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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기억 왜곡과 조작의 미스터리극장

[영화로 읽는 세상이야기 44] 기억 왜곡과 조작의 미스터리 <죽이고 싶은>

10.08.28 14:08최종업데이트11.05.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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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연극 같은 영화가 있었습니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제한된 무대와 소품 그리고 장치들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입니다. 감독의 말대로 기발한 상상력의 힘은 영화와 연극과 문학이 각자의 경계를 넘어 어우러지게 했습니다. 개봉 당시 <도그빌>은 관객에 따라 다양한 해독을 내놓으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중요한 건 어느 해독이 정답이냐가 아니라 영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다종다양한 접근과 해석을 가능케 했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문제들을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현실의 한 단면을 절개해 스크린을 매개로 인간 세계를 투사하는 '영상 인간학'이라고 부릅니다.

그 영상 인간학에 근접한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복수와 폭력이라는 코드로 현실을 반추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일련의 한국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는 틈새에서 기상천외한 감성과 논리로, 연극 같은 무대에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자신만의 기억이 진실'이라며 상대를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죽이고 싶어 하는 영화 <죽이고 싶은>입니다.

연극 같은 영화, 기억의 왜곡과 조작에 대해 묻다

 2인용 병실에서 극적으로 해우한 민호와 상업은 서로를 철천지원수 사이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기억이 왜곡되고 조작된 거짓기억임을 폭로한다.
2인용 병실에서 극적으로 해우한 민호와 상업은 서로를 철천지원수 사이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기억이 왜곡되고 조작된 거짓기억임을 폭로한다. 펀치볼

영화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기막힌 설정을 축으로 전개됩니다. 끊임없는 자살 시도 끝에 오른손만 움직일 수 있는 민호(천호진 분)와 머리가 짓이겨져 기억상실증에 전신마비로 병원에 실려 온 상업(유해진 분). 2인실에서 맞닥뜨리는 둘은 철천지원수 사이.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나야 합니다.

민호가 '필살 복수 5종 세트(효자손, 젤리, 스타킹, 비누, 분무기)'로 상업을 죽이려고 패면 팰수록 상업이 점차 기억을 되찾는 기괴한 방식으로 서로를 죽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두 사내간의 대회전은 코믹하다 싶으면 어느새 살벌하게 턴을 합니다.

그들이 상대를 죽이려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기억이 전부입니다. 둘의 기억은 과연 정확할까요? 그들의 복수가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서 두 사내의 과거의 기억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한 꺼풀씩 속살을 드러내는 가운데 영화는 은근슬쩍 복선을 깔고 놀라운 반전을 획책합니다.

영화는 자신만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눈에 불을 켜는 두 사내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들의 실체와 함께 그 이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죄의식의 간극을 들춰내며 나지막이 속삭이듯 묻습니다.

이는 마치 8·8 개각 인사청문회에서 총리 후보자부터 장관 후보자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억만 기억하거나 기억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거짓 기억'은 없었느냐고, 스스로 기억을 조작하는 사이 자기 기만이 일어나 죄책감은 마비되고 종국에는 스스로도 진심인양 믿게 된 적은 없었냐고 묻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조작된 기억의 또 다른 모습 '망각'

 간호사들과 함께 산책에 나선 두 사내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둘은 밤잠을 설쳐 가며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한다.
간호사들과 함께 산책에 나선 두 사내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둘은 밤잠을 설쳐 가며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한다. 펀치볼

영화는 기억의 조작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인셉션>과 맞닿습니다. <인셉션>은 특정인의 꿈 속에 들어가 기억을 훔칠 뿐만 아니라 생각의 씨앗을 심어 기억을 조작한 뒤 식재된 무의식으로 그 사람의 판단과 행동을 자신의 뜻대로 조절하고 통제해 관철 시킵니다. 문제는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아마도 '인셉션'을 당한 모양입니다.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씨를 2007년 이후부터 알았노라고 한사코 거짓말한 것은 인셉션을 당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체불명의 추출자가 김 후보의 무의식에 파고들어 청문회에서 어떤 말을 하든 거짓말로 일관하도록 인셉션 당했다는 것입니다.

