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오싹한 연애>에서 여리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만하면 손예진이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올 한해 한국 로맨틱 코미디물 말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갓 넘긴 월요일(26일) 오전 <오싹한 연애>를 본 누적 관객수는 253만 9454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이었다. 국내 박스오피스 5위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하반기 무렵 개봉했던 여러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최고 기록이다.
영화 <오싹한 연애>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호러적인 요소를 뒤섞은 다소 묘한 형태의 작품이다. 까칠하면서도 소심한 마술사 조구(이민기 분)와 학창시절 사고를 당한 뒤부터 귀신을 보게 된 여리(손예진 분)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냈다. 장르의 혼합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화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형식상의 신선함을 빼곤 손예진과 이민기의 호흡과 연기에 기댈 부분이 컸던 영화인 셈.
개봉 4주차임에도 크리스마스가 낀 주말 약 18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던 <오싹한 연애>는 그간 침체의 흐름을 보였던 국내 로맨스물의 입장에선 한 줄기 희망이라 할 법 하다.
사랑 이야기 왜 안 팔려? "팍팍한 현실 때문"
▲ 영화 <커플즈>의 두 주연 김주혁(왼쪽)과 이윤지 ⓒ 이정민
상반기에 이렇다 할 로맨스 영화가 나오지 않았던 올해는 해당 장르 영화의 무덤이 될 뻔했던 한 해였다. 지난 11월 2일 하반기 로코물로는 가장 먼저 개봉을 알렸던 김주혁·이윤지 주연의 <커플즈>는 36만 799명 관객 몰이에 그치고 말았다. 커플이 탄생해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닌 커플이 탄생하기 직전까지 과정을 여러 시점으로 나눠 묘사한다는 신선한 구성이 있었지만 흥행엔 실패한 것이다. 일본 영화 <운명이 아닌 사람>을 원작으로 하여 감독의 시선으로 나름 잘 구성했지만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다.
한예슬·송중기 주연의 <티끌모아 로맨스>도 마찬가지였다. <커플즈>보다 8일 늦게 개봉한 해당 영화는 올 한해 불미스러운 이슈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할만한 배우 한예슬과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 송중기가 호흡을 맞췄다. <티끌모아 로맨스> 역시 내용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영화는 88만원 세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랑은 하고 싶은 청춘의 이야기를 유쾌한 감성으로 풀어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찾은 관객은 42만 4465명에 그쳤다.
▲ 서울 종로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에서 열린 영화<너는 펫>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장근석,김하늘,감독 김병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민원기
영화 <너는 펫>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을까? 올해 대종상 영화제와 청룡 영화상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보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김하늘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게다가 한류의 중심, 한류의 대세 장근석이 함께 영화를 이끌었지만 이상하게도 관객 수는 저조해했다. 누적 관객 54만 4179명을 기록한 <너는 펫>은 <티끌모아 로맨스>와 같은 날 개봉하며 하반기 로맨스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사석에서 기자와 만난 한 감독은 이런 현상을 두고 "관객들이 현실감 떨어지는 영화에 공감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달콤한 연애만을 꿈꾸기엔 현실은 팍팍한 곳인 데에 비해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녀의 사랑은 그것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다는 관점이었다. 또한 관객들의 눈높이가 더욱 높아졌기에 웬만한 신파나 최루성 이야기로는 콧방귀도 안 낀다는 얘기도 오갔다.
어찌해야할까. 대중들은 적어도 사랑이야기에서 만큼은 지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가는 이야기를 열망하는 것일까? 작품 자체의 질이 좋아야 한다는 건 기본 전제다. 2011년 명멸했던 '로코물'이 이런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점을 철저히 인식하자.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말 것. 사랑이야기 없는 사람 이야기만큼 서글픈 건 없으니까 말이다. 손예진과 이민기 커플의 분투를 보면서 마음을 다지는 한 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