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 주장 대근이 아이들을 대신해 수화로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간절하게 호소한다.
시네마서비스
충주성심학교는 지난 2002년 창단한 뒤 대한야구협회에 53번째로 등록했지만 그간 전국대회에서 단 1승도 하지 못했습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가 지난 2009년 1일 감독 겸 선수로 나서 <KBS 천하무적 야구단>과 친선경기를 하면서 유명세를 탄 정도입니다.
영화는 그런 아이들과 상남이 갖는 운동선수로서의 동류의식을 바탕에 깔고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상남의 시선은 서로 다릅니다. 상남은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채 자포자기한 상태. 반면 아이들은 말 그대로 1승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던 이들의 목표는 상남이 청각장애인인 아이들의 현실에 하나 둘 눈을 뜨며 연대의 접점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상남이 부임하던 첫 날, 명재가 땡땡이를 치며 놀다 자신을 '벙어리'라고 놀리는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입니다. 전후를 따지지 않고 명재를 넘기려는 파출소장에게 상남이 사인을 해주는 등 싹싹 빌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납니다. 상남이 목격한 장애 아이들에 대한 첫 번째 편견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다 서로 부딪치는 등 팀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극히 일상적입니다. 그 와중에 군산상고와 가진 친선경기는 상남에게 아이들과의 연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형편없는 실력을 보고 군산상고 아이들이 일부러 헛스윙에 삼진아웃을 당하며 키득거리자 상남은 분노합니다.
군산상고 덕아웃을 찾은 상남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에게 일갈합니다. "저 아이들이 벙어리라고 봐주는 거냐? 쟤들도 너희들만큼 땀 흘리며 훈련했다, 무시하지 말고 밟아라. 밟는 건 괜찮지만 일어서는 힘마저 빼앗는 건 안 되잖니?"라고. 경기가 끝난 뒤 상남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운동장에 무릎을 꿇은 채 우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운 뒤 학교까지 100km를 함께 뛰어 갑니다. 상남 자신에게 켜켜이 쌓여 있던 편견과 차별을 떨쳐내며.
장애를 넘어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 연대하다 장애를 앓으면서도 야구를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남으로 하여금 '처음처럼'을 되살립니다. 이제는 퇴색해 희미한 추억으로 남은 줄 알았던 고등학교 시절, 야구를 좋아해 밤새 공을 던져도 힘든 줄 몰랐던 그 초심이 오붓이 되살아납니다. 술독에 빠진 채,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줄 알았던 폐부 깊숙히서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다시 꿈틀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남의 야구에 대한 이런 사랑은 운동장에서 꽃핍니다. 지역 예선을 거치지 않고 야구부가 있는 학교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봉황대기를 앞두고 미리 경기장을 찾은 상남은 철수와 작전을 짭니다.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소개하며 상남은 말합니다. "저 넓은 그라운드에는 숨을 곳이 없다. 너희들이 흘린 땀을 믿고 숨지마라"고. 그와 동시에 전광판에 노란색 'GLOVE'가 켜지고, 잠시 뒤 'G'가 사라지더니 'LOVE'가 아이들의 눈과 가슴을 알알이 채웁니다.
상남이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되찾는데 있어 거울은 아이들입니다. 프로야구협회로부터 결국 제명당한 상남이 "더 이상 쇼할 필요 없다"며 돌아가자는 철수를 부둥켜안고 "이제 정말 야구를 다시하고 싶다"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는 것도 청각장애 아이들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영화는 운동선수에겐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청각장애를 뛰어 넘어 가슴으로 야구를 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매개로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 연대하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글러브>가 담아 내지 못한 한국 사회 장애인의 현실
▲봉황대기 출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전지훈련을 간 아이들이 한 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해 타격연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성심학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네마서비스
그러나 영화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옥죄는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감독 스스로 '영화를 찍으면서 많이 배웠다'는, 청각장애의 현실에 대해 카메라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야구부를 해체하려는 학교와 학부모 운영위원회에 맞서 상남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의 편견에 맞섭니다. "장애 아이들이라고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좌지우지한다면 그런 교육은 뽕이며, 그런 학교는 니미 뽕이고 그런 어른은 니기미 뽕"이라고. 하지만 거기까집니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장애인 수만 224만 명(2009년도 현재)을 넘어선 한국사회에서, 돈 있는 집안에서도 1억 원의 기부금을 내고 친권포기각서를 써야 복지시설에 수용되고,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가족의 보살핌에 의지해야 하고, 일부 사회사업가들과 공무원들이 장애인을 치부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현실에서 장애인을 둘러싼 복마전은 가장 농축된 '한국병'에 다름 아닙니다.
지난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도 마음껏 영화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으로 진정서를 낸 것은 이 같은 현실을 뒷받침합니다. 이들 장애인에게 정보접근권은 기본권과 생존권에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요지부동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성장에 방점을 찍은 이명박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를 무조건 시장의 요구에 맞추겠다며 한 때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와 자막 해설방송을 모두 없애려 한 것은 사실상 정부 스스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무력화하려는 기도였습니다.
여기에다 장애인관련 제반 정책을 수립하고 관계부처 간 의견을 조정하며, 정책 이행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최종 결정기구인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장애인권익증진과를 폐지하려다 반발을 산 것도 이명박 정부의 장애인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같은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방콕'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에 대해 몇 해 전 뉴스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에는 장애인이 없느냐"라고 물었다는 것.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의 신산한 현실은 스크린 밖 충주성심학교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됩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상남을 따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에서 봉황대기 대비 전지훈련을 합니다. 풀 스윙으로 배트를 휘둘러 파도를 부수고, 부상 염려 없는 바다에 몸을 던지며 수비연습을 하고, 패를 나눠 기마전을 하다 깔깔 웃으며 팀플레이를 다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100만 원 넘는 전지훈련비가 없어 바닷가는 꿈도 못 꾸며, 야구용품도 제대로 사지 못해 전전긍긍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서 길어 올리는 꿈과 희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아이들의 한 없이 선한 눈빛과 조우한다면, 이번 설은 가족과 함께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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