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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사실 이번 대회 내내 조금 아슬아슬해 보였다. 상대가 조금만 거칠게 나와도 동료들을 대신하여 가장 먼저 앞장서서 기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배짱과 투쟁심은 높이 평가할만 했지만 수위가 지나쳐 오히려 독이 될 뻔한 순간도 있었다. 넘치는 의욕과 책임감이 꼭 좋은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문제의 세리머니를 보여줬을때는 본능적으로 '뭔가 사고를 쳤구나' 하는 아찔한 느낌이 왔다. 하필 일본전에서, 그것도 원숭이 흉내라. 뭔가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가봐도 명백한 일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선수로서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굳이 상대가 일본이 아니었더라도, 관중석에서 어떤 야유나 도발이 쏟아지더라도 그라운드위의 선수가 그에 맞서서 직접적인 대응을 해서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기성용은 경기후 트위터에 일본 응원단에 대한 의도된 도발이었음을 암시했다. 경기장에 내걸린 욱일승천기를 보고 울컥했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자 문제는 일본 응원단의 매너와 민족감정의 문제로 확대됐다. 욱일승천기만이 아니라 김연아 악마가면 등을 선보이며 도를 지나친 무개념 응원매너를 선보인 일본인들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었다는 옹호론이 나오기도 했다.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기성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념있는 생각'과 '경솔한 행동'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왜 그랬는지는 이해는 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주기는 어려운 행동이었다.
불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도 꼭 그런 '방식'이었어야 했을까. 일본에 대한 이유있는 응징이었다고 하더라도, 하필 '축구장에서 금기시되는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선택한 것은, 아시아 전역에 생중계되는 경기에서, 그것도 그라운드위의 국가대표선수가 취할 행동으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했다.
경기를 하다보면 때로는 돌+아이 기질을 지닌 선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그라운드에서 상대 선수들과의 승부에 한해서다. 어쨌든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 섰으면 오직 상대팀과의 경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어느 나라, 어느 스포츠의 어떤 관중이건 '무개념'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선수가 그라운드위에서 그런식으로 반응하면 어떻게 될까. 하물며 프로팀간의 경기도 아닌 국가대표팀간의 경기였다. 단순히 스포츠맨십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어쨌든 축구장에서 절대 금기시돼야 할 행위들에 대해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 것은 유감스럽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일본이니까 그런식으로 대해도 싸다"는 논리라면,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고 서양인이 동양인을 모욕하는 세리머니에도 나름의 이유와 의미는 있다. 2009년 맨유 방한시에 페데리코 마케다가 한국팬들에게 날렸던 모욕적인 원숭이 세리머니를 기억하는가?
이번 해프닝을 두고 FIFA의 추가 징계가 내려지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기성용은 이번 기회를 통하여 용기와 차기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선수가 반드시 신사나 성인군자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상대팀이건 팬들에게건 기왕 한번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런식의 감정적 반응보다는 좀더 세련되게 대처해야 했다. 자칫 TV를 보고있는 모든 일본인들이나 아시아인들을 도매금으로 비하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굳이 자행할 필요는 없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박지성은 골을 넣고나서 별다른 동작없이 관중석을 한번 거만하게 쓱 훑어보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수만 관중을 침묵시키고 상대의 기를 꺾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아니면 멋지게 경기를 이기고 난뒤 인터뷰에서 일본의 무개념 응원을 한번 공개적으로 조롱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어쨌든 축구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으로 응징하는게 최고의 복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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