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40)도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박재홍은 지난해 11월 30일 SK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다. 당초 선수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박재홍은 SK의 은퇴 후 코치 연수 제안을 거절하고 새로운 팀을 물색했다. 하지만 새해가 되도록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적지않은 나이에, 현 선수협 회장을 맡고있는 이력도 구단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프로야구 선수등록 데드라인인 1월31일이 임박하면서 박재홍은 정든 유니폼을 벗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박재홍의 은퇴는 한국프로야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92학번 황금세대'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에 이어, 박재홍마저 은퇴를 선언하며 이제 73년생 선수는 송지만 단 한명만이 남게 됐다. 이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야구팬들로서는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다.
프로야구 73년생-92학번에는 유난히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박찬호와 박재홍을 비롯하여, 정민철, 임선동, 염종석, 최원호, 차명주, 전병호 등 소위 유명한 프로선수들만 모아도 이 정도다. 그리고 최근 안타까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조성민 역시 이들과 같은 92학번 세대의 스타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92학번 세대중에서도 박찬호와 박재홍은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으며 꾸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장수한 스타들의 대명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투수와 해외파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비며 한국야구의 세계화를 선도했다면, 박재홍은 타자와 국내파를 대표하는 한국프로야구사에 한획을 남긴 대형 타자였다.
특히 박재홍에게는 한국형 '호타준족(好打駿足).의 대명사'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않는다. 광주일고-연세대를 졸업하고 1996년 현대 유니콘스(현 넥센)에 입단한 박재홍은 데뷔 첫해 신인으로서 프로야구 최초의 30(홈런)-30(도루)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박재홍이 나타나기 전까지 20-20클럽 기록은 총 7차례 작성되었지만, 30-30클럽은 전인미답이었다. 당시 최고의 타자로 불리우던 이종범보다도 한발 앞서 달성한 대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역대 한국프로야구에서 30-30을 달성한 선수는 모두 5명(박재홍, 이병규, 이종범, 홍현우, 제이 데이비스)이지만 박재홍을 제외하면 모두 한번에 그쳤다. 그러나 박재홍은 데뷔 시즌 이후에도 1998년(30-43)과 2000년(32-30)에 걸쳐 총 3차례나 30-30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호타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싶다면 박재홍의 전성기를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박재홍은 프로 17시즌 통산 1797경기에 나서 타율 2할 8푼 4리 300홈런 1081타점 267도루의 기록을 남겼다. 2005년 200홈런-200도루 달성했으며 다시 2009년 4월 23일에는 프로야구 최초의 250홈런-250도루 달성에 성공했다. 우승복도 많아서 현대 시절인 98년과 2000년, SK로 팀을 옮겨서 2007~2008년과 2010년까지 총 다섯 번이나 우승을 경험했다. 골든글러브 수상경력만 4회에 이른다. 98년에는 방콕 아시안게임 드림팀 1기로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아쉬운 것은 박재홍 선수인생 최대의 숙원이었던 300 홈런-300 도루에 끝내 도달하지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30대 후반을 넘기며 체력과 파워의 하락, 플래툰시스템으로 인한 출장기회의 감소가 겹치며 박재홍의 기록행진은 자연히 하락세를 걸었다. 최근 3년간 박재홍의 추가한 기록은 14홈런-5도루에 불과했다.
2012년 10월 3일 잠실 LG전서 2회초 상대선발 주키치로부터 좌월 투런홈런을 날리며 한국 야구 역대 7번째로 300홈런 고지에는 도달했으나, 올시즌 도루는 단 하나도 추가하지못했다. 지난 시즌 기록은 46경기에서 타율 2할5푼(104타수 26안타) 5홈런 18타점으로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300-300은 이루지못했지만 박재홍의 기록에 근접할만한 선수는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타자로 불리우던 양준혁(351홈런-193도루)과 이종범(194홈런-510도루)도 200-200조차 돌파하지못하고 선수인생을 마감했다.
또한 말년에 박재홍은 선수경력을 떠나 야구계를 위하여 의미있는 공헌도 남겼다. 위기에 빠진 선수협의회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며 전임 집행부의 비리를 청산하고 선수협을 제 자리로 돌려놓은 것. 지난해 선수협은 권시형 사무총장의 초상권 비리와 공금 횡령 파문이 불거지며 이미지가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였고, 박재홍에게 선수협 쇄신의 무거운 책무가 주어졌다.
박재홍은 사실 그간 야구팬들에게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선수는 아니다. 뛰어난 성적이 남긴 야구에 관한 자신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않는 거침없는 태도로 인하여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천재'라는 이미지도 따라다녔다. 선수협 회장을 맡기전까지 소속팀에서 주장을 맡은 적도 없는 박재홍이 전체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표하는 리더가 된데 의구심어린 시선도 있었다.
원래 박재홍도 선수협회장을 맡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후배들의 추대로 어쩔수없이 등떠밀려 맡은 모양새었지만, 당시 박재홍은 부진한 성적으로 소속팀에서도 방출위기에 몰려있는 가운데 모든 구단들이 꺼려하는 선수협의 수장까지 맡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재홍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않았고, 일단 회장직에 오르자 단호한 일처리로 사분오열된 선수협을 추스르는데 앞장섰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박재홍의 희생으로 선수협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을수 있었다. 그리고 떠나는 순간에는 선수협 파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후배이자 전 선수협 회장인 손민한을 배려하는 대인배의 풍모도 보여줬다. 이전까지 박재홍의 이미지를 좋아하지않았던 야구팬들도 '회장님' 박재홍의 행보에는 박수를 보냈고, 그로 인하여 박재홍을 다시보게되었다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선수 박재홍의 시대는 이제 추억으로 사라진다. 은퇴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선수협 회장의 무거운 부담도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데뷔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언제나 자신의 선택에 당당했고, 말보다 실력으로 승부의 세계를 헤치며 살아온 '사나이' 박재홍의 마지막 모습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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