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곱창야구장에 가면 곱창도 좋지 아니한가양형진
야구장에 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먹거리는? 야구장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야구장을 가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먹거리와 음료수, 주류들을 보면 어느 정도 어림짐작은 간다. 일단 먹거리 1순위는 치킨이다. 야구장을 가는 길에 허가 받지 않은 치킨 노점상들이 줄을 서 있다. 동네 치킨집들도 대목이다 싶어 야구장 앞에 원정 판매단을 배치해 놓는다. 과연 그 치킨들이 다 팔릴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장사가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 치킨 한 마리라도 더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험상 먹거리 노점상의 분포도는 잠실야구장 가는 길이 목동야구장 가는 길보다 훨씬 다채롭고 다양하다. 우선 잠실야구장의 동선을 살펴보면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로 나온다. 지하도 계단을 올라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먹거리는 쌍팔년도부터 늘 그 자리에 있던 김밥, 오징어, 팩소주, 캔맥주 등을 한꺼번에 큼지막한 대야 위에 올려놓고 파는 아줌마 부대들이다.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그 자리는 야구 경기가 끝날 때쯤 되면 포장마차 촌으로 변신하여 야구를 보고 나온 팬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특히 빅매치인 LG와 해태, OB와 LG 등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 포장마차 촌은 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지금은 포장마차 촌은 자취를 감추었다. 아마도 단속의 영향이 큰 듯싶다. 대신에 잠실야구장 내외야 출입구로 향하는 길에 먹거리들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특히 올 시즌에는 던킨 도너츠와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마르쉐'로 유명한 아모제가 새로 입점하여 먹거리의 선택폭이 더 넓어졌다.
2003년에 마르쉐에 간 일이 있다. 그 일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거기서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4번 타자였던 용병 클리프 브룸바가 팀 매니저와 함께 음식을 맛깔나게 먹었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당시에 브룸바에게 가서 사인 한장 받을려다 참았다. 사인 받을 만한 종이가 없어서... 영수증에다가 사인이라도 받을려 했다가 브룸바가 불쾌해할것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참고로 2001년 겨울에는 압구정동 길가를 친구들과 배회하다가 이승엽-이송정 커플을 우연히 발견해서 어떻게 해서든 사인을 받아야겠다는 의무감에 영수증에 급 사인을 받았던 바 있다.
갑자기 이야기가 딴 길로 새버렸다. 아무튼 야구장 최고의 먹거리는 보편적으로 '치맥(치킨과 맥주)'이다. 요즘처럼 해가 길어진 때에는 야구장 스탠드에 햇볕이 꽤 강렬하게 내리쬔다. 넓게 트인 녹색 그라운드를 보면서 맥주 한 모금 들이키면 정말 일품이다. 가끔 석양이 지는 그라운드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다보면 필자가 중학생이던 시절 TV 광고를 수놓던 그 장면! 명곡 'What a wonderful world'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깔리는 금빛 보리밭에서 맥주를 맛깔나게 들이키던 만화가 이현세 화백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원하게 맥주를 2, 3캔 정도 마시고 나면 서서히 위에서 먹거리를 넣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역시 맥주에는 치킨이 최고의 안주인 듯싶다. 그리고 야구장 주변에서 파는 김밥은 정말 맛이 없다. 잠실, 목동, 문학구장 등에서 다 사서 먹어봤지만 입맛만 버렸을 뿐이다. 차라리 집에서 손수 정성스레 싸온 김밥을 먹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렇게 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데도 불구하고 각 구단들은 여전히 먹거리 개발에 소홀한 듯싶다. 무슨 행정적인 제약이 있는지는 몰라도 주말만 되면 자리를 구하기 힘든 야구장에 왜 번듯한 먹거리 하나 개발하지 못하는지.
그런데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고 조명탑이 켜지기 시작하면 야구장은 제법 추워지기 시작한다. 솔직히 7~8월만 제외하면 야구장은 일교차가 꽤 심하기 때문에 겉옷을 반드시 챙길 필요가 있다. 몸이 추워지면 맥주 생각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야구경기를 다 보고 나와서 일행들과 시간이 되면 술 한 잔 가볍게 걸치러 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필자는 100% 따뜻한 사케나 소주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이미 맥주를 마신 상태에서 소주나 사케를 걸친다면 위 속에서 알아서 폭탄주가 제조되기 때문에 뇌파에 마취 효과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지난 25일 목동구장에서 김병현과 류현진의 불꽃튀는 맞대결 뒤에 펼쳐진 구원투수들의 대하 반전드라마를 보고 나서 가볍게 술 한잔을 걸치고 싶어졌다. 야구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목동구장을 나와서 오목교역 근처를 배회하다가 곱창집을 선택했다. 야구장 근처에 있는 곱창집이라 그런지 야구 티켓을 제출하면 소주 한병을 무료로 준다는 판촉을 진행하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꽤나 넥센 히어로즈에 관심이 많으신 모습이었다. 올해 들어서 야구장 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하신다. 역시 성적이 좋고 볼 일이다. 그래서 야구 하는 날이면 덩달아 장사가 잘 되시겠네요라고 여쭤봤더니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은 마치 허를 찌르는 '스퀴즈 번트' 같았다. 오히려 손님이 줄어든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이미 야구장에서 맥주를 실컷 마신 상태라 계속 마시던 술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근처에 곱창집, 횟집, 고기집은 오히려 야구 하는 날이면 손님이 줄어든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야구장에 아예 곱창집을 입점시키는 것이다. 안 될 것도 없다. 야구장에 가면 반드시 소주만 마셔야 되나? 소주가 굳이 부담스럽다면 과일 소주에 곱창을 패키지로 묶어서 파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비단 곱창뿐만 아니라, 이미 문학구장에는 있지만 삼겹살을 팔아도 된다. 고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밥과 국을 한데 묶은 패키지 세트로 파는 것이다.
야구장과 소주는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상극의 이미지로 대립되었다. 왜냐하면 쌍팔년도만 하더라도 술에 잔뜩 절은 아저씨들이 병을 서슴없이 던지거나 옆에 앉아 있는 초면의 야구광들과 UFC 맞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수 높은 소주만 마시면 야구장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길 것만 같은 트라우마가 은연 중에 심어져 있다.
하지만 도수 높은 소주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과일소주, 칵테일 소주 등의 다채로운 먹거리를 입점시킨다면 소주가 관객들의 폭력 본능을 부추긴다는 편견은 자연스레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뉴스에 보니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가 국내 막걸리를 야구장에 입점시킨다고 한다. 국내 야구장에서는 취급도 하지 않는 우리 전통술 막걸리를 일본 야구장에서 맛보게 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다.
야구장에 곱창이 어색하지 않는 그날이 언제쯤 올까. 야구에게 치킨만 어울리지는 않을 것이다. 곱창도 충분히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맛있어야 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