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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패배와 허무의 안개를 헤치고 솟아오른다

[영화로 읽는 세상 이야기 ⑪] 이름 없는 별들을 위한 헌사 <알제리 전투>

10.01.02 17:50최종업데이트11.05.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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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8년간의 저항과 희생을 역동적인 서사 구조에 담은 걸작 <알제리 전투> 포스터. 영화는 식민지의 밤하늘을 밝혀가는 이름 없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 8년간의 저항과 희생을 역동적인 서사 구조에 담은 걸작 <알제리 전투> 포스터. 영화는 식민지의 밤하늘을 밝혀가는 이름 없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실버스푼
저항의 아이콘으로 되살아 난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한 혁명의 과정에서는 쓰러지는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 혁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있으며 또한 혁명 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체의 이 말은 혁명을 성공시키기도 어렵지만 혁명을 유지하기는 더 어렵고 그보다는 혁명 이후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체의 이 말을 절감케 하는 영화가 있으니 <알제리 전투>입니다. 영화사 100년 100편의 영화 추천작 중 한 편으로, 꼭 봐야 할 영화 100선 중 한 편으로 선정되는 등 최고의 정치영화로 손꼽히는 영화는 알제리민족해방전선(Font de Libration Nationale, FLN)이 구성된 1954년부터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인 1962년 봉기까지 8년간 FLN의 이름 없는 민중들이 거대한 서사를 펼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흑백필름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스트 활동을 하고 전후에는 진보적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이 연출한 <알제리 전투>는 1966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국제영화비평가협회상 및 영국아카데미의 UN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2004년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를 프랑스에서 상영하게 했고,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에서야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을 반대하던 이들로부터는 뜨거운 찬사를 받은 반면 우파 평론가들로부터는 "사적 유물론의 메시지가 당신의 뼛속 깊숙이 스며들 것"이라며 격렬한 비난을 받았던 영화는 마치 5월 광주민중항쟁의 주역들처럼 양아치, 빈민, 부녀자, 노인, 어린이 등 알제리의 '식민지의 밤하늘을 밝힌 이름 없는 수많은 별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식민지의 밤하늘을 밝힌 이름 없는 별들'에 관한 영화 <알제리 전투>

1957년 10월 알제리. FLN의 전사 한 명이 프랑스 군의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 지도자 알리(브레힘 하자디)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맙니다. 은신처를 포위하고 폭탄을 설치한 프랑스 공수부대 매튜 대령(장 마르텡)은 "항복하면 선처를 베풀겠다"며 회유하고, 알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했던 지난 3년을 회상합니다.

 “원하는 사람은 나가도 좋다” “어떻게 하려고?” “난 그를 안 믿어.” 폭사 직전 알리가 전달문 등을 대신 읽어 주던 꼬마 전사와 여성동지 그리고 집주인이자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새신랑과 함께 벽을 뚫고 만든 은신처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원하는 사람은 나가도 좋다” “어떻게 하려고?” “난 그를 안 믿어.” 폭사 직전 알리가 전달문 등을 대신 읽어 주던 꼬마 전사와 여성동지 그리고 집주인이자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새신랑과 함께 벽을 뚫고 만든 은신처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실버스푼

영화는 주요 장면에서 알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만 정작 앵글은 이름 없는 전사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춥니다. 알리 역시 야시장에서 야바위꾼으로 남의 주머니를 터는 양아치 출신의 전과자. 야바위 짓 끝에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간 알리는 단두대 앞에서 의연하게 목이 잘리는 FLN 전사를 목격하고 민족해방투쟁에 투신합니다.

FLN의 도시 게릴라전 속에 프랑스 경찰이 죽자 프랑스는 알제리 주거지역에 폭탄을 터트려 무고한 시민들이 떼죽음을 당합니다. 이에 맞서 FLN도 알제리 여인 세 명을 프랑스 방위구역에 침투시켜 폭탄을 터트리고 쑥대밭을 만듭니다. 결국 프랑스는 본토에서 최정예 10공수부대와 고문과 심리전을 전담하는 정보대를 파견하는 등 FLN 괴멸에 나섭니다.

