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루카스 한 사람에게 집단적 광기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루카스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엣나인필름
영화의 시간은 어느 해 11월부터 그 이듬해 성탄절 무렵까지의 대략 13개월 정도다. 진실을 밝히고 거짓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는 루카스의 눈물겨운 사투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루카스와 마커스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성년에 이른 마커스를 축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사슴사냥에 함께 나선다.
만약 이 지점에서 영화가 행복하게 관객과 작별했다면 우리도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 영화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빈터베르크 감독은 진실의 부활과 우정의 복원, 관계의 건강한 재구축이 절대로 쉽지 않은 작업임을 드러낸다. 노루목에 서서 사슴을 기다리는 루카스.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발의 총성. 넋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루카스.
그렇게 <더 헌트>는 관객을 마지막까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다. 한 사람을 둘러싼 의혹의 완전한 해명과 그것의 전체적인 수용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집단적인 딱지나 왕따 내지 낙인이 대물림처럼 자리 잡은 국가 지상주의와 '반공 콤플렉스'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징후는 도처에서 확인 가능하다.
문제는 루카스 한 사람에게 집단적 광기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루카스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루카스의 애인뿐만 아니라, 마커스마저 어느 때인가 그런 거짓과 폭력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진실의 이름으로든, 애국주의 내지 민족주의의 탈을 쓰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의 주제다.
당신의 판단과 믿음, 언제나 맞았나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이 자못 무거워 보였다. 몇몇 관객은 영화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장면이 빈터베르크 영화의 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랜 숙고와 충격을 가슴 깊은 곳에서 추스르고 난 연후에야 그들은 자리를 벗어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 헌트>는 울림의 폭과 깊이가 남다른 영화다.
우리가 자주 대면하는 진실과 허위, 개인과 집단, 개인과 국가 사이의 충돌과 그 결과를 영화는 대리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아프도록 묻고 또 묻는다.
"만일 당신이 루카스 같은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집단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해관계로 민족의 명운이라는 대의로 개인과 특정 집단에게 폭력과 광기와 마녀사냥을 행하지는 않았는가. 당신의 판단과 믿음은 언제나 올발랐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정말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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