인셉션을 당하지 않았다면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영화 <죽이고 싶은>처럼 스스로 자기 기억을 조작하는 '거짓기억'의 결과로 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명석해 보이는 이가 10년 전도 아니고 3~4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거짓기억이 아닌 한 치매로 밖에 달리 풀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호와 상업 둘 다 자신만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민호는 상업이, 상업은 민호가 여자를 죽였다며 으르렁거리고, 서로를 죽이고 싶을수록 자신의 기억에 의심이 가고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인사청문회처럼 구체적인 기록을 들이밀며 기억을 똑바로 잡아주는 이도 없습니다. 

라틴어로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합니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해독은 제 편한 대로 하다 보니 진실이나 사실이 상대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인사청문회의 단골 증언인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가 조작된 기억의 또 다른 모습인 망각인 것처럼, 기억에 대한 불신은 민호와 상업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마침내 두 사내의 긴가민가한 기억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진실의 상대성이란 없다

 민호와 상업이 마지막 일전을 치르지만 자신들의 기억이 조작됐고 조작된 기억 넘어 진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민호와 상업이 마지막 일전을 치르지만 자신들의 기억이 조작됐고 조작된 기억 넘어 진실을 알게 되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펀치볼

영화는 2인용 병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한쪽 손만 쓸 수 있는 제한된 신체로 제한된 사투를 벌이는 상황극 속에서 기억과 진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기발랄하게 펼쳐 놓습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연극적 요소와 결합도를 높이면서 한국영화의 장르를 새롭게 확장했습니다.

<죽이고 싶은>의 영상 인간학의 기제는 기억의 조작, 즉 거짓기억입니다. 더욱이 이 거짓기억이 여성 장애인에 대한 끔찍한 성폭력과 살인 그리고 복수라는 코드로 연결되어 개개인에게 파편화될 경우 진실의 문제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을 개연성이 농후해집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누구의 기억이 진실인지, 기억의 시간을 되찾아가는 불편한 시간여행을 요구합니다.  

민호와 상업을 연결하는 고리는 과거의 한 여성입니다. 민호에게는 아내로, 상업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복선이 깔리고 제3의 인물이 두 사내를 원수지간으로 맞붙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에 머물지 않고 다소 복잡한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이끕니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듯이, 과거에 대한 기억은 실제 일어난 진실의 뼈대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왜곡하고 조작합니다. 영화는 이 거짓기억에 대해 두 사내의 과거의 삶을 추적하면서 하나씩 밝힙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기억과 진실이 어떻게 왜곡됐고 조작되었는지를 살 떨리는 복수극을 통해 증명합니다.

인사청문회는 기억 왜곡과 조작의 미스터리극장

침대활극이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유려한 디테일과 거침없는 전개방식으로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넘어 선 <죽이고 싶은>의 압권은 두 주연배우의 근사한 연기입니다. 여기에 현실에서든 영화판에서든 폭력의 가해자인 남성들이 판치는 마당에 '금자씨'의 후예가 등장해 왜곡된 기억을 바로 잡아 폭력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체로 나선 것은 이 영화가 갖는미덕 중 하나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민호와 상업이 병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겨루는 마지막 일전은 금자씨의 후예가 마련한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기억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피범벅이가 된 사지가 떨어져나가듯 기억의 조각들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이윽고 둘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금자씨가 결코 친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단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군상은 민호와 상업만이 아닙니다. 늘상 현실은 영화보다 한 수위입니다. 기억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형되는지를 미스터리극장마냥 펼쳐 놓은 인사청문회가 남긴 문제는 정작 따로 있어섭니다. 자기 기억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국민들의 삶과 나라 살림은 얼마나 가볍게 조작하고 왜곡할 수 있을지 능히 짐작됩니다.

거짓기억에 통달한 이들이 국정을 주무를 경우 그 폐해가 단순히 국정농단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조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기억의 왜곡과 진실의 조작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더러 그것을 정치적 유산으로 계승해 확대재생산해 나간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민호와 상업이 제3의 인물에 의해 기억과 진실을 되찾듯이 이들의 기억 조작과 계승 역시 제3의 인물에 의해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제3의 인물을 우리는 '국민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죽이고 싶은 인사청문회 유해진 천호진 라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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