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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순수와 웅크린 가부장...그리고 '96학번'

[리뷰] 96학번의 <건축학개론> 관람기

12.04.11 08:58최종업데이트12.04.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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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학개론> 포스터
<건축학개론> 포스터롯데엔터테이먼트
왜 이렇게 끌리는 걸까? 세 번. 지금까지 <건축학개론>을 세 번 봤다. 첫 번째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의 서연과 일체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밀려왔다. 심장 전체에 퍼지는 그 저릿한 느낌. 촉촉하고 깊이 스며들어 아롱거리는 친구와 나의 눈동자. 놓치기 싫은,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함께 보러 간 친구와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먹먹한 느낌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떠날 줄 모르고 입과 귀에서 맴도는 김동률의 저음.

"어떻게 하면 좋아."

친구는 내 팔을 지그시 감싸고 몇 번 흔들어대며 아쉬운 신음을 토해냈다. 나는 그저 웃으며, "우리 밀려오는 감정들을 그대로 가지고 며칠 살아보자"고 했다. 그랬다. 처음 봤을 때는 이는 분명 "각질 하나 없는 감성의 결"(이동진 영화평)을 아련히 건드리는 그런 영화였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 영화에 나오는 승민, 서연은 같은 96학번이다. 이 점 때문에, 영화를 거듭해 볼수록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로만 읽히지가 않았다. 첫사랑은 그저 모티브일 뿐이며, 연정으로만 머무는 그런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동시대를 경험했던 친구로서 <건축학개론>를 이해해보기로 했다.

<건축학개론>의 축, '사는 곳 바라보기'

영화 <건축학 개론>의 열쇠는 영화 초반 드러난다. "'애정을 가지고 내가 사는 곳을 이해하는 것'이 건축학개론의 시작"이란 대사. 영화는 첫사랑의 감성뿐만 아니라, '사는 곳'에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고즈넉한 분위기 가득한 정릉. 북한산도 가까워 공기도 좋은 그곳. 옛 추억이 살아 있는 한옥.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지만, 심리적 괴리감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20세기와 21세기의 경계. 삶의 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곳에 사는가'가 한 사람의 히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게 되는 현실.

개론 수업의 일환으로 등교 경로를 표시하는 도중, 강남에 갇혀 살고 있는 재욱은 보광동이 어디냐고 묻는 교수에게 서울에 있는 거냐고 반문한다. 8학군 학교 출신 혹은 그 지역 거주자 다수가 다니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빨간 딱지 붙은 서울시 지도. 이 장면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현실과 오버랩되면서, 일류 학교에 특정 지역 출신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이 1996년에도 분명 존재했음을 알린다.

즉, 현재 계층분리의 시발점은 적정한 성장을 이루어내어 한껏 부풀어 있던 그 시절, IMF라는 외부충격으로 새로운 틀이 짜여지기 전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강남공화국'에 갇혀서 생산된 재욱은 특정 시점부터 과잉공급되고 있는, 만지면 날아갈 듯한 플라스틱 인형을 보는 듯하다.

늘 강북에 살아 강남 개포동이 궁금했다는 승민,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두 개의 가슴으로 공유하며 과대성장 국가의 토사물일 뿐인 아파트 무더기를 배경으로 아주 사적인 가족 이야기를 나눈다.

풀 한 포기 살뜰히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해 콘크리트 상자들로 범벅이 된 도시의 단면을 바라보며, 압구정이 멋있다며 동경하던 서연. 개포동 사모님으로나타난 서연은 어쩌면, 바로 그날 동경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물리적 거리로 가장 멀리 위치한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기 위해 얼마나 용을 썼던가 강조하는 그녀의 말에서 1996년 이래 전국 곳곳에서 유입된 서울 동경 소년 소녀들의 행렬을 가히 상상하고도 남는다. 서울이 곧 한국인 듯 계속 비대해져 가고 있음은 당연지사. 한국에서도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 주류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서연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인지도 모른다.

압서방(압구정, 서초, 방배) 오피스텔에 사는 재욱, 반지하임에도 압서방에 둥지를 틀었다며싱긋 웃는 서연. 아버지 친구분의 집에 얹혀 있는 것보다는 독립적인 공간이 생겨서 좋긴 하겠지만, 서연의 마음 속엔 드디어 대한민국 주류의 땅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였을 터다.

