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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아시안컵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1.01.29 10:12최종업데이트11.0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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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축구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51년만의 '왕의 귀환'은 이루지 못했지만 3.4위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3-2로 물리치고 3위를 확정하며 2015년 호주대회 자동출전권을 획득,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을 이룬 허정무호에 이어, 대표팀을 물려받은 조광래 감독은 부임 6개월 만에 아시안컵에서 첫 국제무대 도전장을 내밀었다. 월드컵 주력 멤버들이 고스란히 건재한 가운데, 조광래 감독은 신진급 선수 대거 발탁을 통한 '세대교체'와, 스페인식 패싱게임을 롤모델로 한 '공격축구'를 표방했다.

 

이번 대회 최대의 수확은 역시 '새 얼굴'의 약진이었다. 지난 월드컵에서 '쌍용'으로 불리우는 이청용과 기성용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지동원, 구자철, 윤빛가람, 손흥민, 홍정호, 이용래 등이 A대표팀의 새로운 샛별들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로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다. 

 

구자철은 이번 대회 5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을 예약했고, 지동원은 박주영이 부상으로 빠진 이번 대회에서 공격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며 4골 2도움을 기록하며 원톱형 공격수의 신개념을 선보였다. 이용래는 김정우의 빈 자리를 메꾸며 수비형 미드필더의 가뭄을 해소했고, 이란전 결승골의 주인공 윤빛가람도 차세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도 이번 아시안컵에서 그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짧고 빠른 패스와 정교한 패싱게임. 폭넓은 활동량과 공간장악을 통한 확률 높은 점유율 축구, 포지션에 얽매이지않는 제로톱 전술과 변형 스리백 등은 시종일관 변화무쌍한 플레이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비와 체력에 초점을 맞춰서 안정지향적인 실리축구에 치중하던 이전의 대표팀과 달리 훨씬 공격적이면서 보는 재미까지 늘어나며 외신으로부터도 '조광래 축구'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한다. 조광래 축구는 아직 대표팀에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대표팀의 컬러를 완전히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조광래식 만화축구에 많은 선수들이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혼선을 겪어야했다. 조광래 감독 역시 자신의 전술에 맞는 선수들만을 중용하다보니 1,2진간의 격차는 클수밖에 없었다. K리그를 평정했던 유병수 같은 선수가 조광래식 전술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조광래 감독의 대회운영도 아쉬움이 남는다. 조광래 감독은 8강행을 사실상 확정짓고 인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조 1위를 의식하여 베스트멤버들을 무리하게 출전시켰다가 조 1위도 놓치고 주전들이 휴식을 취할수있는 기회마저 놓쳤다.

 

끊임없는 패싱게임과 활동량을 요구하는 조광래식 축구에서는 선수의 체력부담이 클수밖에 없었고, 대표팀은 대회 내내 경기후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약점을 노출했다. 체력 안배에 실패한 대표팀은 토너먼트에 접어들며 이란과 일본전에서 연이어 연장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며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고, 결국 준결승에서 승부차기의 벽을 넘지못했다. 또한 승부차기에서는 경험이라는 요소를 간과하고 어린 선수로만 키커를 편성했다가 단 한 골로 성공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해외파인 이청용은 이번 대회 내내 특유의 날카로움을 잃은 채 체력적 부담을 드러냈고, 박지성 역시 혹사의 후유증으로 무릎에 물이차는 증상을 보이며 3.4위전에서는 아깝게 결장해야했다. 이러한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대회 운영의 완급 조절에 실패한 것은 결국 조광래 감독 역시 대표팀 사령탑으로서는 경험 미숙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만하다.

 

한편으로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은 밀레니엄 이후 한국축구를 이끌어왔던 '2002 한일월드컵세대'의 완전한 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남아공월드컵을 끝으로 이운재, 김남일, 안정환, 이동국 등이 사실상 대표팀을 물러난데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캡틴 박지성과 최고참 이영표가 연이어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태극마크를 달고 센츄리클럽에 가입했고 각각 세 번의 월드컵과 아시안컵을 함께 해오며 10년간 대표팀의 간판으로 활약해 온 한국축구의 아이콘이었다.

 

비록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마지막 결실은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축구의 중흥기를 이끌어온 2002 세대의 '아름다운 퇴장'은, 그들의 뒤를 잇게될 이청용, 기성용, 지동원 등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줬다는 점에서 충분히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할만하다.

 

또한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중동축구의 퇴보와 함께 아시아축구의 지형도가 한국-일본으로 대표되는 극동과 호주로 대표되는 신 3강체제로 재편되고있음을 보여줬다. 아시아축구의 한 축을 이루던 중동이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4강에 한 팀도 배출하지못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자국리그의 폐쇄적인 구조와 협회의 장기적인 전략부재가 낳은 비극이었다.

 

반면 한국, 일본, 호주 등은 끊임없는 선진축구와의 교류를 통하여 자국리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많은 해외파선수들을 배출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빠르게 수용한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같은 아시아이면서도 서른 다른 축구 스타일과 롤모델을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와 우즈벡 등의 약진은 아시아축구의 상향평준화와 함께 종래 2류 대회로 평가받던 아시안컵 자체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2011.01.29 10:12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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