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그들이 몸을 푼다, 긴장하라
눈도장 '콱!' 찍어둘만한 축구 블루칩

[K-리그 분석] '슈퍼 서브' 꿈꾸는 후보 선수들

09.04.30 14:31최종업데이트09.04.30 14:31
원고료로 응원
노르웨이 출신의 골잡이 올레 군나르 솔샤르.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군 감독을 맡고 있는 그에게는 인상적인 두 개의 별명이 있다. '동안의 암살자'와 '슈퍼 서브'다. 한 마디로 교체 선수로 들어와 골을 넣는 감각이 탁월하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그 솔샤르 감독이 길러낸 이탈리아 출신의 어린 골잡이 페데리코 마케다(18)가 화제를 일으켰다. 지난 5일 안방 올드 트래포드에서 애스턴 빌라를 상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방문 팀 골잡이 아그본라호르의 역전골에 크게 흔들렸지만 호날두의 동점골에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2-2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았던 종료 직전 뜻밖의 인물이 극적인 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었다. 그가 바로 마케다였다.

상대 벌칙 구역 안에서 침착하게 공을 잡아놓는 동작도, 기막힌 오른발 돌려차기로 구석을 노리는 마무리도 완벽했다. '슈퍼 서브 솔샤르'의 현신이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6일 뒤 마케다는 선덜랜드 방문 경기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75분에 베르바토프 대신 들어간 그는 딱 1분 만에 마이클 캐릭의 오른발 슛이 굴러지나가는 것에 왼발을 내밀어 거짓말 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다. 우연이라고 넘기기에 '두 경기 연속 교체 선수 결승골' 사실은 너무도 또렷했다.

[인천 Utd. 강수일] '제2의 이근호' 꿈이 아니다

 작년 10월 23일 포항과의 2군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기뻐하고 있는 인천 FW 강수일.
작년 10월 23일 포항과의 2군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기뻐하고 있는 인천 FW 강수일.인천 유나이티드 FC


축구 경기에서 후보 선수였다가 바꿔 들어와서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것, 특히 골을 넣어서 '슈퍼 서브'라는 별명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경기장에 찾아가 그들의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 더욱 그렇다. 프리미어리그에만 슈퍼 서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K-리그에도 '솔샤르'의 명성을 꿈꾸는 슈퍼 서브들이 날마다 축구화 끈을 조이며 기다린다.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축구 최고의 골잡이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이근호(주빌로 이와타)도 애초에 인천 유나이티드 FC 2군 전용 선수였다. '리틀 김도훈'이라는 별명까지 붙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2005-2006 두 시즌 동안 인천의 1군 경기에는 여덟 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기회가 적었기에 공격 포인트도 물론 없었다. 그리고 이근호는 2006년에 인천 유나이티드 2군팀에게 첫 우승의 영광을 안기고 대구 FC로 떠났다.

아무리 2006 K-리그 2군 MVP 출신이었지만, 대구 FC에선 첫 시즌부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였다. 27경기 10득점이라는 놀라운 활약을 바탕으로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오가는 귀한 몸이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J리그도 모자라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로의 이적설까지 나올 정도다.

여기 '제2의 이근호'를 꿈꾸고 있는 또 한 명의 슈퍼 서브가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탄력 넘치는 골잡이 강수일이 그 주인공이다. 2007년부터 1군 리그에 겨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던 강수일은 지난 26일 낮 창원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09 K-리그 7라운드 경남 FC와의 방문 경기에서 53분 교체 선수로 나와 30분 만에 팀의 쐐기골이자 개인으로서는 기념비적인 데뷔골을 오른발 돌려차기로 터뜨렸다.

2007년 10월 14일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포항 스틸러스와의 방문 경기에 역시 교체로 나가 첫 도움(89분, 득점-이동원)을 기록한 지 18개월만의 공격 포인트였다. 물론 교체 선수이기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수일은 1군 경기에 겨우 아홉 번 뛰었고 그 중에 일곱 번을 옆줄 밖에서 기다리다가 기회를 잡았다.