어쩌면 그날로 승민과는 다른 기차를 타게 된 것이다. 같은 공간에 살지 않을 뿐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외계의 공간으로 진입한 서연. 언젠가부터 중산층의 대명사가 된, 아파트 거주자, 제법 사는 사람들이 모인 강남 아파트. 어머니에게 그곳으로 이사가 보자며 강짜를 놓고 'GEUSS' 티셔츠를 벗어 던져도 보지만, '집은 그냥 집일 뿐'이라는 지론을 가진 어머니에게 비싼 밥 먹고 나부대는 헛소리 정도로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집은 그냥 집, 그저 사는 곳일 뿐, 이 곳이 대표성을 띠는 것은 아닌데 언제부터인지 집과 그저 지리적 근접성으로 엮인 행정적 분류가 주는 언어적 상징성에 일희일비하게 되었다.

정작 원인은 문화적, 감성적 괴리감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15년 전 과거.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15년 전 과거.롯데엔터테이먼트

승민의 오해는 분명 심리적 거리감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자격지심이 바탕일 것이라 짐작한다. 자신과 다른 세계로 홀연히 떠나버린 서연을 바라보며, 실은 열패감을 느끼지만,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을 법한 부도덕한 상상으로 서연을 꺼져야만 하는 촛불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정작 그 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강남과 강북으로 떨어져버린 지역적, 계급적 거리감이라기보다는, 실은 서로 만날 수 없는 감성의 결과 문화적 거리를 좁힐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대학가요제에서 검정 티셔츠에 흰 칼라를 단정히 내어놓고 <하얀 밤에>를 열창하던 피아노 치는 청년 김동률과 야무져 보이는 서동욱에게 마음 설레었던 그 시절 소녀들에게, <전람회> 1집 앨범은 지금의 버스커버스커만큼이나 색다르고 기다려지는 옵션이었다. 이는 남학생도 다르진 않으리라. 전람회의 노래처럼 고백하기에 좋은 곡도 없었으니까.

모처럼 만나는 세련된 발라드. 발매된 지 2년이나 지났음에도, 이 곡이 뭐냐고 묻는 승민이 <기억의 습작>의 가사를 가슴 깊이 품고 있었더라면, 승민이 서연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문화의 메카인 서울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으리으리한 전축이 없이도 휴대용 CDP로 문화자본을 충분히 소유할 수 있는 시대에 승민은 당시 시류와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었던 셈이다. 취향의 문제, 혹은 유행에 둔감했다 하는 게 맞을까? 연희동에 있는 들어가기 힘든 학교에 들어가려면 그런 감성을 누리는 것은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정릉이 아무리 고즈넉함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삭막한 거대도시의 일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울에서 다양한 문화적 자극은 다 누리고 사는 것 같지만, 제주도 현무암을 타고 넘어온 다정한 바닷바람이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머리를 맡기며 자라난 서연하고 비할 수 있을까? 음대생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살아온 곳은 같은 대상에도 다르게 반응하도록 길러내는 법이다.

재건축되는 서연의 제주도 집 앞 전경을 보고나니, 어떻게 스무 살의 서연이 압구정에 매료되었는지 의아했다. 가끔 자연의 아름다움은 한없는 지루함과 비루함의 느껴질 수도 있는 법. 자본의 토사물과 서울을 동경하던 스무 살 소녀는, 세상에 깎이고 부딪히고 나서야, 비로서 어린 시절 길러준 바다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을 것이다.

회상하기 : 왜 96학번인가?

잠시 주인을 잃고 죽어 있는 한옥 마루에 앉기 전, 서연에게 받쳐주는 승민의 학번이 적힌 수줍은 리포트 패드. 그랬다. 그땐 과제를 낼 때, 손 글씨로 써서 냈었다. 96학번은 기술적으로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작의 경계에 있는 그런 학번이었다.

