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물러설 수 없는 엘 클라시코 안방 경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이빨이 없는 대신 잇몸으로 버텨야 했다. 간판 문지기 카시야스, 왼발잡이 공격형 미드필더 앙헬 디 마리아 그리고 페페-세르히오 라모스-코엔트랑으로 이어지는 간판 수비수들이 부상과 징계 때문에 뛰지 못한 것이다. 이 큰 구멍을 스무 살 수비수가 메워야 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끌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CF는 우리 시각으로 1월 마지막 날 새벽 5시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벌어진 2012-2013 스페인계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준결승 1차전 안방 경기에서 영원한 맞수 FC 바르셀로나와 간신히 1-1로 비겼다. 두 팀은 다음 달 28일 장소를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 캄프 누로 옮겨서 결승전 진출 팀을 가리게 된다.
기회를 살리지 못한 마드리드, 화를 부르다
언제나 긴장감이 넘쳐 흐르는 엘 클라시코의 특성상 뜻밖의 곳에서 높은 파도가 일렁거렸다. 고메스 주심의 킥 오프 휘슬이 울리고 1분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안방 팀 간판 골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빠른 드리블이 방문 팀 골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순간을 막아내기 위해 바르셀로나 가운데 수비수 피케가 몸을 날렸고 호날두는 거기에 걸려 넘어졌다. 아슬아슬하게 그 지점은 벌칙구역 바로 밖이었고 주심이 내민 딱지도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이었다.
상대의 간판 수비수를 단번에 쫓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호날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오른발 무회전 프리킥을 시도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쌓은 벽을 넘어 날아간 공은 정말로 회전 없이 골문으로 향했지만, 꽁지머리 문지기 호세 마누엘 핀토까지 넘지는 못했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 전 우려했던 일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왔다. 가뜩이나 막아내기 어려운 바르셀로나의 정교한 공격을 간판선수들이 여럿 빠진 수비라인으로 버티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리뉴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에시앙에게 오른쪽 수비를 맡기는 고육지책을 썼고 카르발류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스무 살짜리 수비수 라파엘 바란을 들여보냈지만, 마음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1분, 그들에게 첫 번째 위기가 닥쳤다. 그나마 믿고 있던 카르발류의 어설픈 반칙으로 위험 지역에서 직접 프리킥을 내준 것이다. 이 공을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스가 오른발로 감아 찼는데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왔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신께서 도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3분 뒤에는 더 큰 위기를 맞았다. 믿었던 카르발류가 동료 문지기 디에고 로페스에게 백 패스한 공이 너무 짧아서 상대에게 빼앗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디에고 로페스는 세비야에서 뛰던 선수를 급하게 데리고 온 터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손을 다쳐 뛰지 못하고 있는 간판 문지기 이케르 카시야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 빼앗긴 공은 바르셀로나의 노련한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스에게 넘어갔고 곧바로 골을 노린 슛이 디에고 로페스를 통과해 버렸다. 누가 봐도 허무한 골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위기의 순간을 넘긴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수비수 라파엘 바란이 골 라인 바로 위에서 이 공을 걷어낸 것이다. 새내기나 다름없는 스무 살짜리 수비수가 아니었다면 안방 팬들을 모셔 놓고 크게 망신을 당할 순간이었다.
후반전, 맞수의 장군멍군
홈 팀 마드리드 입장에서 전반전은 그야말로 잇몸을 버텼지만, 후반전까지 요행수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반전 시작 후 5분도 안 되어 큰일이 터졌다. 예상했던 대로 먼저 골을 내준 것이다.
역시 마드리드의 허술해진 수비 조직력이 화근이었다. 수비에 가담한 미드필더 카예혼이 걷어낸 공을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눈치채고 곧바로 찔러주었고 이 공을 향해 달려들어간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침착하게 오른발 슛을 마드리드 골문 왼쪽 구석에 꽂아넣었다. 카르발류를 포함한 마드리드 수비수들은 팔을 치켜들며 오프 사이드를 주장했지만, 반대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카예혼를 못 보고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0-1로 끌려가기 시작한 안방 팀 무리뉴 감독은 미드필더 루카 모드리치(58분)와 골잡이 곤살로 이과인(63분)을 차례로 들여보내며 반전을 노렸지만, 바르셀로나 특유의 여유 있는 티키-타카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66분,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케디라-이과인으로 연결되는 역습이 훌륭했지만, 마지막 순간 반대쪽에서 달려드는 호날두의 밀어넣기 바로 직전에 상대 수비수 피케의 미끄러지는 태클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의 측면 역습에 쐐기골 위협을 계속 느껴야 했다. 70분에는 다니엘 아우베스-파브레가스의 연결이 크로스바를 스치며 넘어갔고, 72분에는 페드로에게 넘어온 단독 드리블-오른발 슛 기회가 아슬아슬하게 왼쪽 기둥을 벗어났다.
바르셀로나로서도 쐐기골을 넣을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수세를 경험해야 했다. 81분, 동점골이 터졌다.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 상황에서 짧게 연결한 공을 간판 미드필더 외질이 왼발로 감아올렸고 공격에 가담했던 수비수 라파엘 바란이 강한 헤더로 골문 오른쪽 구석을 갈랐다. 바르셀로나의 수비수 피케와 미드필더 파브레가스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바란의 위치 선정과 솟구치는 동작이 훌륭했다.
전반전에 절체절명의 실점 위기를 골 라인 바로 위에서 구해낸 라파엘 바란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동점 골까지 넣으며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낸 영웅이 되었다. 프랑스 스타드 렌에서 뛰고 있던 18살의 그를 알아보고 재작년에 과감하게 데려온 무리뉴 감독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고의 맞수 대결 엘 클라시코에서 탄생한 영웅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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