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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두사람의 싸움 좀 말려주세요

김태식 - 박찬희의 의미없는 라이벌전

09.02.27 11:50최종업데이트09.02.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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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거미 박찬희
무당거미 박찬희KBC
박찬희
57년, 대구 출생
74년 고2때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
76년 태국 킹스컵대회 우승 및 대회 MVP
79년 WBC플라이급 챔피언 (한국 통산 8대 챔피언)
23전 17승 (6KO) 4패 2무

1979년 3월 18일 부산 구덕체육관에 모인 8천여 관중들은 무당의 굿판에 넋이 나간 듯 했다. '미스터 퍼펙트' 미구엘 칸토(멕시코)의 15차 방어전에 나선 박찬희가 마치 신들린 듯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9번을 원정경기에서 이긴 바 있는 '링의 대학교수' 칸토에도전장을 내민 박찬희는 프로에 데뷔한 지 불과 1년 6개월이었다. 또 10전(9승 5KO 1무)짜리 선수였으니 챔피언이 방어전을 치른 것보다도 적은 경력이었다.

하지만, 박찬희는 1회부터 경기를 주도했다. 현란한 스텝으로 먼저 때렸고 상대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복부를 때리는 듯하면서 안면을 때렸고, 안면을 노리는 듯 하다가는 옆구리를 찍었다. '링의 대학교수'라고 불리던 챔피언은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듯 했지만 침착하게 패턴을 읽으려는 모습이었다.

초반에 반짝하다가 챔피언의 관록에 제풀에 지치려니 하는 우려 때문에 관중들은 더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박찬희의 스피드는 변함이 없었고 경기 진행에 따라 바뀌는 전략은 감탄을 자아냈다. 판정으로 승부를 내도 불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박찬희는 10R 이후에서는 매 라운드 종료 30초 전부터 불꽃 같은 공격을 퍼붓다가 라운드를 마치는 전법을 구사했다. 10전짜리 선수로는 믿기지 않는 기량에 영리한 전략까지 갖춘 도전자에 링의 대학교수는 고개를 떨구고 강단을 내려와야만 했다.

그렇다. 박찬희는 고2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 태국 킹스컵대회 MVR 등 125승 2패라는 아마추어 전적을 갖춘 엘리트 복서였다. 챔피언에 등극해서도 전 WBA챔피언 구띠 에스파다스에게 1회 다운을 당하고도 역전KO승을 거두는 등 최초로 5차 방어에 성공하면서 롱런을 예약한 듯 했다.

그러나, 6차 방어에서 일본의 오쿠마 쇼지에게 9R TKO로 패하고 만다. 입장이 바뀌어서 도전자로 2번이나 더 대결했지만 모두 패했다. 오쿠마 쇼지에게 타이틀을 빼앗아 롱런하던 미구엘 칸토를 잡은 박찬희였지만, 오쿠마에게 3연패를 하면서 박찬희는 25살에 은퇴를 하고 만다.

 작은 거인 김태식
작은 거인 김태식KBC
김태식
57년, 묵호 출생
77년 프로데뷔 및 최우수 신인왕
80년 WBA플라이급 챔피언 (한국 통산 9대 챔피언)
20전 17승(13KO) 3패

박찬희가 WBC플라이급에 등극한 지 반년 뒤였던 1980년 2월17일 장충체육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뒤 온 나라가 어수선하던 정점의 시기였다. 김태식에게는 아마추어 전적 대신 그저 길거리 싸움꾼 경력이 기본기였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패한 이후 12연승을 내달으며 최우수신인왕에 올랐고, 9연속 KO승으로 루이스 이바라(파나마)에게 도전을 한다. 챔피언은 키가 큰데다가 왼손잡이여서 김태식 같은 인파이터가 섣불리 들어가다가는 카운터에 무너질 수 있으니 신중히 경기를 풀어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경험이 적고 파이팅 일변도인 김태식에게 승산이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태식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비웃듯 공세를 퍼붓는다. 챔피언은 수비를 위해 글러브를 바짝 올려 막았지만, 김태식의 주먹은 쉴새 없이 날아들었다. 바짝 올린 가드도 소용 없었다. 손을 뻗어 카운터를 날리기는커녕 숨쉴 틈조차 없었다. 2R에만 무려 211발의 주먹세례를 퍼부으며 통쾌한 KO승을 거둔 것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복싱계에 파란이 일었다. AP통신은 '무서운 새끼 호랑이', AFP에선 '작은 거인'으로 대서 특필했다.

하지만, 김태식 챔피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타오르지 못했다. 불운의 연속이었다. 1차 방어전에서는 강타자 아르넬 아로살(필리핀)을 맞아 경기 중 상대의 주먹에 맞아 턱이 깨지는 부상을 입고서 15R 판정승을 했다.

원정 시합으로 치른 2차 방어에선 피터 마테블라(남아공)에게 2:1로 지고 말았다. 점수가 말해주듯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원정 경기의 불리함으로 타이틀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안토니오 아벨라(멕시코)를 장충체육관으로 불러들여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2회 KO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더더욱 안타까웠다. 1982년 9월 로베르토 라미레즈(멕시코)에게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경기 후 구토와 함께 실신하며 뇌수술을 받는다. 그걸로 그의 복싱인생은 끝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 여섯이었다.

복싱흥행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을 무의미, 무책임한 경기

한국 프로복싱을 통틀어 가장 아쉽고 흥미로웠을 라이벌전을 뽑으라면 유명우vs장정구와 김태식vs박찬희 카드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김태식과 박찬희는 잡초처럼 자란 헝그리 복서와 국가대표 출신의 엘리트 복서의 대결이자, 역사상 가장 극명한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런데,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지천명이라는 50대에 접어든 이들이 링에 오르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강서구 88체육관에서 열리는 IFBA 스트로급 여자경기에 앞서 시범경기 3R 시합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있어서는 안될 시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지 복싱을 그만둔 지 30여 년이 지난 50대 초로의 배 나온 아저씨들이 링에 올라 보여줄 것이라곤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뿐이다. 시범경기로 그저 두 사람이 링에 서는 것이라면 팬들의 궁금증을 풀기엔 어림도 없는 것이고, 50대가 돼서야 진검 승부를 겨룬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1958년생으로 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미국의 토마스 헌즈라는 선수가 있다. 레너드, 두란, 해글러와 함께 중량급 4대 천왕으로 복싱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추억의 복서지만, 놀랍게도 그는 1977년 데뷔 이래 매년 1 경기 이상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 경기는 2006년에 한 경기로 쉐논 랜버드를 10회 TKO로 이겼다. (통산 61승 48KO 5패 1무). 이런 상태라면 몰라도 운동을 중단한 지 30여 년 만인 두 사람이 링에 올라 라이벌전을 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고 최요삼 장례식장에서 본인의 뇌수술 당시를 회고하는 김태식
고 최요삼 장례식장에서 본인의 뇌수술 당시를 회고하는 김태식이충섭

시합을 해서는 안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김태식씨의 건강이다. 그는 마지막 경기 후 뇌수술을 받고 은퇴하고 말았다. 아무리 시범경기로 슬슬 한다고 해도 만에 하나 뇌 손상을 입는다면 누가 책임질것인가?

복싱 흥행이라는 명분도 좋지만, 복싱 흥행이라는 허울로 여과 없이 무책임하고 무의미한 이벤트가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후보로 오를 이들이 초로의 나이에 링에 올라서 광대 노릇을 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금이라도 KBC는 시합을 철회하기 바란다.

김태식 박찬희 토마스헌스 KBC 한국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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