지금이야 보편화되어 있는 인터넷도, 96학번 시절에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 PC통신이 더 활발했으니까. 전화기에 연결된 잭을 뽑아 모뎀선과 연결해 한참을 기다리면 보이는 거라고는 흰색 활자뿐이던 화면이 어찌나 신통하던지. 1GB, 평생 써도 못쓰겠다며 탄성을 내지르던 승민의 반응이 무리는 아니다.

브랜드 커피점의 맹공이 시작되기도 훨씬 전이라, 자판기 커피로 주로 사교 활동을 했으며, 친구와 동전 몇 개 나눠 자판기 우유와 블랙커피를 믹스해 우유커피 만들어 먹는 게 대단한 호강이었던 시절이었다.

영화 속 건축학개론 교수의 수업이 보여주듯, 대학에 아직까지 낭만과 여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대학이 스펙 공장에, 등록금 먹는 하마는 아니었다. 가끔은 말벗 해주시는 교수님도 있었고, 친구들도 꽤 순수했다. 명품? 그런 건 구경도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걸 보는 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96학번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면, 대중 문화를 제법 알아가던 시기 등장한 서태지와 함께 사춘기를 버텨냈던 세대라는 거다. 현역 96학번이라면, 중학교 3학년 딱 봄소풍 시기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등장했는데, 봄소풍이면 그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느라 온천지가 들썩였었다. 변진섭, 윤상, 015B, 이승환, 신해철, 뉴 키즈 온 더 블록, 토미 페이지 등 의식에서 해방된 문화상품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수능세대의 시작이었던 94학번들은 고작 1년의 시험적응 기간이었던 데 반해, 96학번은 고등학교 3년을 오롯이 새로운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학생들을 그저 실험실의 흰 쥐 정도로만 생각하는 교육정책의 희생양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소위 단순 암기식 시험이라던 학력고사와는 달리 사고능력과 통합교과적 지식을 묻는다는 미명하에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험의 기술 연마하는 훈련을 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의 시초라며 지탄받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양성을 인정하자던, 1995년 교육개혁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지 못한 세대이기도 하다. 덕분에, 다양성은 인정받지 못한 채 여전히 한 줄로 세워 선발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부제가 몇몇 유명 대학에서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난이도에 실패한 수능으로 많은 수험생들의 희비가 교차하고, 200점 수능의 마지막 수험생. 지식경제사회를 맞아 대학 입학 인원을 급격하게 늘리기 직전이라, 지금처럼 지방대를 '지잡대'라며 싸잡아 매도하진 않았다. 그저 공부 좀 못했군, 했지.

빛 바랜 학생운동의 명맥이 그나마 체인 스톡 시 호흡하며 있었다. 봄이면 강경대의 분향소가 보였고,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한총련 누군가가 경찰에 쫓기다 추락사했다는 벽보가 붙었다. 1996년 8월에는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의 소설에서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연대항쟁이 있었다. 그 자리에 갔다가 충격을 받아 실어증에 걸렸다는 소식도 들렸고, 도망자가 되어버린 학보사 기자도 있었다.

꽤 강성인 운동권도 있었지만, 쭉정이 같았다. 1997년 한양대에서 있었던 한총련 출범식, 남총련 학생들이 왕십리 전철까지 세울 정도로 격렬했지만, 식은 열리지도 못했다. 이석 프락치 사건이 있었고, 학생운동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고들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해 12월 3일, IMF 지원을 받기로 결정을 했고 김대중은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은 본격적으로 IMF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노동법 날치기 통과 덕분에 비정규직 취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듬해의 대학 3년차, 입사 연기 소식을 받은 선배들의 한숨 소리, 말라버린 취업공고의 공포 속에서, 한없이 세속적인 것과 순수함 속의 균형 잡기를 고민하며 20대 중반을 맞았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쉬이 오염될 소지가 많은 세대였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큰 분기점에 해당하는 사건을 세포 깊숙이 낱낱이 목격한 그런 세대. 96학번은 이러나 저러나 경계인. 구세대의 막내가 될 수도, 혹은 아우세대의 장자가 될 수도 있는 학번이지만, 어느 쪽이 맞는지는 96학번인 나도 잘 모르겠다.

