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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다!

중동 축구 몰락, 한국 3위 및 일본 우승과 이충성, 성공적인 카타르의 월드컵 리허설

11.01.31 10:33최종업데이트11.01.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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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축구 제전인 아시안컵이 막을 내렸다. 이전까지의 아시안컵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치러진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이었는데, 유럽 클럽들이 소속 선수를 시즌 도중 차출하게 되면서 아시안컵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가 높아졌고 유럽 스카우터들이나 유명 선수들의 아시안컵에 대해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또한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카타르에서 열렸기 때문에 월드컵 리허설이라는 성격도 존재했다. 아시아의 3강 체제로 한국-일본-호주가 자리잡은 가운데 중동 축구의 몰락을 볼 수 있었던 아시안컵이었다. 세 가지 측면에 핵심을 두고 아시안컵을 간략히 결산해보고자 한다.

 

서아시아 축구의 몰락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아시아 국가는 한국, 북한, 일본, 호주였다. 다시 말하면 서아시아 축구는 한 팀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2007 아시안컵 챔피언인 이라크와 더불어 중동의 강호인 이란과 사우디 등이 모두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이란과 사우디는 한국과 북한의 벽에 막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었다.

 

서아시아 축구의 몰락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4강 진출팀을 단 한 팀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어왔던 사우디는 조별예선에서 3전 전패하여 탈락하는 수모를 맛보았다. 개최국 카타르는 일본에 2-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했고, 이라크 또한 강호 호주에 연장에서 분패해 탈락했다. 또한 이란은 아시안컵 8강에서만 5회 연속으로 만난 한국에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특히 사우디의 이른 탈락과 더불어 이란이 한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 완전히 경기력으로 압도당하는 모습은 서아시아 축구의 몰락을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이른바 '침대 축구'로 불리는 시간끌기식 축구는 상업에 중점을 둔 문화적인 부분과 연계되어 해석되고 잦은 감독교체로 인해 세대교체가 되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이 없는 대표팀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막대한 석유 자본으로 인해 자국 리그가 흥함과 더불어 제도적 요인 등으로 인해 해외 진출이 줄어드는 등 선진 축구와의 교류가 줄어들고 있는 부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막대한 자본이 흐르는 리그와 폐쇄적인 축구 교류를 없앤다면 강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남아공 월드컵과 카타르 아시안컵을 통해 서아시아 축구의 몰락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뼈를 깎는 노력과 마인드를 바꾸면서 다시 축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 3위 및 일본의 아시안컵 우승, 그리고 이충성

 

'왕의 귀환'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심차게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은 조광래 감독을 새로운 수장으로 하여 전임 허정무 감독 체제와는 달라진 축구 스타일과 경기력을 선보였다. 짧은 시간 호흡을 맞췄고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한국은 준수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받음과 동시에 많은 축구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은 5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새로운 포지션인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고, 지동원(전남)은 최전방 공격수로서 박주영(AS 모나코)의 공백을 잘 메웠다. 이 두 선수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왕성한 활동량과 더불어 공격 재능까지 선보인 이용래(수원)도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비록 일본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는 2011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하며 2015 호주 아시안컵 자동 출전권을 따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수확을 얻게 되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알 힐랄)의 마지막 국가 대항전이었던 만큼 우승에 대한 의지는 남달랐지만 한국 축구는 세대교체의 희망과 함께 조광래호의 축구가 이식되기에는 기본적인 생각의 전환과 더불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떠나는 대표팀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자신의 축구 스타일을 이식시키며 한국 축구의 세계화라는 목표를 이루고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과 월드컵 8강 이상 등 결과로도 만족을 시켜야 한다. 조광래 감독에게 주어진 책임이 막중하다.

 

일본은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대에만 3번째고 통산 아시안컵 4회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안컵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전반적인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원톱 부재와 카가와 신지(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혼다 케이스케(CSKA 모스크바)의 공존 문제점 등이 지적되며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이지만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와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가 중심이 된 미드필드를 중심으로 아기자기한 패싱 플레이를 펼쳤다.

