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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인연과 악연의 굴레

[리뷰]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모두가 봐야할 영화

13.01.11 10:33최종업데이트13.01.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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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포스터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포스터NEW
지난해부터 <렛미인> <싱글맨> <루퍼> <남영동1985> <원데이> <레미제라블> <호빗> <라이프 오브 파이> 등 다양한 영화를 봤지만 가슴 한 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 생각해보니 이런 거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기나긴 고통과 순간의 기쁨을 오가는 삶의 굴레를 걸어왔다. 하지만 이를 설명할만한 명확한 지식도 지혜도 갖고 있지 않다...'

최근 프랑스 대혁명사를 다룬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이 관객수 5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관객들 대부분이 중년층이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 군부 정권과 민주화운동을 겪은 세대가 21세기 현재에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중에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워쇼스키 남매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를 내놨다. 비록 미국에서는 혹평에 이은 흥행 참패로 고전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한 번 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대만족.

<클라우드 아틀라스>, 여러분들의 눈을 믿어봐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500년에 걸쳐 이뤄진 6개의 스토리 혹은 '구름위 대륙'으로 직역하기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버트 프로비셔(벤 위쇼)가 작곡한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가 더 어울린다. 워쇼스키 남매와 공동연출을 한 독일출신의 톰 티크베어 감독이 작곡했다는 영화 메인타이틀이 큰 줄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시공을 가로지르는 6개의 스토리들을 보면 똑같은 인물들이 태어나고 죽으면서 인연과 악연을 반복하고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접목시켰다는 평이 결코 무리는 아니다.

이 영화는 6개의 스토리로 구성돼 있다. 1849년 흑인노예들의 삶, 1936년 동성애 작곡가의 비극, 1974년 핵발전소의 거대음모, 2012년 사랑에 실패한 출판업자의 모험, 2144년 복제인간노예와 미래도시 서울, 2346년 핵오염으로 파괴되가는 지구를 벗어나려는 사람들 등이다.

이들 여섯가지의 스토리는 다른 상황, 이를 가로지르는 인간의 직관을 다루고 있다. 가령, <클라우드 아틀라스> 첫 번째 스토리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1849년 변호사 출신인 애덤 어윙과 흑인 노예 오투아(데이비드 가시 분)의 만남이 눈에 띈다. 그런데 오투아가 백인인 어윙의 눈을 보며 "그를 믿기로 했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뿐 아니라 흑인 노예 오투아가 살아남기 위해 범선의 중간 돛을 내리는 장면이 미래국제도시 네오 서울에서는 클론 손미(배두나 분)와 장혜주(짐 스터게스 분)가 탈출하는 장면과 매치된다.

직관을 믿고 그들이 찾는 것은 '자유'

손미와 장혜주가 탈출하는 장면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복제인간 클론 손미(배두나)와 반란군 장교 장혜주가 탈출하는 장면이다. 이 스토리의 배경인 2144년 글로벌 국제도시 네오서울은 한글과 영어가 공존한다. 과거 백인과 흑인노예가 사는 미국과 별차이 없는 그런 곳이다.
손미와 장혜주가 탈출하는 장면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복제인간 클론 손미(배두나)와 반란군 장교 장혜주가 탈출하는 장면이다. 이 스토리의 배경인 2144년 글로벌 국제도시 네오서울은 한글과 영어가 공존한다. 과거 백인과 흑인노예가 사는 미국과 별차이 없는 그런 곳이다.NEW

영화는 관객들의 시선을 모아놓고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직관을 통해 본 모든 인식의 본질은 같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예고편에서 소개된 것처럼 아래와 같은 대사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들과 묶여 있고,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며, 우리가 저지른 악행과 우리가 베푸는 선행이 미래를 탄생시킨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억압과 차별이 난무하는 6개의 스토리를 통해 주인공들은 그들의 눈, 즉 직관을 믿고 '자유'를 찾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덧붙여 이 영화는 선은 언제나 선을 추구하고 악은 언제나 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말고 자유를 갈망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희랍철학자 에픽테투스의 '삶의 철학'(Enchiridion)에 소개된 그 문장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운명의 여신이 잠시 맡겨둔 것일 뿐, 참된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너에게 맡겨져 있는 동안 그것을 남의 물건인 듯 대하라. 마치 여행자가 여관을 대하듯. 가진 것을 잃을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에 올린 기사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워쇼스키 남매 6중주 에픽테투스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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