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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공식 그대로... 많이 봤다 그장면

재난영화 모범답안 짜집기, 영화 <타워>

12.12.29 15:30최종업데이트12.12.2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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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워> 포스터. ⓒ 영화 <타워>

국내에 개봉한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는 2009년 개봉한 자연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 (윤제균 감독, 설경구, 하지원 주연)였다.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사상 최초로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해운대>를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는 2011년에는 괴수 블록버스터 <7광구>를 통해 <해운대>에 이어 또 다른 흥행신화를 쓰려고 하였다. 하지만 <7광구>는 개봉과 동시에 재앙에 가까운 악평에 시달리면서 전국관객 224만 명 동원에 그치면서 손익분기점에 한창 모자라는 흥행성적을 기록하였다.

<해운대>, <7광구>에 이어 2012년 겨울 또 다른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하였다. 이번에는 사람의 탐욕에 의한 인재(人災)를 다룬 재난영화 <타워>이다.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세워진 108층짜리 초고층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재난을 다룬 영화인데, 제목이나 내용을 들으면 1970년대 극장가를 석권했던 존 길러민 감독의 할리우드 재난영화 <타워링>이 쉽게 연상될 것이다.

초고층 빌딩에서 부실 공사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재난을 다룬 <타워링>은 스티브 매퀸, 폴 뉴먼, 리처드 챔벌레인, 윌리엄 홀든, 페이 더너웨이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었다. 고층빌딩의 대형화재와 이를 수습하는 소방관 캐릭터는 영화 <타워>에도 고스란히 재연된다.

영화 <타워>도 <타워링> 못지않은 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전설적인 소방수로 등장하는 설경구를 비롯, 김상경, 손예진, 안성기, 차인표 등의 화려한 주연급 배우들에 김인권, 박철민, 김성오, 박정학, 이한위, 정인기 등 약방의 감초같은 조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등장하는 배우들을 보면 영화 <해운대>와 <7광구>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상당수(설경구, 안성기, 김인권, 박철민, 박정학 등)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연출은 2011년 <7광구>에서 쓴맛을 봤던 김지훈 감독이 맡았다. 김지훈 감독과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는 <7광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작심한 듯 잘 되는 재난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공식을 상당 부분 차용하였다.

우선 크리스마스를 앞둔 고층빌딩에서 재난이 벌어지는 구조는 1988년 극장가를 휩쓸었고 지금도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교과서로 남아 있는 <다이하드>의 설정이 차용된 느낌이다. 영화 <타워>에서는 딸이 아빠(김상경)가 근무하는 빌딩을 찾아가는 설정으로 적용되어 있다.

영화 <타워>의 한 장면. ⓒ 영화 <타워>


우선 재난 영화를 자처한 만큼 본격적인 재난이 벌어지기 직전에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설정은 영화 <해운대>와 흡사하다. 그리고 건물 자체에 기본적인 결함(공사 구조를 변경하는 바람에 배수관이 얼어붙어서 제대로 화재 방지 스프링쿨러가 작동이 안되고, 식당 배기구가 터무니 없이 부족해서 화재시 위험이 예상되는 점)으로 인해 재난을 암시하는 듯한 설정은 불량 전기 배관을 사용하는 바람에 화재의 위험이 암시되었던 영화 <타워링>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재난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탐욕의 화신(차인표 분)과 무개념으로 일관한 얄미운 캐릭터(국회의원 사모님)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언제 재난이 발생한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긴장감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등장하는 캐릭터의 면모들을 보면서 그 캐릭터들의 운명도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다.

빌딩 소유주(차인표)의 무리한 탐욕으로 인해 동원된 헬기들은 인공눈을 뿌려주는 이벤트를 펼치던 중 고층빌딩에서 발생하는 기류에 휩쓸리면서 빌딩과 정면충돌하면서 빌딩 안으로 추락한다. 마치 9.11 테러 당시 무역센터 빌딩으로 항공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헬기가 폭발하면서 건물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고층빌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게 된다.

불길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소방대원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의 비번 휴가를 반납하고 화마가 휩쓰는 현장으로 뛰어드는 소방대원 강영기를 연기한 설경구의 모습은 영화 <분노의 역류>의 커트 러셀을 연상하게 한다. 불길 속에서 역류가 발생하고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는 모습은 <분노의 역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화재가 발생하면서 영화가 본격적인 재난모드로 돌입하게 되는데, 불길에 휩싸인 빌딩의 모습이나 헬기가 추락하는 장면, 그리고 빌딩 사이를 연결한 구름다리가 무너지는 장면들에 도입된 CG는 상당히 수준 높게 구현되어 있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와 긴장감을 더욱 높여준다.

액션신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견주어도 손색없이 잘 구성되었고 긴박감을 전달한다. 하지만 캐릭터나 내용전개가 예상했던 대로 척척 맞아 떨어지면서 영화에 대한 흥미가 더 살아나지 못한다. 특히나 자신의 탐욕으로 제멋대로 방화셔터를 내리는 괴물같은 탐욕의 빌딩 소유주(차인표)나 아수라장 와중에서도 자신의 특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철저하게 무개념으로 일관하는 국회의원(박정학) 부부에 대한 풍자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만한 재치 넘치는 응징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다이하드>에서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려던 무개념 기자에게 존 맥클레인의 부인이 직접 강펀치를 작렬하는 통쾌한 장면은 아쉽게도 등장하지 않는다. 워낙에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통에 영화 후반부에는 캐릭터들의 운명을 수습하는 데 정신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종반부에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1998년에 개봉해서 큰 성공을 거둔 재난 블록버스터 <아마겟돈>의 결말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결국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잘되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공식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짜집기 하여 안전운행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탓에 큰 감흥은 느껴지지 않는다. 극 중 이대호(김상경)과 서윤희(손예진)의 러브라인도 그다지 애절하게 와닿지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의 운명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큰돈 들여 만드는 블록버스터인 만큼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안전운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타워>는 지나치게 안전운행에 집착한 느낌이다. 도로 주행에 비유하자면 길이 뻥뻥 뚫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속 80km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속보이는 설정과 짜집기 대신에 좀 더 창의적인 설정과 캐릭터 구현이 아쉽게 느껴지는 영화 <타워>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예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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