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호주오픈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5시간 혈투 끝에 페르난도 베르다스코를 물리치고 코트 바닥에 드러누운 라파엘 나달australianopen
30일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준결승에서 맞대결을 펼친 라파엘 나달과 페르난도 베르다스코는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스페인에서 온 청년들이라는 것과, 왼손잡이라는 것이다.
세계랭킹으로만 보면 1위 나달이 15위 베르다스코를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하지만 랭킹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않는다.
16강에서 '영국의 희망' 앤디 머레이를, 8강에서 지난 대회 준우승자 프랑스의 조 윌프레드 송가를 연거푸 물리치고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준결승 무대를 밟은 베르다스코에게는 자신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5시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낸 두 남자
이날 승부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1세트부터 시작되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6-6 동점으로 타이 브레이크가 되자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베르다스코가 먼저 연속으로 두 점을 올리며 1세트를 따냈다.
2세트에서도 서로의 서브게임을 철저히 따내며 접전을 이어갔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명품서브'를 자랑하는 나달이었지만 베르다스코의 서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런 와중에 1세트를 빼앗긴 뒤 집중력을 높인 나달이 5-4로 앞선 가운데 베르다스코의 서브게임을 따내며 6-4로 2세트를 가져왔고, 또 다시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 끝에 3세트마저 승리하며 결승 진출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베르다스코는 쉽게 물러날 남자가 아니었다. 4세트에서 나달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눈치 챈 베르다스코는 코트의 양쪽 구석으로 공을 집중시키며 나달을 많이 움직이게 했고 결국 또 다시 타이 브레이크 끝에 4세트를 따냈다.
시계는 어느새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제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심판들도, 관중들도 모두 지쳐버렸다. 특히 나달과 베르다스코는 휴식시간에 바나나와 초콜릿 등을 챙겨먹으며 허기를 달래야할 정도였다.
모두가 지친 가운데 시작된 마지막 5세트에서도 승부의 추는 좀처럼 기울지 않았다. 하지만 '테니스의 신'은 나달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4-5로 뒤져있던 베르다스코가 더플 폴트를 범하며 자멸하고 만 것이다.
5시간이 넘는 치열한 승부가 끝이 나자 나달은 환호할 힘마저 남아있지 않았던지 곧바로 코트 바닥에 드러누워 관중들의 축하박수를 받았다. 비록 졌지만 '아름다운 패자'였던 베르다스코 역시 나달 못지않게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나달-페더러, 모두가 기다렸던 결승전
베르다스코를 힘겹게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한 나달은 '영원한 라이벌'이자 세계랭킹 2위 로저 페더러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맞붙게 되었다. 지난해 7월 윔블던대회 결승전 이후 7개월여 만의 만남이다.
아직까지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없는 나달로서는 이번 결승전 승리가 무척이나 욕심날 것이다. 페더러와의 상대 전적에서도 12승 6패로 앞서있다.
하지만 호주오픈이 열리고 있는 하드코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흙으로 된 클레이코트에서는 상대가 없는 나달이지만 하드코트에서만큼은 페더러에게 2승 3패로 뒤쳐져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준결승전을 치르느라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무려 4년 넘게 세계랭킹 1위의 자리를 지켜오다 지난해 나달에게 빼앗긴 페더러로서는 이번 결승전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다. 나달에 대한 설욕은 물론이고 통산 그랜드슬램 14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으로 피트 샘프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서로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 나달과 페더러가 이번에는 과연 어떤 명승부를 보여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