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볼케이노 :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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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와 하네스, 두 남편의 마지막 선택은 놀랍게도 같다. 그 죽임의 방식마저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선 남편의 자리에 서본다. 두 사람은 자신의 곁을 지키며 평생 헌신해온 아내를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껏 간호한다. 그들의 진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고, 정신마저 흐려져 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아내를 보는 일은 지옥과 다름없다. 간병의 어려움에 지쳐서라기보다는 귀와 가슴을 파고드는 단말마의 비명을 없애줄 방법이 없으니 아예 고단한 인생을 끝내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럼 아내들은 어땠을까. 끝내 말 한 마디 없이 떠났으니 직접 들어볼 수는 없지만, 과연 언제까지 고통이 이어질지 도대체 언제쯤이나 고통이 끝날지 알 수 없고 움직이기는커녕 한마디 말도 못하고 누워있을 때 우리라면 어떤 소원을 가지게 될까.
이 다음에 내가 병에 걸려 더이상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인위적인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바람을 미리 말해둔다면 두 영화에서 남편들이 행한 범죄의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며 존엄하고 품위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식을 미리 고민해 표시해 두고, 가장 가까이에서 마지막을 함께할 사람들에게 알려놓는 일이 한가지 해법은 될 것이다.
바로 '죽음준비교육'과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이 여기에 해당한다. 참고로 '사전의료의향서'는 '스스로 판단 능력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 원하는 진료와 치료 내용에 대해 자신의 소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말한다.
▲영화 <볼케이노 :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에서 아픈 아내 옆을 지키는 남편 하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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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인구의 증가, 노부부만의 동거 비율 증가를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앞으로 노인 간병 문제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간병의 고통과 외로움, 거기에 죽음의 방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열심히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살인과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노부부 둘이 살다가 한 쪽이 병에 걸리면 배우자가 최선을 다해 돌보기는 하지만, 기간이 길어지고 병세가 악화돼 더이상 길이 없을 때 환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병 살인과 간병 자살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을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영화적인 성취와 의미, 노부부의 사랑이 영상에 아무리 아름답게 담겨있다 해도 그 안에 들어있는 아픔과 막다른 선택에 대해서도 열심히 이야기하는 게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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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 남의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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