지난 해 인천 유나이티드 FC 2군팀의 두 번째 우승을 이끌어내며 MVP로 인정받은 강수일은 올해 페트코비치 감독을 만나 유니폼 번호 9번을 배정받을 정도로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보통 그 팀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9번을 단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수걸이 골까지 터뜨렸기 때문에 이제 더 높이 날아오르는 일만 남았다.

[강원 FC 윤준하] 그가 교체된 경기,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

 윤준하를 내세워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강원 FC 누리집(www.gangwon-fc.com) 첫 화면.
윤준하를 내세워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강원 FC 누리집(www.gangwon-fc.com) 첫 화면.강원 FC

2009 K-리그 초반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은 단연 강원 FC의 골잡이 윤준하다. 그는 7라운드 광주 상무와의 방문 경기(4월 26일)에도 김영후와의 단짝 호흡을 자랑하며 골(31분)을 터뜨렸다. 김명중(광주)·정성훈(부산)·최태욱(전북)과 함께 득점 순위 상위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비록 경기는 1-3로 역전패 했다).

컵 대회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모두 여덟 번 K-리그를 경험하며 윤준하는 세 차례를 선발로 나왔고 다섯 차례를 옆줄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중에 들어갔다. 그가 처음부터 뛴 경기는 1승 2패(1득점)의 결과가 나왔고 나중에 들어간 경기는 2승 2무 1패(3득점 1도움)의 결과가 나왔다.

이 수치로만 봤을 때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나중에 들어간 윤준하의 활약를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실로 놀랍다. 팀도 그렇고 자신에게도 잊을 수 없었던 2009 K-리그 첫 경험(3월 8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안방 경기 결승골부터 시작하여 세 경기 연속골(3월 14일 vs FC 서울, 86분 결승골 / 3월 21일 vs 부산, 90+1분 동점골)의 통렬한 주인공이 되었다.

아울러 최순호 감독은 윤준하 말고도 '교체 신공'이라 일컬을 정도로 옆줄 밖 대기 선수들을 잘 활용하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09 K-리그 컵 대회 A조 대전 시티즌과의 안방 경기(3-0 승)에서 최순호 감독은 후반전 세 차례의 선수 교체(57분→정경호, 77분→박종진, 85분→권순형)를 이용하여 두 골(78분-득점 정경호,도움 박종진 / 86분-득점 정경호,도움-권순형)이나 더 보태는 놀라운 예지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점점 무서워지는 '후보 선수'들

교체 선수가 나중에 들어와 골을 터뜨린 기록(2009년 기준)만 놓고 봐도 흥미로운 통계 자료가 만들어진다. 7라운드가 끝난 지금까지 정규리그 49경기가 열렸고 118골(경기당 2.41골)이 나왔는데 이 중에서 '18개'가 교체 선수에 의한 득점(전체 득점 대비 15.25%)이었다. 이에 비해 컵 대회에서는 15경기를 치르는 동안 40골(경기당 2.67골)이 나왔는데 바꿔 들어온 선수가 터뜨린 골은 단 4골(전체 득점 대비 10%)에 그쳤다.

앞서 언급한 강원 FC의 윤준하(3득점)가 가장 많이 이름을 올려 '슈퍼 서브'로서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고 같은 팀의 정경호는 한 경기(4월 22일 vs 대전)에서 두 골이나 터뜨리는 유일한 기록을 남겼다.

컵 대회를 포함하여 바꿔 들여보낸 선수들이 터뜨린 22개의 골 가운데 강원 FC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두 선수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들이 터뜨린 '다섯 골'은 아예 하나도 없는 '포항, 울산'에 비하면 엄청난 것이다.

이밖에도 나중에 들어가서 통산 두 골을 터뜨린 선수가 또 있었는데 경남 FC 골잡이 인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골은 두 경기 모두 특이하게 똑같은 시간(66분)에 터졌다. 상대 수비수들이 정말로 주의해야 할 시간대가 된 셈이다.

