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중년을 위한 '러브 판타지'의 가치

영화 <댄 인 러브>와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공통점

08.03.30 12:34최종업데이트08.03.30 12:51
원고료로 응원
iMBC/CJ엔터테인먼트

백마탄 왕자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런데 파트너가 엇갈려서 왕자는 '나이먹고 소박맞은' 아줌마와, 공주는 '나이 더 먹고 애까지 딸린' 홀아비와 사랑에 빠진다면? 제정신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요즘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는 이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속삭인다.

 

여기서 주인공은 왕자와 공주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못나고 평범한 자신들의 파트너로 하여금, 인생역전과 자아 갱생의 길을 안내하는 도우미일 뿐이다.

 

최근 한국의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소위 '아줌마 신데렐라'를 내세운 작품들이 부쩍 늘었다. SBS <조강지처클럽>, MBC <천하일색 박정금>과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이 대표적이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김지영 주연의 <내 사랑 못난이>나, 원미경 의 <아줌마>나, 오연수의 <두 번째 프로포즈>도 역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구체적인 전개상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대동소이하다. 구질구질한 일상 속에 오직 남편과 자식을 위해 촌스런 아줌마로 살아가던 여주인공이, 어느날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각성모드'로 회귀하여 백마탄 남자를 만나 일과 사랑을 모두 한손에 거머쥔다는 인생역전 스토리. 그야말로 10~20대 취향의 트렌디 드라마가 즐겨쓰던 설정에 연령대만 바뀐 것 뿐이다. 현실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들이지만 이 작품들은 대부분 높은 시청률을 거두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누렸다.

 

이들을 왜 '아줌마 신데렐라'로 부를까. 우리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집단으로 구분되는 중년 여성들은 흔히 여성성이 거세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한없는 모성, 살림하는 주부, 억척스러움같이 고정된 이미지로 소비되는 가운데 아줌마이기 이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본질적인 욕망은 은연중에 폄하되고 억압받기 일쑤다.

 

여기서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에서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는 자아발견뿐만이라 인생역전의 수단이기도 하다. '신데렐라'라는 표현에서 보듯, 여성에게 있어서 백마탄 왕자같은 남성과의 만남은, 신분적 상승과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지는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오직 살림만 하느라 사회생활에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 아줌마들이 일과 사랑 모두에서 당당한 여성으로 자립하게 되는 것은 모든 중년 여성들의 로망이라고 할 만하다.

 

아줌마들의 로망이 있다면, 아저씨들의 로망도 있다. 중년 남성을 위주로 한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여성들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사회적인 위상이나 신분적인 변화보다는 ‘평범한 남자VS 매력적이고 특별한 여성'간의 조합을 통해 남성성 내부의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아줌마 신데렐라 스토리는 있어도 아저씨 신데렐라 스토리는 없는 이유다.

 

중년들의 사랑하면 <사랑과 전쟁>류의 불륜이나 원조교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우리 나라와 달리, 할리우드에서는 중년은 물론 노년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발달해있다. 그것도 우리나라처럼 반드시 ‘미중년’이 아닌, 정말 배나오고 볼품없는 외모, 찌질한 스타일의 주인공들이 그와는 정반대인 멋지고 완벽한 파트너와 사랑에 빠진다는 미스터리(?)한 설정들이 많다. 애딸린 홀아비이거나 심지어 60대 할아버지라고 해도 상관없다.

 

영화 <댄 인 러브>는 '아저씨 로맨스'의 전형이다. 주인공 댄(스티브 카렐)은 딸 셋을 둔 홀아비에다가 외모나 성격도 전형적인 보통의 아저씨다. 그런 그가 매력적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다른 인물도 아닌, 친동생의 애인과 말이다. '폭탄급' 아저씨가 '퀸카' 주인공을 집적대는 것만도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인데, 심지어 제수씨가 될 여자를 건드린다는 스토리는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이라기보다는 추문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어둡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예정된 해피엔딩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달려있다. 여인에 대한 사랑과 동생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첫째라면, 그 다음은 평범한 남주인공과 대조되는 여주인공의 매력을 다각도로 전시하는 데 있다.

 

댄이 세월을 관통한 중년이라면, 마리(줄리엣 비노쉬)는 전형적인 미중년이다. 나이를 먹어도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에 탁월한 요리솜씨, 거기다 댄스 실력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완벽한 여자가 뭐하나 모양새나는 게 없는 아저씨를 지극히 사랑해준다는 점이다.이 정도면 모든 평범한 남자들, 혹은 연애와 무관한 노총각들의 로망이 아닐까.

 

오늘날 중장년층의 사회적-문화적 욕구가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되고, 그들의 현실적 욕망을 대변하는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발달하면서 중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젊은 주인공을 받쳐주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만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했다. 단순히 로맨스만이 아닌 중년들의 ‘자아발견과 회복’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포장까지 달고서 새롭게 진화한 것.

 

허황된 설정의 무분별한 범람은 문제가 되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무작정 비현실적이라고 타박하는 것만도 옳지않다. 나이는 먹었을지 몰라도 전혀 그 아줌마, 아저씨스럽지 않는 '미중년'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하여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신데렐라같은 인생역전의 신화를 만들어도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이 대중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갈망하는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8.03.30 12:34 ⓒ 2008 OhmyNews
댄인러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