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2013<학교 2013>의 한 장면
KBS
가해자도 감싸는 감동적인 우정그나마 다행인건 이 드라마가 왕따와 같은 교육 현실의 극단적인 어두움은 탈색한 채 학생들의 고민과 우정을 그린다는 점이다. <학교 2013>은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의 삭막함만 묘사하지 않는다. 끈끈한 우정도 묘사한다. 오정호로부터 고남순(이종석 분)를 구하는 건 한정우(김창환 분)의 몫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오정호에게 당하지 못하지만 고남순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우정이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고남순의 어두운 과거는 밝혀진다. 박흥수(김우빈 분)의 다리를 망가뜨려 더 이상 축구를 하지 못하게 만든 자신의 과오를 짊어지고 '빵셔틀'을 자처하는 고남순의 행보는 일진 시절의 과오를 박흥수에게 용서받고자 하는 속죄의식이다. 단 하나의 꿈을 앗아간 고남순이 박흥수의 눈에는 곱게 보일 턱이 없다, 두 사람의 악연이 밝혀지고, 친구에게 용서를 갈망하고 우정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고남순의 행보는 그 어떤 로맨스보다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밖에도 일진 삼총사 중, 맘 잡고 공부할 것을 결심하면서도 남은 두 일진 친구들과 절교하지 않는 이지훈의 우정, 남자들 못지않게 뜨거운 우정을 과시하는 송하경(박세영 분)과 이강주(효영 분)의 모습도 보여준다. 약육강식의 정글 안에서 피어난 학생들의 우정 못잖은 동지애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인재(장나라 분)를 뒤에서 응원하는 강세찬(최다니엘 분)의 모습이 그것이다.
<학교 2013>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우정으로 말미암아 용서받는 점 역시 강조한다. 과거 일진이던 이지훈은 피해자 한영우에게 과거의 잘못을 편지로 사과한다. 역시 박흥수에게 가해자인 고남순은 박흥수에게 용서받고 옛날의 우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신혜선(정연주 분)의 휴대폰을 몰래 훔친 계나리(전수진 분) 역시 신혜선에게 용서받고 우정을 회복하고, 오정호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제적당하는 걸 바라지 않는 피해자 송하경은 담을 넘고 땡땡이를 쳐서 오정호가 제적당하지 않게끔 만든다.
로맨스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타 드라마의 어설픈 로맨스보다 학생의 우정과 교사의 동지애가 뜨겁게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을' 중의 '을'이 펼치는 온정주의가 일으키는 변화이런 약육강식의 학교를 변화시키는 건 어느 기간제 교사의 애정이다. 기간제 교사는 갑을 관계에서 '을'인 교사다. 교사들의 관계에서도 계약직에 나이가 제일 어리기에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다. 2반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몇몇 아이들은 그깟 시 한 편 외우는 게, 정인재의 교수학습 패턴이 맘에 들지 않아 딴죽 걸기 일쑤였다. 그가 정인재였다.
이런 미약한 정인재가 학생들과 교사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민기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정인재는 학교에서 경질될 위기에 처하자 아이들은 집단으로 탄원서를 제출한다. 정인재가 비록 교수 학습 능력에서는 강세찬에게 뒤떨어질지 몰라도 아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교사라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건 강세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정인재라는 점이다. 강세찬은 "너 이래갖고 대학교에 진학하겠니? 이 성적 갖고는 어림없다"며 상담 받는 학생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건 기본인 시니컬한 독설가다. 이런 그가, 정인재 대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교장에게 공언한다는 건, "당신은 내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이니까요"라고 속마음을 고백하는 건 그만큼 강세찬 역시 정인재의 온정주의에 감화되었다는 걸 뜻한다.
▲학교 2013<학교 2013>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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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엄대웅(엄효섭 분)처럼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세찬처럼 족집게로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정인재가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퇴학 위기에 처한 문제아 오정호를 자석처럼 학교에 어떻게든 남아있게 만든 것도, 김민기(최창엽 분)처럼 소통을 바라는 학생에게 소통의 경로를 열어준 것도 모두 정인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첫 제자를 지키지 못해 교단을 떠나려는 강세찬이 사직서를 찢고 결국 학교에 남는 것도 다 정인재의 온정주의 덕이 아니겠는가. "내년에 어떡하실래요?" 하는 정인재의 물음에 "정 선생님이 계시면 남아야죠"라고 답하는 강세찬의 모습은, 시니컬한 수업 기계이던 강세찬이 정인재의 온정주의에 전도된 모습이 아니던가. 온정주의의 극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무단결석하는 오정호를 기다리기 위해 종례를 마치지 않은 정인재와 강세찬 두 교사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깊은 감회를 자아냈다.
소통은 사회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부모와의 소통, 교사와의 소통을 바라지만 소통이 차단된 학교에 갇혀 있다. <학교 2013>은 가장 힘없고 미약한 젊은 교사가 교실에 온정주의를 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소통이 어떻게 교단을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우리가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백마 탄 왕자의 판타지를 꿈꾸는 것처럼, <학교 2013>은 소통이 멸종한 우리 학교 현실에 정인재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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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에도 학교는 똑같았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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