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야왕>의 하류(권상우 분)
SBS
'야왕'이란 누구일까어둠에서 태어난 주다해와 어둠에서 빛의 출구를 열어줬던 하류는 실상 하나의 탄생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드라마가 둘의 대립점을 끊임없이 갖고 가는 것과 동시에, 이 둘이 시작과 끝 역시 함께 할 것임을 예상한다. 주다해와 하류는 곧 누구 한 명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희생들을 감내했던 하류, 그리고 현실로 발을 내딛는 희망의 존재가 됐던 주다해. 반면 주다해가 그를 배반했을 때 주다해는 야망의 한 전환점을 구축했고, 하류는 복수 주체인 '야왕'을 향하게 됐던 것이다. 주다해의 시작을 열었던 것이 하류라면 지금의 하류를 만든 것은 주다해다.
매우 역설적인 두 관계는 곧 애초의 어둠에 도달하지 않을까. 굳이 원작의 인터넷상 떠도는 결말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을 던지자면 '야왕'이란 누구일까.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는 <아이리스>에도 언급됐던 니체의 말은 실상 <야왕>에 더 적합하다. 복수를 하며 이미 복수 외에 생각할 수 없게 자신을 옭아매는 것으로, 하류는 이미 괴물이 된 것이 아닐까.
곧 자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하류는 단지 소박하고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픈 욕망이 좌절된 이후, 실상 자기 욕망의 실현이 복수의 과정에는 전혀 없었다는 허망함을 깨닫는 것이 <야왕>의 예고된 결말이 아닐까. 또한 최고의 자리를 꿈꾼 주다해가 왕이 되지 못한 가운데, 그의 승승장구의 빛 그 이면의 어둠을 직시하며 '야왕'이 된 하류가 복수 이후 남는 허망함 아닐까.
에필로그: 다시 읽는 <야왕>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다시 읽기가 수행되어야 한다. 막장 드라마 같은 빠른 속도의 흡입력 대신, 욕망의 추락과 다른 한편으로 욕망 내지는 허망함의 자리를 보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지에 대해. 그래서 이 드라마는 중후반의 지점을 찍는 가운데, '진정한 추락'의 비극을 향하고 있음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하류의 복수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가운데, 수애의 성공은 우리의 그와 같은 욕망을 가속화한다. 반면 하류의 허망함을 목도하기 전에, 수애의 허망함 내지 비극적인 내면은 복수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아니 복수로는 성취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편 복수가 곧 하류의 행복을 이끌지 않으리라는 것, 오히려 비극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 여기에 <야왕>의 딜레마, 그리고 초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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