486세대와 88만원 세대에 끼어, 이제는 하우스 푸어 혹은 허니문 푸어로 전락한, 구천을 떠도는 존재감 없는 유령 같다는 생각도 든다(개인적으로, 대학에 적을 뒀던 사람들만으로 한정한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하기에 '96학번인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20세기 말 현상의 연장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현재를 조망하기 위해 직조된 것은 아닐까?'라며 96학번을 등장시킨 감독의 의도를 추측해본다.

서연, 오염된 순수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15년 후인 현재.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15년 후인 현재.롯데엔터테이먼트


스무 살의 서연은 화사한 색깔 옷이 잘 어울리는, 보라색과 군청색이 섞인 색깔의 단화가 정겹게 어울리는 새내기. 말도 먼저 놓아주고, 죽어가는 빈 집에 숨결 불어넣어 살뜰히 가꿀 줄 아는 아이. 가을에 꽃을 심어 봄날을 그리워할 줄도 아는 낭만적인 면모도 있는 아이. 그런데 그런 그녀가 모노 톤의 명품으로 자신을 휘감고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하이힐에 서서 힘들게 세상에 서 있다.

스무 살 무렵, 자신이 살겠다고 했던 모습으로 거의 살아가고 있는 서연.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끼워 맞춘 삶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주도 학원 출신으로 피아노를 치며 아버지의 자랑으로 서울까지 입성했지만, 피아노로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는 회의적이다. 더욱 화려하고, 우월하게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나운서를 지망하겠지만, 정작 아나운서가 되기 보다는 부자랑 결혼은 할 거라는 자신의 예상을 적중시켰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주술을 넣지 않았던 탓인지, 조건의 풍족함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았다. 극진히 아버지를 돌보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집 건축까지 추진하는 서연을 보면, 세상에서 돋보이고자 했던 바람들이 단순히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부재한 서연. 곱게 외동딸을 기르고 싶어하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식을 위해 젊은 날 많은 행복을 포기하신 아버지에 대한 보상이자 보답은 아니었을까?

또한 교육이라는 계층의 사다리를 무사히 넘어, 유전적 우수성이 입증되고도 남을 학교를 졸업하고, 세속적인 잣대로 최선과 최상의 삶이 보장 될지도 모를 배우자를 만났지만 자신의 기질을 속일 순 없었을 것이다. 기질도 기질이거니와, 자신이 생각했던 최상의 삶에 자신을 끼워 넣기에, 자신이 가진 천연 색깔 융합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주들은 '날라가는' 디자인을 좋아한다며, 현대적 감성으로 무장한 디자인을 밀어대는 승민에게 연거푸 'No'를 연발하는 서연은, 비록 자신은 명품 속에 갇혀 있지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원래 집의 축대인 것 마냥, 재건축이 아닌 뼈대는 유지하는 증축으로 선회한다.

어릴 적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발자국이 나버린 마당 수도가 마저 살아 숨쉬고, 매일 자라나는 자신의 흔적이 살아있는 벽돌도 그대로 안고 가는. 우아한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육두문자로 자신의 상처를 폭발하는 서연이지만, 그대로 자신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첫사랑 승민을 찾아갔으리라.

<기억의 습작>의 가사처럼, 이젠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철없던 시절 자신의 모습이 어떤 의미인 것인지, 확인도 해보고 싶을 것이고,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마다 승민의 기억이 자신을 찾아왔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들이며 꿈들이 커버린 미래 속에서 살아나기 때문에 가장 순수했던, 오염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증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인생 중반을 리셋 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웅크린 어린 가부장, 승민

그렇다면 승민은 어떤가? 결혼하자고 하라는 남뜩이의 말에, 집도 없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했던 스무 살의 승민. 인간 삶의 기본 요소인 '집'은 승민에게 아주 큰 의미이다. 아버지가 부재한 집. 순대국밥과, 일수로 승민을 키워냈을 정릉 시장통의 어머니. 가부장제의 전통으로 아버지가 가계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한국 사회라, 승민 어머니가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느꼈을 힘겨움을 승민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릉, 강북에 산다는 거주지역에 대한 거리감보다는 경제적 그리고 남성으로서의 심리적 지주가 상실된 자신의 가족 형태에 대한 자격지심도 찌질한 스물의 이승민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법도 하다.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집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이 고수익 직업군에 속해 있던가 혹은 부모와 선대에서 상당한 경제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형태인데 승민은 이 모두에서 멀다.

