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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 소재로 명품 빚는 작가 김수현의 '글빨의 힘'

[리뷰] '속사포 대사' 논란 불구, 시청률 1등 달리는 SBS <천일의 약속>

11.11.12 13:17최종업데이트12.01.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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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21.3%(AGB닐슨 서울 수도권, 전국 19.2%)로 일일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지난 8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21.3%(AGB닐슨 서울 수도권, 전국 19.2%)로 일일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SBS

소녀 가장으로 불운한 삶을 살아 온 여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는 알츠하이머(퇴행성뇌질환)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 약혼녀까지 있는 마당에 기구한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집안의 반대와 여자의 병이 가져올 파국은 더 들여다보지 않아도 뻔하다. 언뜻 보면 전형적인 신파극 같은 이야기인데 김수현 작가의 SBS 월화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17일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더니 매회 상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일의 8회분 방송은 21.3%(AGB닐슨 서울 수도권, 전국 19.2%)로 일일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완성도 높은 대본과 연기로 '빤한 멜로'를 기품 있게
 
 (왼쪽부터 시계방향) 향기 엄마 역 이미숙, 지형 엄마 역 김해숙, 서연 역 수애와 동생 역 박유환, 향기역 정유미.
(왼쪽부터 시계방향) 향기 엄마 역 이미숙, 지형 엄마 역 김해숙, 서연 역 수애와 동생 역 박유환, 향기역 정유미. SBS

김수현 드라마는 통속적이다. 이야기 설정만 보면 '막장'이라 욕을 먹는 다른 방송드라마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김수현 드라마를 아무도 막장으로 부르지 않고 항상 높은 기대치로 평가하는 것은 그의 작품에 기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을영 감독과 뭉친 김 작가는 전작 <불꽃><내 남자의 여자><엄마가 뿔났다><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검증된 환상적 호흡을 보여준다. 김해숙, 이미숙 등 이른바 '김수현 사단' 배우들의 활약에 배우 수애(서연 역)와 김래원(지형 역)을 영입해 신선도를 높였다. 수애의 처절한 연기는 특히 남성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철부지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노향기 역에 신인 배우 정유미, 서연의 동생 역으로 그룹 JYJ의 멤버 박유천의 동생 박유환을 기용해 눈길을 끌었다.

김수현 드라마는 이처럼 내공 있는 배우와 준비된 신인들이 대본을 철저히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른바 '쪽대본'으로 방송 직전까지 황급히 촬영하는 여타 드라마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속사포'라 불리는 김수현 식 대사 

 <천일의 약속>의 김수현 작가는 한 트위터 이용자가 "대사가 거슬린다"며 말투를 고쳐달라고 요청하자,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것"이라며 차라리 드라마를 외면하라고 응수했다.
<천일의 약속>의 김수현 작가는 한 트위터 이용자가 "대사가 거슬린다"며 말투를 고쳐달라고 요청하자,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것"이라며 차라리 드라마를 외면하라고 응수했다.SBS
"5년 후쯤이면 당신은 아빠가 되어 있겠지. 10년 뒤에는 허물어진 40대 아저씨가 되어 있겠지. 그때쯤이면 오늘이 누렇게 희미해진 옛날사진 같겠지. 내려놓는 지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내려놓았단 걸 알게 되겠지. 그 후로도 겹겹이 날들이 쌓여가고 당신한테 나는 공룡시대 화석이 되겠지."

이별을 앞둔 서연이 지형에게 하는 말이다. 어떤 이는 이런 대사가 '드라마를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홉의 작품처럼 고전 비극 무대같이 보이게 한다'고 평했다. 장황하지만 결코 늘어지지 않고, 어디에 방점이 찍혀있는지 느껴지는 대사. 하지만 현실에선 흔하지 않은 말투이기 때문에 일부 시청자는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달 30일에는 한 네티즌이 트위터를 통해 "대사가 거슬린다"며 말투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김수현 작가는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테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것"이라며 차라리 드라마를 외면하라고 응수했다. '따발총 대사'에 대한 일부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천일의 약속>의 흥행은 말해준다.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여전하다고.

뒤늦게 사랑을 책임지려는 '나쁜 남자'의 선택 

김수현 드라마는 매번 화두를 던진다.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전면으로 끌고나왔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동성애 코드'를 넣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젊은 여자 서연을 중심으로 '사랑과 선택'의 질문을 던졌다.

 8일 방송된 <천일의 약속> 8회에서 지형은 아픈 서연을 혼자 둘 수 없어 향기와의 결혼을 이틀 남겨두고 파기했다.
8일 방송된 <천일의 약속> 8회에서 지형은 아픈 서연을 혼자 둘 수 없어 향기와의 결혼을 이틀 남겨두고 파기했다. SBS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서연과 집안에서 맺어 준 약혼녀 향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형은 나쁜 남자다. 약혼녀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 행위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비겁함도 욕을 먹어 아깝지 않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서연을 선택한다면 양가 부모님의 기대와 약혼녀의 믿음을 배반해야 한다. 예정대로 결혼을 한다면 최악의 상황에 놓인 서연을 버린 대가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지난 8회에서 지형은 향기와의 결혼을 파기했다. 그 선택이 서연과 지형의 결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서연은 지형을 밀어내고 있다. 그런 서연을 지켜주려는 지형, 떠나간 지형을 여전히 기다리는 향기. 세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알츠하이머는 서연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것인지. <천일의 약속>을 둘러싼 궁금증은 20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바짝 끌어당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단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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