접 그를 처치한다. 마치 영화 <더블타겟>에서 미국 상원의원의 신분을 이용하여 학살을 저지른 인물을 무자비하게 처단한 밥 리 스웨거(마크 윌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 범죄자를 법으로 처벌하지 못한 결말은 아쉽다. 권력자에게 법이 관대한 것은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씁쓸함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에서는 잭 리처도, 밥 리 스웨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약한 소시민이 누군가의 욕망이 휘두른 폭력에 짓밟히는 잔인한 현실만이 지독하게 닮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 <잭 리처>는 특유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절대적인 선'이나 '이성을 마비시킨 분노' 따위로 무장하지 않은 주인공은 관객에게 어떤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잭이 시원하게 악당을 때려눕히는 설정은 그럼에도 여전히 통쾌함을 가져다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이 버스 안에서 벌어지던 부당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일어서는 모습이 딱 그러하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추억'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우리는 무언가 결핍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매력이 잔잔하게 관객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는 단어가 유치한 말로 치부되고, 정의구현의 사례가 희박해진 현실이 낳은 결핍을 심리적으로나마 메꾸려는 욕구충족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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