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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MB식 녹색성장론자들이 봐야 할 영화 <워낭소리>

09.01.31 12:15최종업데이트09.01.3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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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개봉관 확대

 

영화 <워낭소리>의 포스터 이제는 낯선 풍경
영화 <워낭소리>의 포스터이제는 낯선 풍경스튜디오느림보

기쁜 소식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개봉관이 서울 중심의 7개 극장에서 전국 20개 극장으로 확대되었다니. 무엇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영화를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또 그만큼 위 영화의 진면목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매우 기쁘다.

 

항상 좋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혹한 자본의 논리이다.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스럽기까지 한데 단지 자본의 문제로 기회를 잡지 못해 시장에서 사라져야 하는 그들의 얄궂은 운명을 보고 있노라면,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항상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인간관계까지 모두 시장의 논리로 치환하려는 이들의 무식함과 폭력성이란.

 

각설하고 영화 <워낭소리>는 다행히 현재 관객들의 빠른 입소문을 타고 선전 중이다. 이 정도의 호응이라면 아마 개봉관은 더 늘 것이고 관객 수 역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 또한 자본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계기로 독립영화의 활성화를 예측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어쨌든 <워낭소리>의 선전이 좋은 소식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자본이 모든 걸 독과점해가는 현 시장에서 <워낭소리>와 같은 독립영화의 흥행은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는 절박한 신호가 될 것이며, 그만큼 사회는 획일성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한 단계 진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와 농부의 이야기

 

영화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따라서 모든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듯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성이다. 사실성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힘이며, 그 존재 이유이다. 그러나 그 사실성은 사실 양날의 칼에 가깝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펼쳐진 생생한 현실을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각색 없이 펼쳐진 일상의 나열을 보며 지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관객의 호응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영화 <워낭소리>는 그 줄타기를 잘 하고 있는 듯하다. 늙은 소와 늙은 농부와의 관계를 다루어 자못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는 중간 중간 할머니의 투정부림을 섞어 놓아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였으며, 역시 조금 좀이 쑤시다 싶을 때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짧은 러닝타임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치명적인 한계인 동시에 매력일지도 모른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현실 속의 일상들을 생생한 모습으로 전달해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감독은 그 짧은 러닝타임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늙은 농부와 늙은 소 Old Partner
늙은 농부와 늙은 소Old Partner스튜디오느림보

 

표면적으로 영화 <워낭소리>는 늙은 소와 늙은 농부의 이야기다. 보통 소들보다 2배 넘게 살아 온 마흔 살의 소와 여든이 다 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농부의 이야기. 그들은 소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으며, 그만큼 두터운 정을 쌓아왔다. 영화의 영문제목 그대로 ‘Old Partner’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고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농사를 짓겠다며 들로 나서는 할아버지. 농사가 천직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 온 할아버지에게 소는 그가 그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며 또한 든든한 동반자이다.

 

따라서 소는 할아버지에게 존립 근거인 동시에 존재의 증거다. 농사가 할아버지의 생의 증거라면, 소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는 소가 자식보다 낫다며, 소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거라고 자주 읊조리는데 그것은 단지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소에 대한 정 때문만은 아니다. 정년퇴직을 하면 갑자기 폭삭 늙어버리는 회사원 같이, 할아버지 역시 농사를 그만 두면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삶의 이유 할어버지에게 소는 생의 증거이다
삶의 이유할어버지에게 소는 생의 증거이다스튜디오느림보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소 소 역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그렇게 찾아가는 듯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소소 역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그렇게 찾아가는 듯스튜디오느림보

 

상황이 이와 같으니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애정이 어찌 각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이름은 없지만 소는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소로서 의미를 지니며, 할머니는 옆에서 그 의미를 알고 있기에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편이 죽으면 나 역시 살 수 있겠느냐는 늙은 아내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투정은 웃기고 정겹다. 남편 잘못 만나 평생 고생한다는 아내의 투정에는 남편과 소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그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늙어서까지 고생을 시키는 남편 옆에서 걱정해주고 잔소리하고 앓는 소리 하는 것이 이 할머니의 낙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동반자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두 노인
또 다른 동반자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두 노인스튜디오느림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묻는다

 

그러나 영화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를 단순히 늙은 소와 늙은 농부의 이야기로 한정시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영화는 표피적으로 그 둘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소와 촌로의 존재가 분명 우리에게 지나온 세월을, 그리고 점점 잃어가고 있는 우리네의 삶의 방식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의 현재는 곧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다.

 

영화는 결코 거창하게 생태주의를 외치지 않는다. 다만 경북 봉화의 아주 구석진 마을을 관조할 따름이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회색도시에 길들여진 우리는 도시에서의 삶만을 상상하지만, 영화는 깊고 깊은 심신 산골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웃고 울고 기쁘고 슬퍼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과연 도시의 우리들이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닭장 같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아파트에서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움켜진 채 옴짝달싹도 못하는 우리네의 삶이, 넓은 들판에서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사는 이들의 삶보다 윤택한 것일까?

 

소꼴 베기 과거 허드렛일의 진화
소꼴 베기과거 허드렛일의 진화스튜디오느림보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소의 먹이를 위해 농약을 치지 않는다. 유기농이라는 상품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생명을 위함이요,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함이다. 과거에는 허드렛일에 불과했던 소꼴 베기가 현대에는 어느덧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 소가 친숙했던 것은 결코 쇠고기가 맛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원천이었으며 가장 든든한 동반자였다. 뼈 빠지게 일을 한 뒤, 죽고 나서도 사골을 남겨 그의 동반자에게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했던 존재.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그 우직한 소를 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을 것이며 그 말 못 하는 미물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웠을 것이다.

 

기계 대신 소를 이용하고, 농약 대신 낫을 이용하고. 사료 대신 죽을 쑤고. 영화 속 할아버지가 고집하는 삶의 방식은 많은 식자들이 그토록 떠드는 생태주의의 모범이다. 소비의 극단이 몰고 온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많은 이들이 녹색을 떠들지만 정작 우리의 롤 모델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조금씩 질식되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소를 이용한 농사짓기 아주 오래된 삶의 방법
소를 이용한 농사짓기아주 오래된 삶의 방법스튜디오느림보

 

다시금 영화의 영문제목을 떠올린다. 'Old Partner' 어쩌면 그 제목이 뜻하는 바는 촌로의 늙은 동반자 소뿐만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그 모든 것들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현대 문명의 이기에 밀려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최근에 와서 그 가치의 소중함을 재조명 받고 있는 우리의 오래된 동반자들. 결국 녹색주의나 생태주의란 것은 그 오래된 동반자들을 이용하여 우리네 삶을 다시 구획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같은 삶 속에서 가치를 찾고 따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 서 있다. 물론 그 위기의 근본 원인은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에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무늬만 녹색을 외치며 역주행하고 있다. 녹색의 이름으로 전국의 산천에다 삽질을 하며, 녹색의 이름으로 끊임없는 성장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와 같은 MB식 녹색성장론 가지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소하면 쇠고기밖에 몰라 값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떠올리는 이들이 진정 생태주의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녹색이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구획할 것인지,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좀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기를.

 

생태주의의 고찰 생태주의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생태주의의 고찰생태주의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스튜디오느림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1.31 12:1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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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