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자라 죽은 '타임 존'안의 가난한 사람.
20세시 폭스 코리아
톨게이트 비용으로 1년이 넘는 시간을 지불해야 갈 수 있는 부촌 '뉴 그리니치'. 그곳엔 영생을 보장받은 1%의 재벌들이 모여 산다. 수천 년을 가지고 있기에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시간은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
그들은 절대 뛰는 법이 없다. 느리게 음식을 먹고 시계를 보는 일도 없으며 수십 개의 단추가 달린 옷을 입고 다닌다. 자신의 시간이 노출될까 옷으로 팔을 가리며 경호원을 붙인다.
타임 존에 사는 윌 살라스는 오늘을 빠듯하게 일해야 내일을 살 수 있는 가난한 자다. 우연히 헤밀턴이란 남자를 위험에서 구해준 윌은 그로부터 1% 재벌들을 위해 자신들이 죽어야하는 시스템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시간을 그에게 건네받지만 헤밀턴의 죽음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졸지에 100년을 지닌 부자가 된 윌. 그는 어머니와 함께 ''뉴 그리니치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버스요금 2시간이 모자라 뛰던 엄마는 자신의 품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시간을 다 쓰면 심장마비에 걸린 듯 숨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혼자서 '뉴 그리니치'로 잠입한 윌은 사라진 시간을 추적하는 형사 '타임키퍼'에게 체포되기 전, 금융사의 회장 딸인 실비아를 인질로 삼고 불합리한 시스템의 파괴를 계획하게 된다.
가난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다<인 타임>은 '타임 존'을 기준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들을 철저히 분리한다. 그들의 모습은 일상의 작은 버릇하나로도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구분한다. 또한 타임 존의 가난은 쉼 없는 노동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매 순간 배로 뛰는 물가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영생을 살수 없는 지구에서 가진 자만이 살아남기 위함이다. 감독은 상위 1%의 재벌들을 위해 99%의 서민들이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내 반월가 시위대의 목소리도 그러하다. 미국이 큰돈을 들여 구제한 1% 금융재벌들에 99%의 서민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반월가 시위대는 한미 FTA의 협상이 미국과 한국의 1%의 재벌 기업들을 위한 협상이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들은 매일 밤 서울광장에도 한미FTA 반대를 위해 모인 수만은 사람들과 같은 지점에 있는 것이다.
▲25살에 노화가 멈춘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의 모습20세기 폭스 코리아
<인 타임>을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스크린 속 미래는 그 흔한 특수효과 하나 넣지 않아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윌이 부조리한 체제의 붕괴를 이루는 방법 또한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혹자는 매력적이고 획기적인 소재에 진부한 결론을 내렸다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감독은 우리에게 단단한 공감의 끈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관심은 희망의 시작일 거라고. 그래서 지금은 1%의 그들이 아닌 99%인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