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AFC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하는 박지성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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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1 AFC 아시안컵>은 달랐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모습은 지난 50년 동안의 '루저'의 모습이 아니었다. 비록 성적은 3위에 머물렀지만, 훌륭한 경기력으로 축구팬들을 매료시켰다.
무엇보다 축구팬들을 답답하게 했던, 감독의 전술 부재와 그로인한 감독 사퇴의 악순환에서 벗어났다. <2011 AFC 아시안컵>에서 조광래 감독이 보여준 전술과 선수 기용은 그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세밀한 패스를 중심으로 한 조광래의 4-2-3-1 전술은 한국 축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선수 기용도 훌륭했다. 8강 이란 전에서 윤빛가람을 교체 투입해,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만들어 낸 것은 압권이었다. 4강 일본전에서 4-2-3-1 전술이 밀리자 공격수 지동원을 빼고 수비자원 홍정호를 기용 4-6-0 형태로 전술 변화를 꾀해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단지 한명의 선수 교체에 머물지 않고 전체적인 전술 변화를 이뤘기에 박수를 받을 만했다.
전술적인 면에서 이번 <2011 AFC 아시안컵> 우리 대표팀의 모습은 역대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전 졸전을 거듭하던 모습이 아닌, 효율적인 전술과 다양한 변화로 상대편을 압도하며 공격을 주도한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뛰었다. 정신력이 바탕이 됐다. 체력적 열세를 딛고, 8강 이란 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4강 일본전에서는 연장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어 패배를 벗어나게 한 우리 대표팀의 열정은 뜨겁고 감동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비록 한. 일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지만 축구팬들의 반응 역시, 아시안컵 탈락 후에, 으레 쏟아지던 비난과는 달랐다. '졌지만 잘했다'는, '정말 감동이었다'는 반응, 국가대표팀의 귀국을 축하하러 공항 입국장에 모인 수많은 팬들은 <2011 AFC 아시안컵> 도전이 그저 실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트레제게의 눈물' 만큼, 감동적인 손흥민의 웃음
▲<2011 AFC 아시안컵> 에서 환한 웃음을 선보였던 손흥민MBC SPORTS+
그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프랑스 대표팀의 감동 사연이 떠오른다. 당시 세계 축구팬을 감동시킨 것은 우승국 이탈리아만이 아니었다. 2위, 프랑스도 많은 축구 팬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다.
바로 '트레제게의 눈물'로 불리는 사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 하고 만다. 공격수였던 트레제게는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해 프랑스를 패배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축구팬들은, 귀국한 프랑스 대표팀을 향해, 그리고 실축한 트레제게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실축에 대한 아쉬움으로 고통스러워 시간을 보낸 트레제게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감동적인 축구팬들이 존재하는 프랑스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졌지만, 승자가 됐다.
<2011 AFC 아시안컵>을 통해 우리 대표팀도 50년 동안의 패배에서 벗어났다. 목표로 했던 우승트로피는 놓쳤지만, 우승 못지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팀을 환영하고자, 인천 공항에 밀집한 축구팬들이 바로 그 특별한 감동을 쐈다.
덕분에 차두리 선수는 팬들의 추격(?)을 웃으며 도망치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고, 기성용은 선수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한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의 어두운 표정은 팬들의 응원 속에 말끔히 사라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일본에게 패해 눈물을 흘렸던 손흥민 선수가, 다시금 환영인파에 밝은 웃음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그 웃음을 인터넷 기사 사진으로 지켜본 많은 축구팬들도 함께 웃었다. 2006 프랑스 '트레제게의 눈물' 감동에 버금가는 2011 대한민국 판 '손흥민의 웃음'이었다.
또한 31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박지성 선수의 은퇴식도, 축구팬들의 환영 덕분에 우승 실패의 어두운 분위기가 아닌 한층 밝아진 분위기 속에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는 "박지성 선수 보려고 축구팬들이 난입하는 통에, 기자회견장이 완전 시장통이었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축구팬들의 이런 관심은 결코 기분 나쁜 소식이 아니기에 웃음이 나온다.
감독 경질과 선수 비난에 익숙한 우리 축구계에서, 패배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선수들이 이런 환대을 받는 것은 우승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필자는 대한민국 축구의 <2011 AFC 아시안컵> 성적을 '51년간의 실패'가 아닌, '지난 50년과 다른 51년만의 성공'으로 기록하고 싶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리 축구 대표팀의 슬로건이었던, '왕의 귀환'은 실패하지 않았다. 우리 축구 대표팀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목표로 한 4년의 생애주기에서 이제 겨우 첫 발걸음을 뗐을 뿐이다.
첫 시련을 감동으로 딛은 조광래 호의 다음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는 지난 50년과는 다른 축구를 축구팬들에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동원, 구자철, 손흥민. 그리고 새롭게 발탁된 남태희등. 한국 축구의 유망주들이 만들어갈 진정한 왕의 귀환은 이제 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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