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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야구 공부 좀 하셨군요

영화 <글러브>로 보는 야구 이야기... 122대 0, 농구가 아니라 야구 점수였네

11.01.31 15:25최종업데이트11.01.3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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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 이 기사에는 영화 <글러브>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어딜 가나 못 말리는 야구광이란 소리를 듣는, '사회인 야구' 12년차다. <공포의 외인구단>부터 <슈퍼스타 감사용>까지, 야구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다 챙겨봤다. 야구 서적도 나오는 대로 섭렵했다. 하지만 이 영화, 선뜻 보러 가기 망설여졌다.

대한민국 53번째 정식 고교 야구팀 충주성심학교 이야기. 야구부원들이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장애인과 스포츠. 필연적으로 감동스토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적절하면 말 그대로 휴먼 드라마지만, 잘못하면 손발 둘 곳을 찾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야구 영화라는 점이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 좋다. 흔한 감동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 약점을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야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야구를 대충 이용하지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야구를 이해하고 풀어낸 연출의 힘 이다. 영화의 장면을 살펴보니 문득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글러브>는 야구 자체에 신경을 많이 쓴 좋은 영화다. 그럼, 영화와 현실 야구가 얼마나 닮았는지 한 번 비교해보자.

[장면①] 음주 프로야구 선수의 징계

극중 주인공인 LG 김상남(정재영 분)은 음주 폭행 사고를 일으켜 징계위기에 처한다. 징계를 무마하기 위한 선택지는 충주성심학교 야구부 코치가 되어 자숙하는 일. 옛날 같았다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겠지만 상당히 낯익은 이야기가 되었다.

야구팬으로서는 들춰내기 싫은 기억이지만, 술 때문에 선수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던 롯데자이언츠 출신 선수 한 명이 떠오른다. 마지막 사건은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마저 자신의 업보가 되고 말았던 선수.

그 말고도 음주 사고로 자신의 경력 혹은 인생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은 유망주들이 나왔다. 앞으로 술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은 극중의 김상남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순진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이런 불미스러운 이야기는 영화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한 야구팬의 마음이다.

[장면②] 사상 최대 점수차 122-0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충주성심학교는 전국대회 1승이란 목표를 세우고 봉황대기 대비에 힘을 쏟는다. 하지만 김상남은 전국 레벨을 보여주겠다며 지역의 강호 군산상고를 불러 연습경기를 잡는다. 군산상고 야구부는 자신들보다 몇 수 아래인 성심학교 야구부를 대충 다루다 김상남에게 "동정하면 싸울 힘마저 없어지니 차라리 짓밟으라"는 호통을 듣고 최선을 다해 성심학교를 격파한다. 이를 계기로 성심학교 야구부원은 투쟁심에 눈을 뜨고 열심히 훈련한다.

실제로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그야말로 기록에 남을 경기가 펼쳐진 적이 있다. 농구에서나 나올 법한 122득점. 상대는 무안타 0점. 1998년 일본 고교야구 아오모리현 대회 2차전에서 맞붙은 도오기주쿠 고교와 후카우라의 고교의 경기에서 나온 기록이다.

사실 후카우라 야구부는 등록된 야구부원이 10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절반은 야구 선수 경험도 없었다. 도오기주쿠 고교는 고시엔대회 4회 출전의 경력을 가진 지역 강팀. 1군이 나설 필요도 없이 후보들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도오기주쿠 고교 측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상대를 몰아붙였다.

결국 149명의 타자가 86안타를 몰아쳐 후카우라 고교를 122-0으로 제압했다. 후카우라 고교도 도중에 경기를 기권할 수 있었지만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끝까지 싸웠다.

이 경기로 인해 일본 고교 야구 연맹은 지방 대회의 콜드 게임 기준을 만들었다고 한다. '약자에게 가혹한 일본 야구다', '보기 드문 진정한 승부였다'는 의견이 충돌했지만 승부에 있어 상대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 영화 <글러브>와 아오모리현 대회가 주는 교훈이 아닐까.

[장면③] 통한의 끝내기 보크

야구에 있어 가장 허탈한 마무리를 상상한다면 역시 끝내기 보크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 영화에서나 쓸 법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종종 일어난다. 투수들은 마운드 위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것이 정상적인 리듬을 망칠 때 보크가 발생한다.

1998년 8월 일본 고시엔 대회 2차전. 우베상고 2학년 후지타 쇼헤이는 오오타니 고교에 맞서 15회까지 완투중이었다. 2대 2 동점 상황에서 맞이한 무사 만루에서 후지타는 포수의 사인을 받고 던지려는 순간 두 번째 사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동작을 거둔다. 그때 주심이 뛰어나오며 보크 선언을 외쳤다. 일본 고교야구 사상 최초의 끝내기 보크가 나왔다. 3학년선배들에게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울던 후지타는 당시 일본야구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끝내기 보크는 총 4번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고 장명부다. 장명부는 86년 7월 26일 잠실에서 벌어진 MBC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은닉구 아웃 시도가 보크 판정을 받자 고의로 만루를 만들고 일부러 보크를 범해 경기를 끝내버렸다. 연패도 아랑곳 않는 그만의 거친 항의였던 것이다.

장애인이 야구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은 버려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영화 <글러브>의 한 장면. 시네마 서비스

야구를 할 때 야수들은 눈보다 소리에 먼저 반응한다. 타격음을 듣지 못한다면 실제로 0.03초 정도 늦게 반응하는 셈인데, 이는 실제 수비에서 3~4m 정도 처지게 된다고 한다. 외야수들은 맑고 경쾌한 소리를 들을 땐 뒤로 뛰고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 앞으로 뛰어들게 된다.

소리가 없다면 수비수들끼리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콜 플레이도 할 수 없게 된다. 콜 플레이가 되지 않는다면 서로 부딪히거나 백업 플레이도 할 수 없다. 이런 것을 두고 많은 이들은 말한다. 장애인이 무슨 야구냐고. 장애인들이 야구를 하려면 당연히 힘들다. 그렇다고 불가능은 아니다.

1888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더미 호이(본명 William Ellsworth Hoy)는 청각장애인이었지만 2044개의 안타와 594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호이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을 듣지 못해 3루심에게 볼카운트를 수신호로 알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를 바탕으로 1900년대 초미국의 명심판 빌 클렘이 야구의 각종 판정을 수신호로 정립하게 된다.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즈에는 이시이 유야라는 청각장애인 투수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즐기는 야구가 장애와 함께 발전했다는 점을 안다면 신체의 장애는 야구의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심학교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응원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다면 우리도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를 만날 것이다. 반드시.

글러브 영화 충주성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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