라운드로도 큰 편차를 보였는데 공교롭게도 3월 7일과 8일 이틀간에 걸쳐 벌어진 정규리그 첫 라운드에서 가장 많은 교체 선수의 골(6득점)이 나왔고, 가장 최근에 열린 7라운드(4월 25~26일)에서는 일곱 경기 중 다섯 경기에서 각각 한 골씩 터져서 옆줄 밖의 그들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준비했는가를 말해주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경기 전 몸 풀기 과정부터 후보 문지기 한 명을 포함한 여섯 명의 대기 선수들은 이른바 '베스트 일레븐'과 분리되어 움직인다. 운동장 한쪽 구석에 둥글게 서서 원 터치 패스 연습이나 스트레칭을 실시한다. 슛 연습도 베스트 일레븐이 준비 운동을 다 끝내고 들어간 뒤 잠깐이나마 가능한 일이다.

옆줄 밖 그들의 움직임이 정말로 주목을 받을 때는 관중석이 어수선해지는 하프 타임이다. 감독의 호출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몸을 만들어야 한다. 피지컬 코치의 지시로 본격적으로 땀을 흘린다. 후반전 시작 후 그들은 신고 있는 축구화 끈을 더욱 동여맨다. 그리고 관중들의 관심이 거의 미치지 않는 구석으로 가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몸 풀기를 반복한다.

긴 기다림 끝에 그라운드에 들어가도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눈에 띠는 활약을 해야 비로소 '슈퍼 서브'란 수식어를 얻는다.

그 여섯 명 중에 분명히 세 명은 운동장으로 들어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허탈한 기다림의 시간을 끝내야 한다. 본 운동은 시작도 못해 보고 100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준비 운동만 한 것이다. 이렇게 세 번째 교체 선수로도 자신이 지목이 되지 않으면 곧바로 벤치로 돌아와 엉덩이를 더욱 깊숙하게 들이밀며 앉는다.

관중석에서 이들의 허탈함을 멀리서나마 느끼며 황지우님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떠올린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 2009 K-리그(정규리그) 교체 선수 득점 기록
2009. 3. 7 수원 2-3 포항(90분,수원 조용태)
2009. 3. 7 전남 1-6 FC 서울(90분,전남 이천수 / 61분,FC서울 이승렬)
2009. 3. 8 강원 1-0 제주(28분,강원 윤준하)
2009. 3. 8 경남 1-1 전북(66분,경남 인디오 / 84분,전북 임상협)
2009. 3. 14 FC서울 1-2 강원(86분,강원 윤준하)
2009. 3. 15 포항 1-1 경남(66분,경남 인디오)
2009. 3. 21 강원 1-1 부산(90+1분,강원 윤준하)
2009. 3. 22 경남 1-대전(80분,대전 한재웅)
2009. 4. 4 부산 2-3 광주(79분,광주 강진규)
2009. 4. 5 제주 1-1 경남(33분,제주 심영성)
2009. 4. 12 대구 2-1 제주(83분,대구 방대종)
2009. 4. 25 부산 1-0 대구(65분,부산 호물로)
2009. 4. 26 수원 1-4 전남(77분,수원 김대의)
2009. 4. 26 성남 2-0 제주(79분,성남 라돈치치)
2009. 4. 26 울산 1-2 FC 서울(82분,FC서울 데얀)
2009. 4. 26 경남 0-2 인천(83분,인천 강수일)

※ 2009 K-리그 컵대회 교체 선수 득점 기록

2009. 3. 25 전남 3-2 대구(63분,대구 포포비치)
2009. 4. 8 경남 2-2 전북(71분,전북 이동국)
2009. 4. 22 강원 3-0 대전(78분,86분,강원 정경호)

강수일 윤준하 솔샤르 슈퍼 서브 K-리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및 라켓 스포츠 기사,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