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개와 고양이' 포스터.영화 '개와 고양이'
<개와 고양이>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서민의 소소한 며칠간을 소재로 울퉁불퉁한 일상이 녹아있는 이 생활 영화는 이구치 나미 감독이 8밀리 독립 영화로 만들었다가 후에 극장용으로 다시 촬영한 작품이다. 두 여자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겨울의 툇마루에서 쬐는 햇살 만큼이나 아늑한 영화이다.
지독히 이기적인 후루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자를 부려먹는 남자다. 애인인 스즈가 주방에서 불편한 감정을 삭이며 카레에 넣을 감자를 썰고 있으면 너무 크게 잘랐다고 타박 하며 화를 돋운다. 게다가 자리에서 꼼짝 않고 숟가락 가져오라, 오차 가져오라 시키는 건 좀 많은 게 아니다. 한겨울에, 더구나 밥 먹다 말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그에게 스즈는 치솟는 감정을 겨우 삭이며 아이스크림을 사다주곤 짐가방을 들고 집을 뛰쳐나온다.
이후 그녀가 도착한 곳은 중국으로 유학 간다는 친구의 집. 1년 간 비어있을 그곳에서 유치원 시절부터 무던히도 싸웠던 요코를 만나서 둘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된다. 안경을 쓰고 얼굴은 머리로 반쯤 가린 채 여성미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요코는 어눌하고 내성적인 여자다. 목소리부터 애교가 철철 넘치고 외향적이며 꾀 많은 스즈와는 극과 극의 성격과 외모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두 여자는 취향이 서로 같다. 홍차에 레몬 즙을 짜 넣어 먹는 것, 남자보는 안목 등등. 사실 스즈가 홧김에 도망쳐 나온 그 남자도 두 여자가 동시에 좋아했던 남자다.
불편한 동거에 들어간 두 여자. 하지만 애교 많고 깔끔한 스즈의 성격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는 듯 하다. 무뚝뚝한 요코는 그 무렵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의 교대 근무자인 연하남을 짝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즈는 그동안 그래왔듯 애교를 부리며 남자에게 접근해서 집으로 초대한다. 자신보다 그 둘이 더 다정하자 요코는 밥을 먹다 말고 렌즈를 찾아끼고 스즈가 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는 여성미를 잔뜩 어필한다. 하지만 그렇게 달라진 외모로 자신의 짝사랑 앞에 다가가는 게 아니라 스즈가 뛰쳐나온 후루타네 집으로 달려간다.
한편 스즈는 혼자서 와인에 취한 채 케잌을 만들며 밤을 샌다. 그리고 요코 뿐 아니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도 밤새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아침이 되자 집 나갔던 요코가 돌아와서 "너의 후루타와 같이 잤다"고 한다. 발끈한 스즈는 와인을 요코에게 퍼붓고 애인에게 따지러 갔지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그제야 귀가하는 그를 보자 요코가 거짓말 한 것을 깨닫는다.
그 즈음 스즈가 만든 케잌을 먹으며 연신 맛있다를 연발하던 요코는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스즈가 하고 있는 개 산책 아르바이트 집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다. 이때 화가 잔뜩 나서 집에 온 스즈가 밀린 잠을 자기 시작하고, 요코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대신 하러간다.
실컷 잠을 자는 것으로 화를 삭인 스즈가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니 가는 빗방울이 들기 시작한다. 미워죽던 요코가 널어놓은 원피스가 비 맞을까봐 처마 밑으로 옮겨 널고, 집 나간 고양이도 열심히 불러 본다. 어느 틈에 비가 그치고 평온한 겨울의 햇살이 툇마루에 가득히 내린다. 지붕 위에는 그간 애타게 찾던 고양이가 귀여운 소리로 울고 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 본 우정 이야기
홧김에 집을 뛰쳐나온다는 것. 이 영화는 여자들에게 흔히 있을 법한 일상적 소재를 고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생물학적 특징에 연관시켜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사물에 심리를 대변하거나 상황이 사건을 이끌어가는 형식을 취하며, 여성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여자들의 미묘한 심리가 일상의 무던함 속에서 잘 표현했다.
여 감독 이구치 나미가 바라 본 여자들의 우정은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이다. 티격태격 자신의 앙숙인 스즈와 싸우고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할 즈음 손도 다 나았음을 알게 된다. 또한 연하남에게 호감을 보이며 그를 집으로 초대하지만 거절당하자 혼자 술에 취한 요코의 술주정은 평소에는 말대꾸도 하기 싫던 스즈에게 땅콩을 권하며 장난치던 그녀를 시작으로 두 여자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서 자신이 입던 옷도 선물하고, 시키기 전에 홍차에다 레몬을 짜 넣어 주며 마음을 열어간다.
이구치 나미는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여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실속은 다 차리면서도 겉으로는 항상 친절과 미소로 일관하는 여자, 이런 여자에겐 남자도 섣불리 마음을 뺏기지만 여자들 사이에선 눈에 가시다. 반면에 자신을 꾸밀 줄도 모르고 눈치도 없고 늘 당하고만 사는 여자, 이런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던 남자도 항상 뺏기기만 하고 ,심지어는 뺏겼던 남자가 솔로가 되자 다시 주워올 궁리도 하는 미련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여자는 또다시 티격태격 끝없이 싸우면서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두 사람 뿐이란 사실을 어느 틈에 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남자들의 우정이 의리와 동질의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것과 달리, 여자들의 우정은 서로 싸우면서도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아가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비주류들의 따뜻한 일상
이 영화 속 젊은이들은 번듯한 직장인들이 아니다. 다들 하나같이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꾸려가는 임시 방편의 삶을 살고 있다. 남자와 동거하다 뛰쳐나와선 급한 김에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싱글녀, 생활비를 벌려고 편의점 일을 하면서도 고급문화를 즐기는 오타쿠, 야간 식당 점원으로 연명하며 글을 기고하는 초보 작가 등등 하나같이 소위 말하는 '비주류' 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주위에 머물러 있기에 소박하고 따스하다. 그 표현은 개와 고양이로 대변한 두 여자의 성격으로 드러난다.
소극적인 요코는 고양이로 대변할 수 있고, 꾀 많고 외향적인 스즈는 개로 대변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집안에서 이 둘의 동거는 다정함과 더불어 말썽의 원인도 되지만 결국 집 집 밖에서는 남자('개'로 비유)들에게 대적하기 위해선 힘을 모아야 하는 동일한 고양이일 수 밖에 없다. 스즈가 집 나간 고양이를 열심히 부르며 걱정을 하는 것은 자신과 요코를 걱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개가 고양이를 찾는다는 유쾌한 상상으로 둘의 우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화를 내면 항상 다치게 된다며 붕대 감았던 요코의 손이 그 즈음엔 다 나았다는 건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감정의 정화를 보여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