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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니까

[리뷰] 논란으로 가득 찬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10.08.14 11:14최종업데이트10.08.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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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을 넘어서> 중

미안하지만, 괴물을 배출해 놓은 세상을 따라잡다보면 우리는 같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는 종교에 귀의하고, 누구는 세상을 놓아 버리며, 누구는 그 괴물을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을, 악마를 보았다면, 가급적 우리는 그 괴물을 피해버려야 할 것 같다. 악마와 거래한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팔아넘길 수는 없지 않나. 우리는 문학에서, 영화에서 종종 그러한 교훈을 배워왔다. 단지 실생활에서 뼈저리게 느끼며 살지 못할 뿐.

김지운 감독이 만든 <악마를 보았다>의 소재는 이렇게 꽤나 단순하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 분)과 맞닥뜨린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 분)이 어떻게 지독한 복수를 행해 가느냐, 그리고 또 어떻게 망가져 가는가. 다시, 괴물의 심연과 마주한 한 인간은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가. 이  지독한 아이러니와 부조리, 그리고 강렬한 사실감.

제한상영가 판정 논란에 이어 12일 개봉한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 첫날부터 잔인성 논란을 일으키며 여름극장가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잔인하다. 목불인견의 잔혹한 표현이 스크린 위로 시종일관 넘실댄다. 다분히 하드고어 장르 팬들이  입맛을 다실 만하다.

'장르의 달인' 김지운 감독이라면 좀 더 기대해봄직 하지 않나. 그리고 공개된 영화는 그 기대에 부응할 만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진정 '악마'를 보여주는가?

현실이 영화를, 아니 영화가 현실을 모방한다

 김지운 <악마를 보았다> 감독.
▲김지운 <악마를 보았다> 감독. 페퍼민트앤컴퍼니
"영화는 기본적으로 현실을 모방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일어났던 것들을 오히려 영화가 못 따라 간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은 현실에 대한 비약되고 고조된, 또한 극적인 반영입니다.

그 특별한 두 시간을 몰입하게 하는 것은 드라마와 리듬입니다. 훌륭한 연기자가 표현했을 때 오는 실감 때문에 그런 염려가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만일 그런 범죄를 일으킨다면 그 영화와 상관없이 그런 소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10일 기자시사가 끝난 뒤 열린 간담회에서 모방범죄에 관한 질문에 대한 김지운 감독의 명쾌한 답이다. 지존파 사건 이후에 그와 관련된 드라마가 나오고 또 십수 년 후에 영화 <홀리데이>가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유영철 같은 연쇄살인마가 존재하는 시대를 공유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은 이미 데뷔 이후 장편영화로만 <조용한 가족>에서 코믹잔혹극을, <반칙왕>에서 슬픈 코미디를, <장화, 홍련>에서 가족 호러를, <달콤한 인생>에서 필름느와르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만주 웨스턴을 능숙하게 요리했던 바 있다. 그리고 그에게 심리스릴러의 시나리오가 주어졌다. 그리고 완성품은 한국영화 사상 표현 수위에 있어 가장 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육을 먹고, 입을 찢고, 시체를 자르는 등의 신체 훼손 장면이 시종일관 비위 약한 관객들을 괴롭힌다. 그런데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표현이 생생한 현실감 위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미장센에 공을 들이기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은 살인이나 폭력을 노출시킬 때는 대비가 강한 조명으로 심리를 자극하는 동시에 낮장면에서는 현실감을 강조하는 조명과 촬영을 더해 리얼리티를 배가 시킨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

더더욱 장르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악마를 보았다>는 <반칙왕> 이후 가장 높은 몰입도와 감정 이입의 순간들을 선사한다. 화장터 장면을 보자. "미안하다, 주연아. 약속 못 지켜서. 너무 늦고 약속도 못 지켰어. 이것만 약속할게. 니가 받은 고통, 그 놈한테 천 배 만 배 갚아줄게." 약혼자를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당한 주인공 수현의 아픔은 이병헌의 호연과 기나긴 롱테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반대로 연쇄살인마 장경철의 경우는 어떠한가. 장경철의 살인 장면들은 굉장히 영화적으로 찍혀 있다. 공들여 찍은 2인조 택시 강도 살해 장면이 좋은 예다. 빠른 속도감으로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 속에 두 사람을 살해하는 소름끼치는 사운드와 혼란감은 무감각하게 살인을 자행하는 장경철의 심리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하려는 자와 연쇄살인범의 감정선 그대로 찍혔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문제는 수위가 아니다. 어떤 감정을 담으려고 했는 가다.