물론, 승민도 서연처럼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를 무사히 올라갔고 사람 하나는 똑똑하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검증은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에서 사람 하나 똑똑한 거 믿고 기꺼이 삶을 헌신하는 여성 동지 및 그들의 가족이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니 승민의 상황은 여성인 서연과는 다르다. 자신을 '따까리' 건축회사 말단 직원으로 소개한 걸로 봐서 장래성은 있지만 현재 모습은 여전히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가장은 될 수 없다. 부성이 부재한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이상적인 가장에 대한 생각도 뚜렷하고, 집은 그저 사는 집이라고 일갈하는 어머니의 영향 탓에 분수를 넘는 삶을 결코 살지는 않을 위인이다.

아버지에게 손을 벌려보자는 은채에게, 자신의 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보면 분수에 맞게 살고자 하는 그의 성향과 남자로서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떤 곳에 사는가에 따라서 자산 규모가 현저히 차이 나는 현실에서, 별 문제 없고 운치 있고 정겨운 동네에 살지만 스스로가 세대주로 독립하기엔 힘이 많이 필요하다. 콜록콜록 대며 첫 담배를 피우던 승민이, 줄담배를 줄줄 피워댈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승민은 여전하다.

여기에 더불어 승민은 "집도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냐?"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서른 여섯을 살아오면서 이런 문제 때문에 몇 번의 이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현실을 온 몸으로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기억 속에서 서연은, 마음속으로는 안타깝고 날카로운 첫사랑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썅년'인 것이다.

그리고 서연이 자신을 첫사랑으로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것 조차 꿈에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이런 저런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서연을 바라보며 웃음은 지을지언정 함께 지내는 삶을 현실화 하리라는 욕망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굳건히 믿고 있었는지도.

그나마도 그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머니가 재건축 보상금을 받아서 당신 삶에 대한 걱정과 짐을 한 시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며,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삶을 시작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서 편하게 살 정도는 되는 보상금을 받았겠지만, 큰돈 바라지 않고 아들 살뜰히 키우며 살아오신 엄마는 잉크가 번져 색깔이 변한 'GEUSS' 옷을 여전히 입고 있으시다.

예쁘고 착한 은채를 사랑하긴 하겠지만, 남자는 결혼할 마음이 들 때, 결혼할 상황이 될 때 옆에 있는 여자와 혼인한다는 정설을 승민이 증명해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도 은채는 공부를 하고, 승민은 돈을 버는 가부장으로의 책임을 굳게 지키고자 하는 의연함도 느껴진다.

서연의 삶과 승민의 삶을 비교해보면, 분명 그 둘은 첫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별은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각자 너무 다른 삶을 꿈꿨을 것이 확연히 보이니까.

하지만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면 살았을 30대 중반, 삶이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이 외부 환경의 자극이 덜했을 때로 돌아가 삶을 재구성하겠다는 것. 잘못 끼워진 단추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작업이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꺼져달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나눴던 순정을 기억하며 그의 눈에 녹아 있는 나의 모습을 찾아내기. 냉장고는 바꿨을지언정, 여전히 어지럽게 내용물들을 켜켜이 얹어놓은 엄마의 부엌살림처럼 변하지 않는 나를 찾아내어 남은 삶은 가능한 누를 범하며 살지 않으려 하는 것. 그리고 그래야 한다는 것.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을 매개로 풀어 놓는 이야기가 아닐까?

9년을 제작되지 못하고 표류했다는 <건축학개론>.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서른 중반, 인생의 반을 살아내야만 했기에, 시나리오에 가장 의미 있을 시기에 세상에 빛을 발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성마저 상품이 되었나 싶어 아쉽지만, 즐기련다. 그리고 존재감 없는 1990년대 젊음을 소재로 삼아줘서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오늘 선거도, 한국 재건축을 위해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민주화를 이룩하던 시절, 이상적으로 품었던 순정들은 기억하고, 오류들을 재조정하는 시기가 곧 오리라 믿습니다.
건축학 개론 사는 곳 96학번 서연 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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