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의 한 장면
(주)외유내강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베를린>은 블록버스터 문화 형식으로 북한 공작원을 핵에 둔 다국적 액션을 꾸려나간다. 이 영화에서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 모사드, CIA, 아랍계 무기상 등이 모두 악당이다. 정의가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설정은 (세계관이라고 하기엔 미달인) '본 시리즈'를 비롯한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이기도 한데, <베를린>은 그것을 공유하면서도 "신파"의 어떤 면을 주입한다.
예의 표종성과 련정희(전지현)의 관계에서 신파가 약효를 낸다. 이 영화의 설정 값을 그대로 따르자면 사적 생활이 "공화국"의 공적 명령에 완전히 포섭되어 있는 상황에 독일 대사관의 통역관과 공작원인 북한 영웅인 부부가 놓여있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로 신파는 눈물샘으로 향한다.
련정희는 갓난 아기를 북한으로 보낸 후, 북한 대사관의 통역관으로 일하며 성접대를 해야 한다. 이것만도 굴욕적인 상황인데, 베를린을 수하에 넣으려는 동명수(류승범)의 음모로 국가를 배신한 인물로 몰리고, 남편 표정성으로부터도 의심받는다. 련정희와 표종성의 부부라는 사적 결합과 국가가 이들에게 명하는 공적 결합의 불가능한 절충이 사랑의 오인이 됨으로써, 깨달음이 늘 늦게 도착하는 신파의 눈물이 되는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 액션의 특징으로 지적했던 타격보다는 '충격', 어떻게 보면 맞는 사람의 뼈와 살이 부서지고 파열하는 자학적 몸의 고통으로 표출되는 액션의 임팩트를 하정우가 연기한다. 액션의 활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칼에 찔리고, 총 맞고, 구타당한 상처받은 몸의 우울, 자폐와 경계에 있는 자학을 미묘하게 보여준다. 액션 반/영웅의 무기력하진 않으나 멜랑콜리 한 무드, 그리고 예의 신파성은 현 남북한의 정치적 사산, 유산의 무의식적 투영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표종성 대신 젠더 정치 혹은 신파의 법칙 상 련정희가 죽임을 당하지만, 그 죽음은 통일이나 남북 화해를 위한 어떤 제스처도 아니다. <쉬리>보다 신파는 무뎌지고 혹은 현실 법칙에 근접하고, <JSA공동경비구역>에서 서로가 발견한 민족적 형제애는 희박해졌다. 죽거나 혹은 통일이거나의 절박함은 탈 냉전의 공간 베를린에 존재하지 않는다. 암호명은 '죽거나 혹은 블록버스터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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