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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의 봄'은 가고... 아쉬움 남긴 절반의 성공

[프로야구 구단별 2012시즌 결산 3] 넥센 히어로즈

12.12.27 11:17최종업데이트12.12.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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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시즌 넥센 히어로즈가 최하위로 처지게 되자 팬들이나 야구 관계자 사이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사자성어로 요약하자면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2008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을 흡수, 창단하여 리그에 뛰어든 히어로즈는 2011년 시즌까지 팀 내 주축선수들을 트레이드해서 얻게 된 현금으로 구단살림을 유지하였다.

히어로즈가 창단 이후 다른 구단에 넘긴 주축 선수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장원삼, 이현승, 마일영, 고원준, 황재균, 이택근(FA 계약을 통해 올 시즌 다시 복귀) 등 팀 전력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선수들이었다. 매년 주력 선수들을 내다 팔면서도 히어로즈는 용케도(?) 리그 최하위를 면해왔다. 그러나 지난 시즌 마침내 전력 누수의 후유증을 혹독하게 겪으면서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최하위로 추락한 이후 히어로즈는 스토브리그에서 유례없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를 선언한 이택근에게 '4년 5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을 안겨주면서 친정팀으로 복귀시킨다. 히어로즈의 깜짝쇼는 멈추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복귀선수 특별지명 당시 지명했던 '핵잠수함' 김병현을 영입하면서 팬들과 야구계를 놀래킨 것이다. 선수들을 내다 파는 이미지에 익숙했던 히어로즈가 선수들을 영입한 것이 생소해 보일 정도였다.

이전까지 다른 행보를 보인 히어로즈는 올 시즌 초반 순위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흥행몰이에 앞장선다. 히어로즈의 돌풍을 주도한 주역은 이택근과 김병현 등 거액을 들여 영입한 슈퍼 히어로급 선수들이 아닌 박병호와 서건창 등 그늘에 가려져 있던 선수들과 '용도폐기' 직전에 있다가 부활에 성공한 외국인 투수 나이트였다. 또한 대형 유격수로서 가능성을 보이다가 잠시 주춤했던 강정호는 시즌 초반 가공할 만한 홈런 행진을 펼치면서 사상 첫 유격수 홈런왕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필자가 올 시즌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개막전을 직접 관전했을 당시 가장 눈에 뜨이던 선수가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선수였고,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선수가 부상으로 띌 만한 플레이를 펼친 것이었다. 그 선수는 다름 아닌 서건창이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LG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방출된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히어로즈에서 신고선수로 선수생활의 기회를 잡게 된 서건창은 스프링 캠프 기간 동안 절박함이 묻어난 성실한 플레이를 통해 김시진 감독의 눈에 띄어 개막전 선발 출장 기회를 잡게 되었다. 주전 2루수 김민성이 부상으로 빠지게 되면서 기회를 잡은 서건창은 공수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히어로즈 돌풍에 앞장선다.

5월 한때 리그 1위도... 박병호·서건창·강정호 '펄펄'

히어로즈는 5월 한때 리그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면서 전반기 내내 최고의 돌풍을 몰고 다녔다. 전반기 마감 성적은 40승 36패 2무. 3위로 전반기를 마쳤는데 히어로즈로 리그에 참여한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자이언츠, 타이거즈 등 전국구 인기구단이 원정팀으로 방문할 때에야 매진되던 목동구장은 홈팀 히어로즈의 성적 상승과 더불어 홈팀 응원석에도 히어로즈 구단의 막대풍선의 물결로 가득 차는 성과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런던올림픽에 스포츠 팬들의 관심이 몰려 있는 동안 히어로즈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후반기가 시작된 7월 24일부터 8월 31일까지 히어로즈는 11승 1무 18패를 기록하며 전반기 동안 벌어놓은 승수를 까먹고 말았다. 4강권 경쟁을 벌이는 팀간의 승차가 극도로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었던 순위 경쟁에서 승패 마진이 -7로 뒤처진 것은 크나큰 타격이었다. 그리고 9월 들어 펼쳐진 초반 10경기에서 히어로즈는 2승 8패를 기록, 4강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지게 되었다.

