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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만 못한 <평양성>, 이준익도 변했네

[리뷰] 현실 풍자 풍부했던 감독, 두루뭉수리한 민족주의라니

11.01.27 14:10최종업데이트11.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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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작 <황산벌>과 2011년 1월 27일 개봉 예정인 <평양성>
2003년 작 <황산벌>과 2011년 1월 27일 개봉 예정인 <평양성>(주)타이거 픽쳐스

<황산벌>은 2003년 10월 개봉했다. 300만을 동원한 흥행작이었고,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기 이전 이준익 감독의 두 번째 영화였다. 또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첫 번째 코믹 사극이었다. 이제는 '팩션'이란 용어로 일반화된 장르의 선배 격이라 봐도 무방했다. 무엇보다 '전쟁' 영화였다.

그 2003년 10월, 이라크 파병안이 결정됐다. 참여정부 초반, 이라크 파병은 정치권은 물론이요 국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 직전이었던 2002년 아들 부시는 북을 '악의 축'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다음 해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다. 그 직전이었던 2002년 6월엔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단언컨대, <황산벌>이 3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사투리로 웃기는 퓨전코믹사극이었기 때문이라 회고하는 건 어딘가 부족하다. <황산벌>이 만들어지고 극장에 걸리던 바로 그 시간을 잊으면 안 된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반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때, 강대국을 위한 파병안이 결정됐다.

"짐은 오늘 고구려와 백제를 천하의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선포한다!"

당 고종의 이러한 대사로 출발하는 <황산벌>은 영화 속 당나라를 현실의 초대국 미국으로 치환한다. 그리고 그걸 풍자의 근간으로 활용했다. 한편 역사 속 예정된 승전국이었던 신라가 백제를 무너뜨리려는 당나라를 위해 '쌀배달'을 했지만 결국 실리는 취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그리하여 강대국 아래에서 벌일 수밖에 없던 전투에 대해 김유신의 입을 빌려 "전쟁은 미친 것들이 하는 기야"라고 정의했다. 약소국의 울분에서 나름의 반전 메시지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황산벌>은 꽤나 화끈한 직설화법을 구사했다. 그래서 오히려 풍자와 반전이란 주제를 풍성하게 완성해 주는 건 2003년의 현실이었다. 강대국에 의한 침략은 되풀이된다는 명제가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말이다. 정성일 평론가가 단도적입적으로 "못 만들었다"고 혹평했던 <황산벌>은 그런 영화였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것"

 포로인 '거시기'는 전쟁영웅으로 거듭난 것도 모자라, 남순과 결혼까지 했다.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포로인 '거시기'는 전쟁영웅으로 거듭난 것도 모자라, 남순과 결혼까지 했다.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주)타이거 픽쳐스

그리고 8년 뒤인 2011년, 속편 <평양성>(27일 개봉)이 당도했다. 그런데, 속편에서 이준익 감독이 전하는 풍자의 농도나 메시지의 방향이 전편과는 꽤나 달라 보인다. <평양성>에서 가장 궁금한 건 그 변화의 속내다.

서기 668년 평양성 전투. 지략가 김유신(정진영)은 좀 더 노회했고,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농사꾼 거시기(이문식)도 또다시 전투에 차출됐다. 당을 등에 업은 신라는 연개소문 사망 후 온건파인 첫째 남생(윤제문)과 강경파인 둘째 남건(류승룡)이 대립하고 있는 고구려 평양성으로 진격한다.

신라에게 본진을 차출, 전투를 속전속결하라고 종용하는 당과 최대한 병력의 출혈을 줄여 삼국 통일 이후를 준비하려는 신라, 그리고 협상과 전면전 사이 쟁투에서 후자를 선택한 고구려. 한 달간 지속된 평양성 전투에 상상력을 불어 넣은 <평양성>은 이 3국의 지략싸움과 전투 공방을 바탕으로 거시기의 생존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전편에서 당나라 소정방에게 끝내 칼을 겨눴던 소신파 김유신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것"이란 지론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당나라의 눈치를 볼만큼 노회한 대장군이다. 반면 그와 맞붙어 결사항전을 부르짖는 동생 남건이나 당나라에 들러붙는 남생은 심각하게 무모하거나 멍청해 보일 지경이다.

황산벌에서 '살아남은' 이력의 소유자답게 '백제 출신' 거시기는 일약 극 중심에 섰다. 그는 백제 출신 병사 몇몇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모자라, 포로로 잡혔으면서도 적진인 신라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 받는다. 거기에 더해 고구려 여장부 남순(선우선)과 혼례를 맺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평양성>은 정치가들의 땅따먹기 노름일 뿐인 전쟁보다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시기의 한결같은 소신에 빗대 반전의 의미를 내내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은 의미도 있고 곁가지 재미도 충분해 보인다. 민초를 대변하는 우리의 '거시기'를 응원하는 이준익 감독의 계급의식은 변치 않았다.

