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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재벌을 위한 노동에 반기를 든 청년

[리뷰] 앤드류 니콜 감독의 <인 타임>

11.11.28 20:13최종업데이트11.11.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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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6동 1265번지. 이 주소가 아직 입에 붙는 이유는 그곳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일 거다. 간혹 천이백번지로 시작하는 주소에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난, 주소를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곤 했다.

난 미아리에 산다. 그리고 아직도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처럼 듣곤 한다. 미아리는 아직 밭이 있거나, 밤이면 곰이 나오는 동네가 아니냐고. 부촌과 빈촌으로 나눠진 서울. 강남과 미아리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인 타임>의 포스터
영화<인 타임>의 포스터20세기 폭스 코리아
사람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는 그 순간부터 다르게 존재한다. 강남과 미아리가 다르듯 뼛속부터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씁쓸한 현실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조명한 영화<인 타임>에서도 그 경계는 뚜렷했다.

우수한 유전자로 미래가 결정된 채 태어난다는 영화<가타카>를 만든 앤드류 니콜 감독. 그는 <인 타임>에서 더 진화한 인간의 미래를 담는다. 노화를 막는 유전자의 개발로 모든 인간의 몸은 25살에 머문다. 나이는 먹어도 모두가 25살의 젊은 모습이다. 할머니와 어머니 딸의 외모가 모두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인 거다.

<인 타임>에서 늙지 않는다는 것만큼 절대적인 화두는 시간이다. 화폐의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멈춘 25살이 되면 사람들의 팔에 지니고 태어난 생체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단 1년의 시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 1년만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돈, 곧 시간인 셈이다.

1년의 시간은 길지 않다. 집세며 음식, 4분짜리 커피며 버스 요금 등을 그 1년으로 지불하며 살아야 한다. 오전까지 1시간이었던 버스요금이 저녁에 2시간이 되기도 하는 널을 뛰는 물가는 서민의 숨통을 조인다.

'타임 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은 종일을 노동으로 바치지 않으면 내일을 살 수 없다.  때문에 늘 바쁘다. 그들은 항상 뛰어다니며 시간 절약을 위해 지퍼가 달린 옷을 입고, 시계를 자주 확인하기 위해 팔목을 드러낸 옷을 입는다.

간혹 친구나 가족에게 시간을 나눠주기도 하지만 고작 30분이나 5분에 불과하다. '미닛맨'이라 불리는 소매치기 일당에 걸리면 그 나마의 시간도 뺏기게 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거리엔 시간을 다 쓴 채 죽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의 노동으로 내일을 살아가는 타임 존의 사람들

 시간이 모자라 죽은 '타임 존'안의 가난한 사람.
시간이 모자라 죽은 '타임 존'안의 가난한 사람.20세시 폭스 코리아
톨게이트 비용으로 1년이 넘는 시간을 지불해야 갈 수 있는 부촌 '뉴 그리니치'. 그곳엔 영생을 보장받은 1%의 재벌들이 모여 산다. 수천 년을 가지고 있기에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시간은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

그들은 절대 뛰는 법이 없다. 느리게 음식을 먹고 시계를 보는 일도 없으며 수십 개의 단추가 달린 옷을 입고 다닌다. 자신의 시간이 노출될까 옷으로 팔을 가리며 경호원을 붙인다.

타임 존에 사는 윌 살라스는 오늘을 빠듯하게 일해야 내일을 살 수 있는 가난한 자다. 우연히 헤밀턴이란 남자를 위험에서 구해준 윌은 그로부터 1% 재벌들을 위해 자신들이 죽어야하는 시스템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시간을 그에게 건네받지만 헤밀턴의 죽음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졸지에 100년을 지닌 부자가 된 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뉴 그리니치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버스요금 2시간이 모자라 뛰던 엄마는 자신의 품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시간을 다 쓰면 심장마비에 걸린 듯 숨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혼자서 '뉴 그리니치'로 잠입한 윌은 사라진 시간을 추적하는 형사 '타임키퍼'에게 체포되기 전, 금융사의 회장 딸인 실비아를 인질로 삼고 불합리한 시스템의 파괴를 계획하게 된다.

가난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다

<인 타임>은 '타임 존'을 기준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철저히 분리한다. 그들의 모습은 일상의 작은 버릇하나로도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한다. 또한 타임 존의 가난은 쉼 없는 노동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매 순간 배로 뛰는 물가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영생을 살수 없는 지구에서 가진 자만이 살아남기 위함이다. 감독은 상위 1%의 재벌들을 위해 99%의 서민들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내 반월가 시위대의 목소리도 그러하다. 미국이 큰돈을 들여 구제한 1% 금융재벌들에 99%의 서민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반월가 시위대는 한미 FTA의 협상이 미국과 한국의 1%의 재벌 기업들을 위한 협상이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들은 매일 밤 서울광장에도 한미FTA 반대를 위해 모인 수만은 사람들과 같은 지점에 있는 것이다.

 25살에 노화가 멈춘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의 모습
25살에 노화가 멈춘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의 모습20세기 폭스 코리아

<인 타임>을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스크린 속 미래는 그 흔한 특수효과 하나 넣지 않아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윌이 부조리한 체제의 붕괴를 이루는 방법 또한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혹자는 매력적이고 획기적인 소재에 진부한 결론을 내렸다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감독은 우리에게 단단한 공감의 끈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관심은 희망의 시작일 거라고. 그래서 지금은 1%의 그들이 아닌 99%인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이다.

인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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