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풍자의 세상은 넓고 <무한도전> '깨알자막'은 계속된다

방통심의위의 제재에도 시사풍자부터 자사비판까지 담아...2012년도 '자막풍자' 계속될까?

11.12.28 16:48최종업데이트11.12.28 17:10
원고료로 응원
김태호 PD와 연출진이 1차 시사와 편집 과정에서 삽입하는 <무한도전>의 자막은 '제7의 멤버'라고 불릴 만큼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무한도전> 만의 묘미다. 특히 시사나 사회 현안을 버무리는 것은 물론 자기 패러디도 서슴지 않는 <무한도전>의 중의적이고 함축적인 자막은 매 회 방송 직후 누리꾼들로부터 회자되곤 한다.

그 관심이 오죽했으면 올 2월 방송된 '오호츠크해 특집'에서 '20011년'과 '납자답다'라는 오기에 대해, 김태호 PD가 나서 자신의 트위터에 "남은 20011년에는 잘못된 자막이 없도록 더욱 신경쓸끼니~! 납자답게 '앞으로 그런 일 절대 없을거다!'라고 약속하기 힘들묘. 우리는 무한도전이잖쌉싸리와용~!"이라고 해명(?)을 해야 했을까.

올 해 <무한도전>은 이 자막의 재미와 함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성공시켰고, '타인의 삶'을 보여줬으며, 조정대회에 나가 땀을 흘리기도 했다. 한 마디로 올 한 해도 열심히 달리고, 웃기고, 울렸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는 올해까지 <무한도전>에 권고 등 총 10번의 제재(법정제재 3번, 행정제재 7번)를 내리며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살펴봤다. '착한 자막'(?)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눈물겨운 노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출 수 없는 <무한도전>만의 순결한 자막들의 진수를. 이른바 '2011년 <무한도전> 자막의 활약사' 정도 될 수 있겠다. 

@IMG@

<무한도전>은 이제 '품위유지'도 한다

'배추파동 걱정하는 혈맹' 'FTA 협상 노홍철을 추천합니다'('뉴욕스퀘어 특집')
'수입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광우병 송아지' '미국산 소 쓰러지듯'('창작동요제 특집')
'송아지 위에 미친소와 병아리 위에 병든 닭' '그랬다간 바로 촛불시위...' (창작동요제 특집')
'기가(GB)가 뭔지, 메가(MB)가 뭔지 알아요?' 'MB보다 위잖아' '미국산 소 백스텝으로 쥐 작은 격' ('핸드볼 특집')
'(여의도 국회 앞에서) 소들아... 일 좀 해라...'('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특집')

어쩌면 최근 불고 있는 '시사풍자' 개그의 진원지는 <무한도전>일지도 모르겠다. 멤버들을 비꼬는 자기반영적 자막으로 출발한 <무한도전>은 2008년 이후 사회비판적인 자막들을 삽입하면서 누리꾼들에게 종종 '폐지되는 것 아니냐'는 심려(?)를 끼쳐왔다. 한때 1인자였던 박명수를 빗대어 '귀 닫은 우리 1인자'라는 골계미를 선보이는 예능이라니.

그러자 2009년 이후 방통심의위에 의한 제재가 지속됐다. 예능을 포함 여타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심의를 받고 제재를 받는 게 당연지사지만, 유독 <무한도전>에 대한 화살이 매서운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던 건 이런 사회풍자 때문. 그리고 <무한도전>은 유쾌하게 이러한 탄압(?)에 응대했다.