그리고 다시 1957년 알리의 은신처. 알리는 동지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고 폭사당합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 FLN은 알제리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저항운동을 강화하고, 알리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1962년 7월5일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혁명은 그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영화의 헤드카피는 '세계 영화사상 가장 급진적이고 선동적인 서사극'입니다. 사뭇 비장하고 격정적으로 비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알제리 민중들의 격렬한 투쟁을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하게 응시합니다. 마치 알제리 독립 전쟁이 종전 40년이 지난 1999년까지 프랑스 정부가 전쟁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름 없는 전쟁'으로 치부된 것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FLN 지도부의 소재를 색출하기 위해 프랑스 정보대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한 시민들에게 통닭구이 고문에 전기고문을 가하며 정보를 탐지하고 있다.
FLN 지도부의 소재를 색출하기 위해 프랑스 정보대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한 시민들에게 통닭구이 고문에 전기고문을 가하며 정보를 탐지하고 있다. 실버스푼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5개월째인 2003년 8월 워싱턴 펜타곤에서 상영했다는 점입니다. 펜타곤의 특수작전국 장교들이 <알제리 전투>를 본 까닭은 이라크 전이 수렁에 빠지자 반미 이슬람세력들을 분쇄하기 위한 전략적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알제리 저항요원들을 붙잡아 전기고문, 물고문, 불고문(피의자를 발가벗겨 가스불로 지지는 고문), 꽁꽁 묶인 사람을 공중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 등 온갖 고문 끝에 비밀조직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이 학대를 당한 것이 과연 이것과 무관할까요?

영화에서 1954년 11월1일 만성절 봉기를 시작으로 격화되는 알제리 해방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제10공수사단을 파견하면서 사단장 카를 장군에게 테러와 치안을 위한 전권을 부여하고, 정부 훈령에 따라 10공수가 FNL을 분쇄하고 테러범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소위 알제리 전투를 개시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불법 처형과 고문이 자행되고, 이러한 프랑스 군의 잔악행위가 국내외에서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프랑스 제4공화정이 끝나고 제5공화정이 들어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을 '질서유지작전'으로 명명하며 침묵과 망각에 늪에서 허우적거립니다.

반면 민족해방의 성전이며 건국의 초석이었던 FLN은 내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독립 후 국민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인 정치체계를 수립하는 한편 프랑스 등 제국주의에 의해 초토화된 국토에 풀뿌리 경제의 씨앗을 심었어야 함에도 FLN 지도부는 권력투쟁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와 함께 식민지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힌 이름 없는 별들의 '희망과 꿈' 역시 새로운 어둠 속으로 묻히기 시작합니다. 

알제리는 외교적으로 비동맹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으나 지도부가 친위 쿠데타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오명을 덜어내기 위해 폐쇄적인 이슬람식 사회주의 정책을 고집하며, 대외 의존적 경제구조는 갈수록 심화됩니다. 여기에 만성적인 정정불안으로 인한 군경의 검문검색으로 외국으로부터 '여행주의 지역'으로 낙인찍힙니다. 알제리의 이러한 모습은 앞서 체 게바라가 지적한 것처럼 혁명은 그 정신을 유지시키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셈입니다.

민주와 진보와 개혁도 유지시키기가 더 어렵다

이슬람 저항 세력이 서방에 맞서 이긴 몇 안 되는 사례로 꼽히는 알제리가 1830년 프랑스의 침략으로부터 독립을 하기까지는 132년이 걸렸습니다. FLN을 시점으로 잡으면 8년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알제리의 역사는 그 시간대와 질곡과 상처와 고통이 우리네 역사와 흡사합니다. 

