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변혁을 꿈꾸는 이몽학과 이를 막는 맹인 검객 황정학. 여기에 백지의 사랑과 견자의 복수가 두 남자가 내뿜는 혁명과 반혁명의 칼끝 위를 교차하며 욕망과 신념, 복수와 사랑의 파열음을 토해 놓으면서 관객들을 급박하게 빨아들인다.
영화사 아침
영화는 정여립이 죽은 지 3년째 되는 해인 임진왜란을 주 무대로 삼습니다. 이 점이 인상적인데, 그 이유는 일부 진보적 역사가들이 정여립 역모사건 즉, 기축옥사의 황폐한 재앙이 왜란을 야기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축옥사를 계기로 동인과 서인이 엎치락뒤치락 피의 난타전을 주고받는 와중에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는 등 본격적인 붕당정치로 조선이 분열되면서 왜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동인과 서인이 왜란이 일어났을 때조차 당파적 이익과 명분에 매몰되어 갑론을박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골머리를 썩이던 선조가 두 당파에서 각각 천거한 "신립을 육지로, 이순신은 바다로 보내 지키게 하라"고 명하는 대목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정여립의 대동사상의 후폭풍이 조선 지배층의 분열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습니다. '반역의 시대'라고 일컫을 수 있는 조선중기부터 1894년 동학농민전쟁까지 근 4세기에 걸쳐 조선시대 민중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반역의 시대는 생존을 위한 경제투쟁으로서의 '민란'과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투쟁으로서의 '변란'으로 나눠집니다.
영화에서 혁명을 꿈꾸는 두 인물 중 정여립은 수탈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아우르는 한편 반상의 차이를 넘어서는 통합으로 민란과 변란을 결합한 최초의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이몽학은 주변부 왕족으로서 중앙권력의 쟁취를 목표로 변란(쿠데타)을 일으키지만 수탈에 찌든 농민들이 대거 참여해 세가 확장되면서 결국 정여립의 뒤를 잇습니다.
정여립과 이몽학이 꿈꾸던 대동 세상 흥미로운 사실은 정여립이 황해도를 역모의 진원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호남을 중심으로 대동계를 구축했음에도 이곳이 발원이 된 것은 정여립 등 역모의 주역이 황해도 출신인 탓도 있지만 일찍이 '임꺽정의 난'이 일어날 정도로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은 데 연유합니다.
황해도를 비롯해 서북지역에 사대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것은 태조 이성계가 서북인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유언에서 비롯됩니다. 여기에 정여립 역모사건 뒤로 호남의 사림이 초토화되고 조정에서도 전라도를 '반역향'이라고 하여 호남인들의 등용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이로써 전라도와 서북면은 반역의 기운이 서린 땅으로 후천개벽의 지상정토를 간절히 염원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정여립을 죽게 하고 대동계를 해체한 한신균을 몽학이 죽이자 서자 견자가 복수를 다짐한다. 몽학에 대해 일편단심인 백지를 흠모하게 된 견자는 괴로워하면서 마지막 복수의 칼을 겨눈다. 영화사 아침
영화에서 이몽학은 정여립의 죽임 뒤 대동계의 수장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여립과 몽학은 대동계와 동갑계라는 별개의 계를 꾸립니다. 이들 계는 무사들은 물론 공사천의 노비까지 참여하는 등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었던 비밀결사체에 가까웠습니다. 조선 후기의 검계나 살주계 역시 반양반 조직으로 평등한 사회를 꿈 꾼 결사체였습니다.
계를 구심체로 활동하던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맞닿은 곳이 있으니 바로 미륵신앙입니다.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며 기거했던 집터가 김제 금산사 인근에 남아 있고, 몽학의 동갑계 주력이 부여 도천사 승려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정여립이 성리학의 의리론 즉 이론과 명분에 갇혀 있지 않고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아 불평등한 조선을 뜯어고침으로써 대동 세상을 구현하려고 했던 것 역시 지상정토인 미륵용화세계의 구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륵신앙은 구세불인 미륵과 불국토의 도래를 기원하는 데서 기독교의 메시아에 비견됩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민심이 도탄에 빠졌을 때, 미륵용화세계라는 지상정토를 실현하려던 백성들과 혁명가들의 꿈은 그만큼 간절했습니다. 이런 미륵신앙이 조선 중기 이후 '반역의 세월'에 민중봉기의 표상이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입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으로 부활한 민중운동
미륵신앙은 정여립을 경과하면서 질적 도약을 하게 됩니다. 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듯이, 메시아는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 스스로가 메시아라는 각성을 가질 때 현신한다는 사상적 지표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홍경래가 '진인설'을 항쟁의 사상기반으로 삼은 것이나 동학농민전쟁이 인내천의 깃발을 높이 세운 것 역시 정여립으로 귀결됩니다.
영화에서는 임금이 달아난 텅 빈 도성에 무혈 입성한 이몽학을 통해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비극을 부르는 것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물론 그에 앞선 정여립의 혁명도 실패로 끝나고 그 뒤 홍경래의 난과 동학농민전쟁 등 민중운동은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나 스스로 죽창을 들고 새 세상을 만들고자 나설 적에야 후천개벽은 열린다는 민중사상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세의 메시아를 꿈꿨던 미륵신앙에서 싹터 정여립을 통과한 다음 동학에 이르러 제 모습을 갖추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민중사상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빛고을에서 '민중항쟁'으로 부활하며 우리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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