이른바 '품위유지'. 지난 9월 방통심의위의 '저속한 표현'에 대한 경고 직후 방송된 '하나마나 행사 특집'에서 그간 흔했던 박명수의 발길질에 정지화면과 함께 '품위유지'란 자막을 넣음으로서 공중파 예능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려 노력했다. 이후 11월 방송된 'TV 전쟁' 특집 또한 "똥줄 탄다"고 말한 하하의 화면에서 'X줄 탄다'라는 자막과 더불어 '하하TV 심의실은 자유로운 표현을 존중합니다'라는 센스 넘치는 표현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앞선 10월 '오피스 특집'은 아예 배현진 MBC 아나운서를 초대해 '바르고 고운말 쓰기 특강'을 선보였다. 배 아나운서는 '에이 씨'와 '이 씨'는 '에잇'으로, '뻥쟁이'는 '거짓말', '허풍'으로 바꿀 것을 권고했고, 이후 '고운말' 등을 강조한 자막은 "국민적 왕따가 돼버렸구나"를 '국민적 외톨이가 돼버렸구나'로, "내 머릿 속에 멍청이가 들었다"를 '내 머리에 모자란 애가 들었구나'로 수정하며 방송언어 품위유지에 일조했다. 김태호 PD의 대범한 반항이랄까.

@IMG@

'형광등 100개'는 기본, 대통령 국밥집을 주목하라

방통심의위의 이러한 탄압에 굴복했다면 무척이나 심심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지닌 제작진은 아이템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자막을 통해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했다.

'박명수는 배고픕니다 / 박명수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 예능을 살리겠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문구라고? 맞다. 대통령의 선거 홍보 영상이었던 '국밥집 광고'를 떠올리면 된다. <무한도전>은 3월 방영된 '미남이시네요 특집'에서 자신의 외모 홍보에 나선 박명수가 식당에서 곰탕을 먹던 장면으로 '국밥집 광고'를 절묘하게 패러디했다. 어디 이뿐이랴.

10월 '짝꿍 특집' 당시 짝을 찾지 못해 화를 내는 정형돈에게는 '남자가 쩨쩨하게, 불복종'이란 자막이 헌정됐다.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당시 안철수 교수로부터 지지를 확인받은 박원순 후보에게 "남자가 째째하게 치졸한 선거캠페인을 하지 말라"던 나경원 후보측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짝꿍 특집' 방송 날짜가 29일이었으니 참으로 신속하다랄까.

물론 종편 출범 이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아우라'라는 표현 또한  빼놓으면 아쉬울 터. 지난 10일 방송된 '명수는 12살 특집'은 여장한 정준하에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미모'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김태호 PD는 "종편을 비판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세바퀴> <남자의 자격>에서도 쓴 마당에 패러디지 무슨 종편 비판이냐는 의도다. 그렇다. 전국민적 유행어를 <무한도전>이 놓칠 리 없지 않나.

@IMG@

자막은 자막일 뿐, <무한도전>의 도전은 계속된다

사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전방위적인 자막 사용은 방송환경은 물론 자사비판에도 활용됐다.

멤버들끼리의 채널 경쟁을 그린 'TV 전쟁' 특집에서는 '냉정한 시청자 지루해지니 채널 전환' '시청률에만 집착한 자극적 내용물' 등 시청률 경쟁에 둘러싸인 방송환경을 비판하는 자막을 마음껏 내보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지난 2월 '오호츠크해 특집'이다. 당시 폭력적인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던 <뉴스데스크>에서 기자가 PC방 전원을 끈 터무니없는 실험을 패러디 한 것이다. 눈밭에서 허기에 지친 박명수는 정준하가 음식을 나눠줄 것을 거부하자 얼음벽을 깨버린 것. 이 때 등장한 자막은 '음식팀의 공격성을 알아보기 위해 이글루를 부숴 보겠습니다' '음식팀은 결국 공격성을 나타냈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태호 PD는 언제나 '자막은 자막일 뿐'이라는 입장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해석하는 이들은 시청자와 누리꾼들이다. 그리고 이를 보고 방통심의위는 제재를 가한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날카로운 시의성과 품위를 유지하는 착한 자막으로 예능에 세상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격동이 예고되고 있는 2012년, 과연 우리는 또 <무한도전>에서 어떤 재치있고 날카로운 자막들을 목도하게 될까.

무한도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