전반기 돌풍을 감안할 때 후반기의 갑작스런 몰락은 너무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결국 팀을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이끌어온 김시진 감독이 시즌 막판 해임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전반기 40승을 기록했던 히어로즈는 후반기에 고작 21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4위 롯데 자이언츠의 승수가 65승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히어로즈의 뒷심이 조금만 더 발휘되었다면 시즌 막판까지 4강 경쟁은 안개 구도에 휩싸였을 것이다.

비록 정규시즌 순위는 6위에 그쳤지만 히어로즈는 올 시즌 리그 홈런 1위(박병호), 타점 1위(박병호), 평균자책점 1위(나이트)의 선수들을 배출하였다. 만약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들에게 즉석 단기임대권이 주어졌다면 가장 많은 애정공세를 받았을 팀은 단연 히어로즈였다. 박병호, 강정호, 나이트 등 투타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대거 히어로즈에서 배출되었다.

히어로즈는 용병 농사에서도 가장 짭짤한 수익을 거둔 팀 중의 하나였다. 우완투수 브랜든 나이트와 좌완 투수 벤 헤켓이 합작한 승수는 27승에 달하였다. 나이트, 헤켓 원투펀치는 리그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원투펀치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마무리 손승락은 33세이브를 거두면서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다. 리그 정상급의 원투펀치와 마무리를 보유하고도 히어로즈는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가장 큰 원인은 나이트, 헤켓, 손승락을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의 성적이 한참 모자랐다는 점이다. 토종 원투펀치로 성장해줄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강윤구와 문성현은 여전히 성장이 더딘 모습을 보이면서 김시진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핵잠수함 김병현도 메이저리그 시절의 경험을 활용한 관록의 피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너무나도 오래된 실전 마운드 경험 공백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강윤구, 문성현, 김병현은 합쳐서 고작 8승밖에 거두지 못했는데, 세 선수가 합쳐서 최소 15승 정도만 거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중간계투진에 믿을 만한 필승조가 없었다는 점도 히어로즈 투수진의 블랙홀이었다. 신인 한현희, 좌완 박성훈 등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경험 부족으로 인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뒷심 부족으로 '가을야구' 실패... 시즌 중 감독 해임까지

타선에서는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 등 이른바 LPG 타선이 리그에서 최고의 폭발력을 과시하면서 돌풍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해 트윈스에서 트레이드된 박병호는 생애 첫 풀타임 시즌에서 31홈런 105타점을 기록, 리그 최고의 거포로 자리 잡으면서 생애 첫 MVP의 영광을 얻었다. 강정호는 시즌 초반 가공할 홈런행진을 기록하면서 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로 자리매김하였다.

3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 이택근은 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특유의 정교한 타격을 과시하면서 클린업 트리오에 중량감을 보탰다. 히어로즈 중심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박병호와 강정호 등이 장타력 뿐만 아니라 기동력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두 선수 모두 20-20(홈런, 도루)클럽에 가입하면서 호타준족 클린업 트리오의 위용을 과시하였다.

상위 타선에서는 새로운 성공신화를 써간 서건창이 단연 돋보였다. 박병호와 마찬가지로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서건창은 타율 0.266, 도루 39개를 기록하면서 히어로즈 타선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타선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박병호와 강정호에 쏠려 있었다는 점이 옥의 티였다. 김민성이 하위타선에서 활약을 펼쳤지만 2번 타순에서 좋은 활약이 기대되었던 유한준이나 베어스에서 트레이드된 이성열 등이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중심타선을 받쳐주지 못하였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 기대되었던 히어로즈는 아쉽게도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MVP(박병호)와 신인왕(서건창)을 배출하였고,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는 외국인 선수라는 한계로 인해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리그 최고의 투수로 이견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또한 골든글러브에서도 히어로즈는 3명(박병호, 강정호, 서건창)의 선수가 한꺼번에 수상에 성공하는 경사를 맞이하였다.

홈구장인 목동구장은 59만9381명의 총관중을 동원하면서 서울 서남부지역 '야구의 메카'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였다. 히어로즈의 2012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히어로즈는 팀내 주루코치였던 염경엽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을 무난히 잘 이끌었던 김시진 감독을 해임한 사유는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였던 만큼 염 신임 감독은 부임 첫 해부터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박병호, 서건창 등 풀타임 2년차 시즌을 맞이하는 선수들의 '소포모어 징크스(2년차 징크스)'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모든 전력이 불확실한 상황인데 과연 내년 시즌에도 올 시즌 전반기와 같은 돌풍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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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yhjmania)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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