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김태식
KBC
| 김태식 |
57년, 묵호 출생 77년 프로데뷔 및 최우수 신인왕 80년 WBA플라이급 챔피언 (한국 통산 9대 챔피언) 20전 17승(13KO) 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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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가 WBC플라이급에 등극한 지 반년 뒤였던 1980년 2월17일 장충체육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온 나라가 어수선하던 정점의 시기였다. 김태식에게는 아마추어 전적 대신 그저 길거리 싸움꾼 경력이 기본기였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패한 이후 12연승을 내달으며 최우수신인왕에 올랐고, 9연속 KO승으로 루이스 이바라(파나마)에게 도전을 한다. 챔피언은 키가 큰데다가 왼손잡이여서 김태식 같은 인파이터가 섣불리 들어가다가는 카운터에 무너질 수 있으니 신중히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경험이 적고 파이팅 일변도인 김태식에게 승산이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태식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비웃듯 공세를 퍼붓는다. 챔피언은 수비를 위해 글러브를 바짝 올려 막았지만, 김태식의 주먹은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바짝 올린 가드도 소용 없었다. 손을 뻗어 카운터를 날리기는커녕 숨쉴 틈조차 없었다. 2R에만 무려 211발의 주먹세례를 퍼부으며 통쾌한 KO승을 거둔 것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복싱계에 파란이 일었다. AP통신은 '무서운 새끼 호랑이', AFP에선 '작은 거인'으로 대서 특필했다.
하지만, 김태식 챔피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타오르지 못했다. 불운의 연속이었다. 1차 방어전에서는 강타자 아르넬 아로살(필리핀)을 맞아 경기 중 상대의 주먹에 맞아 턱이 깨지는 부상을 입고서 15R 판정승을 했다.
원정 시합으로 치른 2차 방어에선 피터 마테블라(남아공)에게 2:1로 지고 말았다. 점수가 말해주듯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원정 경기의 불리함으로 타이틀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안토니오 아벨라(멕시코)를 장충체육관으로 불러들여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2회 KO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더더욱 안타까웠다. 1982년 9월 로베르토 라미레즈(멕시코)에게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경기 후 구토와 함께 실신하며 뇌수술을 받는다. 그걸로 그의 복싱인생은 끝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복싱흥행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무의미, 무책임한 경기한국 프로복싱을 통틀어 가장 아쉽고 흥미로웠을 라이벌전을 뽑으라면 유명우vs장정구와 김태식vs박찬희 카드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김태식과 박찬희는 잡초처럼 자란 헝그리 복서와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 복서의 대결이자, 역사상 가장 극명한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런데,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지천명이라는 50대에 접어든 이들이 링에 오르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강서구 88체육관에서 열리는 IFBA 스트로급 여자경기에 앞서 시범경기 3R 시합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있어서는 안될 시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지 복싱을 그만둔 지 30여 년이 지난 50대 초로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 링에 올라 보여줄 것이라곤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뿐이다. 시범경기로 그저 두 사람이 링에 서는 것이라면 팬들의 궁금증을 풀기엔 어림도 없는 것이고, 50대가 돼서야 진검 승부를 겨룬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1958년생으로 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미국의 토마스 헌즈라는 선수가 있다. 레너드, 두란, 해글러와 함께 중량급 4대 천왕으로 복싱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추억의 복서지만, 놀랍게도 그는 1977년 데뷔 이래 매년 1 경기 이상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06년에 한 경기로 쉐논 랜버드를 10회 TKO로 이겼다. (통산 61승 48KO 5패 1무). 이런 상태라면 몰라도 운동을 중단한 지 30여 년 만인 두 사람이 링에 올라 라이벌전을 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고 최요삼 장례식장에서 본인의 뇌수술 당시를 회고하는 김태식이충섭
시합을 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김태식씨의 건강이다. 그는 마지막 경기 후 뇌수술을 받고 은퇴하고 말았다. 아무리 시범경기로 슬슬 한다고 해도 만에 하나 뇌 손상을 입는다면 누가 책임질것인가?
복싱 흥행이라는 명분도 좋지만, 복싱 흥행이라는 허울로 여과 없이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이벤트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후보로 오를 이들이 초로의 나이에 링에 올라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이라도 KBC는 시합을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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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