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KGC 인삼공사와 고양 오리온스의 6강 플레이오프가 결국 최종전에서 운명을 가리게 됐다. 초반 인삼공사가 2연승으로 앞서갈 때만 해도 일방적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오리온스가 홈에서 반격에 나서며 2패뒤 2연승으로 시리즈를 원점으로 되돌리며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모처럼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데 주목할 만하다. 당초 이번 6강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흥행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정규리그부터 누적된 경기력 논란에 승부조작 파문까지 겹쳐 플레이오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많이 식어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 전자랜드와 서울 삼성의 시리즈가 다소 일방적인 경기흐름으로 3차전만에 막을 내리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인삼공사와 오리온스의 시리즈는 예상을 깨고 매경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로 점점 팬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김태술과 전태풍의 포인트가드 대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후안 파틸로의 '쇼타임'과, 이상범 감독과의 미묘한 신경전, 벤치 해결사로 등장한 조상현의 버저비터 등 역대 어느 플레이오프 못지않게 다양한 화젯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며 정규리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선수와 감독들의 강한 승부욕 자체가 바로 진정성 있는 명승부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오리온스, 흐름 바꾼 최진수-조상현의 공헌
시리즈 초반만 해도 단기전 경험과 노련미에서 앞선 '디펜딩챔피언' 인삼공사의 우위가 뚜렷해보였다. 정규리그 전적에서 오리온스에 4승 2패로 앞선 인삼공사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초반 짜임새있는 수비 조직력을 앞세워 오리온스의 주득점원 3인방(리온 윌리엄스,전태풍, 김동욱)을 동시에 무력화시키며 2연승을 내달렸다.
하지만 2차전에서 낙승으로 여유있게 끝낼 수 있었던 분위기에서 최대 24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막판 추격전을 허용한 게 결국 화근이 되었다. 2차전에서 체력 안배에 실패한 인삼공사는 주전가드 김태술이 경기 막판 무릎부상을 당하는 악재까지 겹쳐 연승에도 불구하고 남은 시리즈에서의 선수단 운용에 부담을 안게 됐다.
김태술이 부상으로 결장한 3차전에서 오리온스는 전태풍과 윌리엄스 등 주전들의 득점력이 모두 살아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인삼공사는 3차전에서도 막판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다시 이정현까지 발목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겹쳤다.
4차전은 인삼공사의 한계와 오리온스의 장점이 대조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 승부였다. 선수층이 얇은 인삼공사로서는 시리즈가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은 어떻게든 4차전에서 승부를 끝내기 위하여 부상을 안고 있는 김태술과 이정현을 모두 출장시키는 강수를 선택했지만, 이미 기세가 오른 오리온스의 화력을 더 이상 제어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체력 안배에도 실패했다.
반면 오리온스는 시리즈 초반 김태술의 집중마크에 고전하던 전태풍이 3차전부터 완전히 살아났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전태풍은 시리즈 초반 김태술과의 신경전과 파울트러블로 고전한 리온 윌리엄스의 잦은 부재 등이 겹쳐 혼자서 볼을 끄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자신의 경기리듬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김태술이 결장했던 3차전에서 활동반경이 자유로워지며 16점 12도움 3스틸로 부활하며 자신감을 찾았고, 김태술이 돌아온 4차전에서도 17점 7도움 4스틸로 맹활약했다.
오리온스는 4차전 4쿼터 승부처에서 인삼공사가 끈질기게 추격해 올 때마다 전태풍의 일대일 능력을 활용하여 시간을 충분히 소진하면서 개인기로 수비를 뒤흔드는 공격패턴으로 재미를 봤다. 무릎부상 후유증으로 스텝이 완전하지 못한 김태술이 전태풍의 드리블과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하자 양희종과 이정현이 번갈아가며 전태풍을 수비하거나, 인사이드에서 키브웨 트림이 도움 수비를 가는 방법을 써보기도 했지만 전태풍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전태풍은 상황에 따라 드라이브인, 풀업 점퍼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도움수비가 붙으면 침착하게 빈 공간에 있는 동료에게 어시스트를 뿌려주며 체력이 떨어진 인삼공사의 수비를 교란했다.
오리온스의 약점은 빅3가 풀리지않을 때 팀 전체의 분위기가 처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4차전에서 최진수와 조상현의 어려울 때마다 활로를 풀어주며 인삼공사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번 시리즈 내내 오리온스에서 가장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최진수는 4차전에서도 15점을 기록했고, 김동욱과 함께 인사이드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며 인삼공사의 골밑 득점을 저지했다.
식스맨 조상현은 이날 3점슛 3방으로 9점을 올렸고, 최대 분수령이었던 3쿼터에서 버저비터에 가까운 두 번의 3점슛으로 흔들리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리온스는 3쿼터에 속공파울에 벤치 테크니컬 파울 그리고 또다시 팀파울에 테크니컬 파울을 추가하며 순식간에 6개의 자유투를 내주고 동점을 허용했다.
위기 상황에서 24초 공격시간에 쫓겨 던진 조상현의 기습적인 3점슛이 림을 갈랐다. 조상현은 3쿼터 종료 직전에서 3점슛 라인보다 두세 발자국이나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3점포를 작렬시켰다. 추일승 감독이 중용했던 전정규의 부진으로 침묵하던 오리온스의 외곽포에 조상현이 활로를 불어넣어준 장면이다.
오리온스의 공격이 안정을 찾았다는 것은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오리온스는 4차전에서 2점슛 성공률 61.0%, 3점슛 성공률 42.9%를 기록했다. 오리온스의 2점-3점슛 성공률이 60-40% 이상이 나온 것은 4차전이 처음이다.
벼랑끝 인삼공사, 파틸로 딜레마 풀어야
PO 5차전은 30일 안양으로 무대를 옮기지만 불리한 쪽은 2연승 뒤 2연패로 몰린 인삼공사다. 사실상 경기당 7~8명의 자원으로 시리즈를 소화하고있는 인삼공사는 김태술-이정현-양희종이 모두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체력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파틸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파틸로는 초반 2연승의 주역이었지만 지나친 개인플레이와 불안정한 수비로 팀플레이를 망친다는 위험부담도 안고 있다. 4차전에서 파틸로는 이번 시리즈 들어 가장 짧은 9분 39초 출장에 그쳤고 득점도 5점에 불과했다.
인삼공사는 파틸로가 없을 때 인사이드에서 득점을 올려줄 선수가 부족하다. 이상범 감독은 4차전에서 파틸로의 개인플레이를 이유로 키브웨 트림을 더 중용했으나, 결국 공격에서는 외곽에만 의지하는 단조로운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리온스 수비가 인삼공사의 공격패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숙제다. 오리온스는 포워드진의 높이가 더 높다는 장점을 살려서 인삼공사의 2대 2플레이에도 완전한 스위치 수비가 가능하기에, 인삼공사 가드진이 안으로 볼을 투입하거나 직접 드리블로 파고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5전3선승제로 진행된 역대 6강 PO 역사상 2차전까지 내리 패한 팀이 3연승으로 뒤집기에 성공해 4강 PO에 진출한 전례는 없다. 6년 만에 PO에 진출한 오리온스는 내친김에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면, 인삼공사는 지난해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부상 투혼을 기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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