 프랑스 정보경찰이 알제리 주거지역에 폭탄을 터트려 수많은 시민들이 죽자 FLN은 자원한 부녀자들에게 프랑스 여성으로 변장하도록 하고 맞불 폭탄공격을 감행한다.
프랑스 정보경찰이 알제리 주거지역에 폭탄을 터트려 수많은 시민들이 죽자 FLN은 자원한 부녀자들에게 프랑스 여성으로 변장하도록 하고 맞불 폭탄공격을 감행한다. 실버스푼

영화 <알제리 전투>는 비단 알제리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의 현장에서 이름 없는 별들로 스러져간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5월 광주와 6월 시민항쟁의 현장에서 일궈낸 민주주의와 참여가 김대중-노무현으로 귀결되었고, 그들이 떠난 뒤 우리 곁에 남은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있는 시민의 힘' 또한 간고한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독재와 그 아류가 짙게 드리운 밤하늘을 환히 밝힌 이름 없는 별들이 남긴 소중한 선물이자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에 다름 아닙니다.

또한 <알제리 전투>는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에서부터 해방전후와 4.19와 5.18과 6.10과 그리고 촛불로 면면히 이어져 온 '독립과 통일과 민주주의와 참여와 소통을 향한 100년의 역사'와 많은 부분 교차합니다. FLN의 이름 없는 별들이 끈질기게 펼치는 게릴라 투쟁이 그렇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남녀노소 시민들의 시위가 그렇고, 쫓고 쫓기는 시가전에서 고립된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프랑스 군경의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가 그렇고, 저항군을 전기고문과 물고문으로 파괴시키는 게 그렇고, '프랑스가 조국'이라며 끊임없이 회유하고 세뇌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알제리 전쟁이 독립 후 '사람사는 세상'을 건설하면서 휘청거렸듯이, 한국사회 역시 5월 광주와 6월 항쟁의 자산인 민주와 진보와 개혁의 푯대가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MB 정부와 조중동에 의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굳이 체의 지적을 빗대어 말한다면 진보와 개혁의 민주주의는 이뤄내기도 어렵지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푯대로 뿌리박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희망'은 패배와 허무의 짙은 안개를 헤치고 솟아오른다

그래서일까요? 국권침탈 100년에 4.19 민주혁명 40년 그리고 5.18 광주민중항쟁 30년과 6.15 남북공동선언 10년이 맞물리는 2010년 새해에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전쟁 60년과 전태일 열사 분신 40년까지 얹힌 2010년은 역사읽기와 세상읽기에서 인식과 발상의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61년 12월11일부터 21일까지 11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 괴성과 함성으로 하나가 된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군의 탱크와 총에 맞서 독립과 긍지와 자유를 외치며 투쟁에 나섰다.
1961년 12월11일부터 21일까지 11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 괴성과 함성으로 하나가 된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군의 탱크와 총에 맞서 독립과 긍지와 자유를 외치며 투쟁에 나섰다. 실버스푼

그리고, 그 답의 단초는, 영화 속 엔딩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앞서 알리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한 뒤 카를 장군은 매튜 대령에게 "이제 편충의 머리가 없어졌지. 매튜, 만족하는가? 이제 FLN은 없어졌어. 저들은 원래 능력부족이었어. 130년 동안 잘 지배했는데 왜 지속 못하겠어"라고 말합니다.     

마쉬와 매튜로 대변되는 폭력과 억압에 대해 영화는 "이 영화가 정치영화가 아니었다면 음악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격정적인 음악과 함께 낮밤을 가리지 않고 도시 전체를 뒤덮는 정체불명의 괴성과 함성 속에 1960년 12월 11일을 엽니다. 도시를 감싼 침묵의 안개를 헤치고 수십, 수만 명의 알제리인들이 골목과 골목에서 거리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12월 11일부터 21일까지 11일간 지속된 이 항쟁에서 곤봉과 총과 탱크로 중무장한 프랑스 공수부대의 무차별적인 발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쓰러지는 시민들 위를 또 다른 무리의 시민들이 넘고 넘는 장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알제리 전투>는 칠흑 같은 패배와 허무와 절망의 어둠을 뚫고 희망의 신 새벽을 길어 올리는 희망의 메시지로 엔딩 크레딧을 끌어 올립니다.

"알제리에 독립을! 긍지를! 자유를 달라!"

알제리 전투 희망 진보와 개혁 알제리민족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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