그렇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좋은 '영화'일까?

 왼쪽부터 배우 최민식, 김지운 감독, 배우 이병헌
▲왼쪽부터 배우 최민식, 김지운 감독, 배우 이병헌페퍼민트앤컴퍼니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통쾌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었던 오대수와 그에게 복수를 한답시고 자살을 택해버린 이우진의 대립을 그렸던 <올드보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복수에는 대가가 따른다. <악마를 보았다>는 그 대가의 고통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영화다.

"괴물에게 복수하려는 자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부조리를 영화에서 표현 하고자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 느꼈던 강렬함, 본능적인 것, 솔직함, 영화 도처에서 느껴지는 힘들을 영화 안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감독의 의도는 그렇게 해석해 줘야 마땅하다. 현실에서 범인들이 할 수 없는 복수의 극한을 보여준 뒤, 그 뒤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파괴와 자멸의 감정들이 <악마를 보았다> 안에는 공존한다. 그것이 바로 기존 할리우드나 유럽에서 보았던 하드고어 장르와의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이슈를 제기해 보자. 영화적인 완성도와 또 하나는 윤리성. <악마를 보았다>는 어떤 면에서 김지운 감독의 또 다른 성취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칙왕>의 드라마적인 감정이입과 몰입도, <장화, 홍련>을 닮아있는 으스스한 펜션신, <달콤한 인생>의 자기 파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활동사진으로서의 활력이 모두 담겨져 있다. 기술적인 인장과 형식미에 있어서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솜씨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관객들이 모두 영화 팬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근친상간과 신체훼손 면에서 만만치 않았던 <올드보이> 때도 그랬다. 분명히 '영화' 외적인 모방이나 윤리성의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잔존하는 이 불편함의 정체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페퍼민트앤컴퍼니

<악마를 보았다>에는 수많은 클로즈업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은 최민식과 이병헌이 보여주는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하고픈 감독의 애정의 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전부가 아니다. 영화는 종종 인물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대사를 내뱉는 순간을 잡고 있다. 관객에게 직접적인 말걸기를 시도하는 셈이다.

특히나 복수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엔딩신이 그렇다. 장경철이 수현에게 매달리며 살려달라고 읍소하는, 그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까발리는 장면 또한 카메라가 두 사람을 정면 클로즈업으로 응시한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두 괴물 심리의 심연이다. 그러니까 연쇄살인이 서울이란 대도시 바로 옆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이 시대의 심연은 무엇인가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것이다.

때로 그 의도가 지나쳐, 수현의 처제가 죽는 장면처럼 서스펜스를 강조하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의 윤리성과 그 기준이 흔들릴 때다. 수현의 울먹이듯 고통스러운 표정을 길게 잡은 장면처럼 그들의 심리를 좀 더 응시했으면 영화가 더 깊어졌을 거란 아쉬움이 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이 논쟁을 불러일으킬 영화는 우리시대에 필요하다. 사실 표현 수위는 중요치 않다. 현실에서도 수위만 달랐지 인간성을 유린하는 악마들은 차고 넘치지 않나. 영화적인 쾌감이 지나쳐 그러한 윤리성과 인간성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부족해 보일지언정 문제를 제기하는 것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감독님의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형태, 문화의 파급력, 사회적 도덕성이 많이 회자되고 논란이 되기도 하죠. 감독님 말씀에 덧붙이자면 우리는 그야말로 우리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폭력 속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때리고 맞고 죽이고 하는 폭력도 있겠지만 이병헌씨가 말씀하셨던 언어, 정치적 폭력 등 폭력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중독되어 가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최민식의 말처럼, 논란으로 가득 찬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고 또 건전한 토론 속에 생산적으로 맞이할 것인가야 말로 그 사회의 성숙도와 영화문화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 줄 것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그러한 논란과 논쟁에 불을 지필 영화다.

이 영화를 받아들일 관객들의 반응이 사뭇 궁금해진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던 영화등급위원회와 <악마를 보았다>라는 영화, 그리고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 속 대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우리 부디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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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