볼거리도, 배우 보는 맛도 나는 코미디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주)타이거 픽쳐스

할리우드 속편의 법칙은 단순명쾌하다.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 전편보다 화려한 볼거리로 더 많은 수익을 낼 것. 현장공개 때 "이 영화 망하면 은퇴할 것"이란 농담으로 흥행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바 있던 이준익 감독도 이 공식을 피해갈 순 없었던 것 같다.

순제작비만 60억 원 가까이 들였다는 <평양성>은 평양성 세트 제작에만 15억 원이 들었고, 5000여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 전투신의 규모에 좀 더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사극에다 전쟁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황산벌>보다 분명 세련되고 매끄러운 전투 장면을 찍어냈다. 그럼에도 전투 장면은 입을 딱 벌어지게 할 만큼의 스펙터클한 쾌감을 전달해 주지는 못한다. 개별 장면의 화력은 세졌지만 오밀조밀한 감정의 밀고 당기기는 다소 약해졌다.

그건 전체적인 <평양성>의 분위기가 코미디 쪽에 기울어져서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어리바리하게 버둥대는 거시기의 활약은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웃음을 유발하는 기능으로 활용된다. 코미디와 스펙터클한 전투신의 화학반응이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코미디의 휘발성도 전편에 비해 다소 약하다는 데 있다. 그건 전편과 다른 걸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사투리 유머의 횟수와 강도를 의도적으로 줄여서일 가능성이 크다.

굳이 비교하자면, <황산벌>은 갖가지 전투를 코믹하게 이어 붙이던 초반부에 이어 계백이 죽는 마지막 전투를 비장미 있게 마무리하며 전투 자체를 극 속에 녹여냈었다. <황산벌>은 강약의 조절도 확실한 편이었다. 41명의 아들을 낳았던 의자왕이 "자식들 다 소용 없당게"라고 후회할 때, 김유신이 "난 계백이 갸가 무섭데이, 억수로 무섭데"라고 움츠릴 때, 사투리와 역발상을 통해 역사 속에서 화석화된 인물들에게 생동감을 부여했었다.

그 위에서 <황산벌>은 패자의 관점을 대변하는 계백과 그의 절박함에 신중함으로 대응하는 김유신의 대결, 그리고 후반부 들어 강조되는 전쟁의 무상에서 코미디를 걷어낸 진지하고도 강렬한 드라마로 읽는 것이 가능했다. 거칠고 날선 이준익 감독의 현실관이 극 속에 잘 녹아들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평양성>은 여타 사극에 비해 볼거리에서 뒤지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유머도 적지 않다. 정진영,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한꺼번에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풍자를 기반으로 이를 '반전'이라는 주제로 버무리는 이준익 감독의 손맛도 전편 못지않다.

<평양성>은 분명 설 대목에 가족단위 관객들이 웃고 즐길 만한 오락영화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전편과의 근본적인 차별점이다. 그 차이는 이준익 감독이 8년 전과 달리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느냐란 질문에 달려있는 것 같다. 천안함이 침몰하고 연평도가 포격 당했으며 한미FTA 비준이 준비 중인 이 시대 말이다.

더 착하고 덜 차가운 풍자, 시대 때문일까?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영화 <평양성>의 한 장면. (주)타이거 픽쳐스

신라군은 도토리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고구려 병사들을 향해 "너희들은 쌀도 못 먹지"라며 우스꽝스러운 쌀 공격을 감행한다. 여기서 북한의 식량난을 연상하지 않기란 실로 불가능하다. 또 당나라 지휘부를 떨게 하는 '신무기'의 등장도 동일한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후반부 들어 <평양성>은 지속적으로 민족끼리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한다. 그러나 여기서 방점은 '어떻게든'에 찍혀야 한다. '결사항전'의 남건과 비교해 배신자 남생을 타협을 획책하면서도 형제애를 간직한 것으로 묘사하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렇기에 이준익 감독이 택한 이 두루뭉술한 민족주의는 전작만큼 현실을 환기시키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김유신의 실리 추구도 마찬가지다. <평양성>은 김유신이 평양성으로 들여보낸 특공대의 역할을 실제 역사와 바꿔치기하면서까지 한반도를 지키려는 '화해'와 '희망'이란 이름의 판타지에 기대려고 한다. 나름의 현실인식을 탑재한 채 희비극을 교차시켰던 <황산벌>의 장점을 버린 셈이다. 수치스럽게 강대국을 등에 업었던 신라에 대한 자기부정 또한 이제 없다.

황산벌에서 거시기는 싸움 중에 살아남았지만, 평양성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이에 대한 알리바이가 부양해야 할 가족 남순이다. 8년 전, 김유신은 계백과 싸웠지만 지금의 김유신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지략과 싸움을 벌인다. 김유신도, 이준익 감독에게도 8년이란 시간은 똑같이 흘렀다. 그 시간의 주름에 대한 답이 이 더 착하고 덜 차가운 <평양성>인 셈이다. 3부작의 끝인 <매소성>을 만들 때면, 세상과 이준익 감독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평양성 이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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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