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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지만 현실적인 엄마, 여기서 볼 수 있네

[리뷰] 영화 <늑대아이>를 통해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

13.04.15 16:34최종업데이트13.04.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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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아이> 포스터.
<늑대아이> 포스터.얼리버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식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는 이유는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의 고통을 겪기 때문에 자식이란 절대적으로 자기 것이라는 마음이 아버지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예전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다. 다운증후군을 겪는 아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같이 졸업한 한 엄마의 기사였다. 아들의 홀로서기를 엄마가 곁에서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지켜보았고, 감격의 졸업을 함께 맞이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감동했고, 아들은 환하게 엄마곁에서 웃고 있었다.

또 다른 기사를 봤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직장, 사회생활을 내팽켜치고 자식의 돌사진만 손에 쥔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단서는 없었지만 주위에 도움으로 16년만에 극적으로 자식과 상봉했다. 엄마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엄마의 관한 이야기는 항상 마음을 울린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영화와 같아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비현실적이지만, 항상 일어날 거만 같은 엄마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많이 제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평소 무심했던 그들의 '효'를 자극시켰다. 엄마의 마음도 모른채 투덜댔던 지난날의 나의 모습들이 큰 스크린으로 투영된다면 괜시리 머슥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 영화를 봤다.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늑대아이>이다.

제목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는 단순 늑대인간과 한 여자의 사랑 그리고 그들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영화라고 생각 할 수 있다. 늑대 아이들이 성장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단순 철없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만은 절대 아니다. 그 아이들, 혹은 늑대인간을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 또한 큰 주제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이질적일 수 있지만,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모습은 결코 이질적이지 않았다.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 풀로리앙

남편이자 두 아이 하나와 아메의 아버지인 늑대인간 '그'가 아내를 위해 사냥하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 엄마 '하나'는 쓸쓸히 시체가 된 늑대를 보고 비를 맞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의 시체는 무심하게 쓰레기차에 실려져 어디론가 사라진다.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게 된 엄마 '하나'는 남편의 유일한 유품인 운전면허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짐한다.

"내가 꼭 아이들을 잘 키울께"

그리고 엄마의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냥 인간도 아닌 늑대인간을 키우는 일은 도서관을 뒤져봐도 메뉴얼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인에게 이 두 늑대아이 공개해선 안되는 일이였다. 아이들의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세상과 단절하면서 피난처를 만든다. 두 늑대아이들은 엄마의 피난처에서 마음껏 늑대로 변했다 인간으로 변하면서 성장한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 '하나'의 육아방식은 조용하면서도 강하다.

이렇게 우리는 엄마가 만든 피난처 안에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생활한다. 그러나 정작 자식들은 그 피난처가 감옥으로 느끼는 일이 태반이다. 간섭과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자꾸만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해서 벗어난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과 맞이한다.물론 즐거워 하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다.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졌을 때 다시 엄마를 찾는다. 피난처로 돌아오는 것이다. 매번 자식들에게 속고 당하기만 하는 엄마이지만, 이번 역시 그들의 손을 먼저 잡아준다. 그것이 엄마다. 우리가 놀랐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소리인 "엄마야" 또한 이 피난처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아닐까?

 <늑대아이>한 장면.
<늑대아이>한 장면.얼리버드

온갖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개 훌륭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 난 사람들이다. - 앙드레 모루아

엄마 '하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온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혼자서 넓은 폐가를 손수 고친다. 하지만 비는 계속 새고, 손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자급자족을 위해 밭에서 농사를 시작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연이은 실패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극중 '하나'라는 이름은 언제나 지치지 말고 웃으면서 지내라고 지어줬다고 한다. 그 이름의 맞게 하나는 실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번듯하게 집을 수리하고,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룬 결과물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 긍정적인 마음은 두 아이에게도 전해진다. 

위대한 부모는 돈을 많이 가진 부모가 아니다. 바로 인생의 경험을 많이 가진 부모이다. 그 경험을 아낌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 또한 값진 유산이다. 또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한다. 세살 아이가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것, 뒷짐을 쥐고 걷는 행동 또한 모두 부모를 통해 보고 배운 행동이다. 아이들 앞에서 항상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좋은 행동을 보여준다면 이것 또한 아이들이 따라할 것이고, 이 좋은 행동은 아이들의 습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는 발전할 것이다.

자식들의 운명은 언제나 그 어미가 만든다. -나폴레옹

늑대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고민이 생긴다. 인간으로 살 것인가,늑대로 살 것인가? 역시 어느 엄마의 마음처럼 '하나' 또한 늑대로서 인정은 하되 안정된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딸 '유키'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고, 아들 '아메'는 자연속에서 들어가 늑대의 삶을 사려고 한다. 하지만 그 두 아이들에서 갈등이 생기고, 아이들의 정체성 고민은 엄마 '하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된다.

딸 유키에게 주문을 가르켜 늑대로 변하지 않게 하려했고, 아들 아메에게는 스승(동물 늑대)이 있는 숲에 가지 말라며 부탁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본성은 숨기면 숨길수록 정작 그아이의 삶이 더욱 힘들어 진다. 결국, 엄마 하나는 아이들의 삶을 인정하게 된다. 아이들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꿈에 나타난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아이들 걱정 말아요. 자신의 세계를 찾은 거에요"

 <늑대아이>한 장면.
<늑대아이>한 장면.얼리버드

자식들의 운명은 언제나 부모가 만들지만, 그 운명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자식이다. 운명을 만들어 준 부모의 간섭은 너무 깊어지면 언제나 갈등을 초래한다. 이 깊은 갈등은 결국 부모가 자식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해결된다. 부모는 반평생을 자식들에게 애정을 아낌없이 주었고, 제일 안전한 피난처에서 긍정적인 삶을 가르켰으며 운명을 만들어줬다.

이제 남은 건 그 자식들을 놓아주고, 스스로 훌룡한 부모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자식농사의 정점인 풍년이 아닐까?

영화 <늑대아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부모의 마음, 아이들의 정체성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매끄러운 그림체만 보고 감탄할 작품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만 보는 만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엄마의 영화다.

 <늑대아이> 한 장면.
<늑대아이> 한 장면.얼리버드


늑대아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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