 

일본은 카가와가 한국과의 4강전에서 부상을 당해 도중하차했고 마쓰이 다이스케(톰 톰스크)도 부상으로 하차했지만 나카토모 유토(체세나)와 우치다 마츠토(샬케 04)가 적극적인 측면공격을 펼쳤고 혼다가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경기들을 치렀지만 중원에서 강한 압박을 펼치고 패스의 템포를 조절하며 경기를 조율하는 축구 스타일과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의 지략, 그리고 선수들의 승리를 향한 강한 의지가 합쳐지며 우승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충성(산프레체 히로시마)이라는 이름도 주목해야 한다. 리 타다나리라는 일본 이름이 있지만 그는 유니폼 뒤에 'LEE' 라는 한국식 성이 새겨져 있다. 재일교포 4세인 그는 한국에서 청소년 대표 시절 '반쪽바리' 라는 말을 들으며 설움을 당했고, 이 사건으로 그의 세계관이 무너질 정도의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했다.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일본에서도 그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이충성의 활약은 미비했다. 교체로 투입되어도 그에게 패스가 잘 연결되지 않았지만 묵묵히 그는 기회를 기다렸고, 마침내 그는 결승전에 교체투입되어 결승골을 터뜨린다. 일본을 아시안컵 우승으로 이끈 골이었다.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언론에서 그에 대해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이전에 한국에서 활동했던 유명 가수와 연인관계라는 이야기도 기사화되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인, 일본인이 아닌 축구인입니다."

 

그의 뿌리였지만 그를 내친 한국,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귀화했지만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던 일본. 두 나라를 모두 조국이라 말하는 이충성이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골.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축구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충성을 보며 많은 것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이날의 결승전이었다.

 

카타르, 월드컵 성공 개최 가능성 높인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카타르가 선정되었을 시점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역량, 그리고 서아시아의 더운 여름 기후 탓에 1월로 옮겨 월드컵을 치르자는 이야기. 만약 월드컵이 1월에 치러질 경우 추춘제로 치러지는 대부분의 유럽 리그가 일정 조정에 들어가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며, 1월 월드컵 개최론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곳에서 열린 아시안컵. 11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쩌면 예비고사라는 성격이 있는 아시안컵이었다. 심판 판정 문제, 그리고 원활한 대회 운영에서 아직은 유럽의 미세한 부분과 차이가 있는 점 등이 보였지만 이번 아시안컵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개최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특히 중계 기술과 경기장 시설 등 제반 여건에 있어서 성공적인 경기 진행이 이루어진 것이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고, 교통 및 숙박 문제나 심판 판정 문제 등 여러 개선해야 할 사항도 적지 않다. 여러 가지 개선 사항들이 개선되어 완벽한 월드컵 준비를 마치게 된다면, 카타르가 더욱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게 된다. 이전의 아시안컵과는 다른 분위기였고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기에,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국제 대회 또한 성공 개최의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아시안컵은 끝났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시아 축구의 수준이 높아졌고 한국, 일본, 호주의 아시아 3강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세 나라의 경쟁과 더불어 격차가 좁아지고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다른 국가들의 분전 또한 기대되고 있다. 유럽 축구와 남미 축구가 양분하고 있는 세계 축구에 있어 아프리카 축구와 아시아 축구가 더욱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은 여러 모로 의미가 크고 축구 팬들에게 멋진 축구를 보여준 아시아 축구 최고의 제전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 대표팀은 2011 아시안컵을 3위로 마무리하며 차기 2015년 아시안컵 직행 티켓을 따냈다. 구자철은 득점왕에 올랐고, 한국 대표팀은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한편 대표팀은 박지성, 이영표의 대표팀 은퇴와 더불어 수비 불안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고 좀더 세밀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광래 감독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2011.01.31 10:33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국 대표팀은 2011 아시안컵을 3위로 마무리하며 차기 2015년 아시안컵 직행 티켓을 따냈다. 구자철은 득점왕에 올랐고, 한국 대표팀은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한편 대표팀은 박지성, 이영표의 대표팀 은퇴와 더불어 수비 불안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고 좀더 세밀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광래 감독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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