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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축구에는 무슨 일이?

키워드로 보는 한국축구 2007

07.12.28 16:30최종업데이트07.12.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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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가의 기적] 올 시즌 포항의 우승을 점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정규리그 5위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포항은 단기전에서 경남, 울산, 수원, 성남 등 상위 시드팀들을 줄줄이 격파하며 통산 4번째이자, 무려 15년만의 정상에 올랐다. 포항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외국인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K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는 기쁨을 누리며 유럽축구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한국에 남미산 ‘삼바축구’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한 포항의 우승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가장 낮은 정규시즌 순위로 우승을 차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플레이오프 제도로 인하여 축구에서 정규시즌 상위팀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작용도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6강 플레이오프의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명장열전] 마지막에 웃은 자는 파리아스였지만, 올 시즌 한국축구에 몰아닥친 귀네슈 신드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터키출신의 명장 세뇰 귀네슈 FC 서울 감독은, 주전들의 줄부상 속에 첫해 플레이오프진출에는 실패했으나,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고언도 마다하지 않는 거침없는 입담과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한국축구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호 대전 감독은 최윤겸 전 감독의 폭행사태와 성적추락으로 어수선하던 대전을 추슬러 6강 플레이오프에 견인하는 기적을 연출하며 ‘김호 매직’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박항서 감독은 창단 2년차 도민구단 경남을 정규리그 4위로 견인하며 화제를 모았고, 허정무 감독은 리그 중하위권의 약체 전남을 2년 연속 FA컵 우승으로 견인한 실력을 인정받아 7년만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다음 시즌에는 한국 프로축구 9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출신인 ‘황새’ 황선홍 감독이 부산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하고, 경남을 이끌었던 박항서 감독은 허정무 감독이 떠난 전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돌아온 야인 조광래 감독은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경남의 새로운 선장에 선정됐고, 정해성 감독과 작별한 제주는 브라질 출신의 아뚜 베르지나스 감독을 선임하여 귀네슈(서울)-파리아스(포항)와 함께 내년 시즌 외국인 감독 삼국지를 형성하게 됐다.


[사건과 진실] 올 시즌 K리그에서는 한해 내내 각종 추문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대전 최윤겸 감독은 이영익 코치와 불미스러운 폭력사태에 연루되며 불명예 퇴진해야했다. 7년만에 K리그로 돌아온 안정환(수원)은 2군 경기 도중 서포터의 인신공격성 야유에 격분하여 관중석에 난입하여 징계를 받았고, 방승환(인천)은 FA컵 준결승 전남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윗통을 벗은 채 난동을 부리다가 1년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감수해야했다. 김영광은(울산)은 울산과 대전의 6강 PO경기에서 관중석으로 물병을 재투척하는 보복행위로 물의를 빚었다.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이운재, 우성용, 김상식, 이동국 등 베테랑 선수들은 대회 기간 중 현지에서 숙소를 무단 이탈하여 음주를 한 사실이 밝혀지며 여론의 거센 지탄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울산 현대 미포조선과 수원시청의 내셔널리그 결승전에서는 심판판정에 대한 논란으로 6명이 퇴장 당하는 파행이 일어났다, 촌극 속에 우승을 차지한 미포조선은 지난해 고양 국민은행에 이어 다시 한번 K리그 승격거부를 선언함으로서 한국축구의 숙원인 승강제에 찬물을 끼얹으며 올 시즌 사건-사고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베어벡, 그리고 외국인 감독] 핌 베어벡 감독은 취임 1년만에 아시안컵에서의 성적 부진과 여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선택했다. 베어벡 감독은 올림픽팀의 최종예선 진출과 수비진의 세대교체 등에서 나름의 성과를 일궈냈으나,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의 연이은 졸전, 지나치게 수비지향적 경기운영, 전술능력 부재 등으로 여론의 지탄을 피해가지 못했고, 선수차출 규정 등을 둘러싼 K리그 및 미디어와의 불편한 관계로 대표팀 감독 수행에 내내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베어벡의 사퇴로 ‘외국인 감독의 가치와 실용성’이 도마에 오르며 한국축구는 7년만에 국내파 감독 시대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라르 울리에-믹 매카시 같은 해외 감독후보군들의 영입 과정에 드러난 협회의 협상력 부재와 불확실한 선정기준, 박성화와 허정무 감독 선임과정에서 보여준 노골적인 K리그 무시와 주먹구구식 감독 선정의 행태는 축구팬들의 조롱을 피해갈 수 없다.


[무너진 각급 대표팀] 한국 대표팀의 2007년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베어벡 감독이 이끈 아시안컵 대표팀은 3위에 그치며 47년만의 정상탈환에  실패했다. 조별리그에서 1승1무1패로 탈락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대표팀은 결국 준결승에서 이라크의 벽에 막혔다. 특히 6경기에서 3골에 그치는 극심한 빈공과 3경기 무득점-승부차기 승부라는 진기명기를 연출하며 많은 팬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베어벡에 이어 올림픽팀의 지휘봉을 잡은 박성화 감독은 한국의 5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을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으나 6경기 4골, 막판 3경기 연속 무득점 무승부에 그치는 졸전으로 지휘능력에 대한 의문부호를 거두지는 못했다.


조동현 감독이 이끌었던 U-20 대표팀과 박경훈 감독이 이끌었던 U-17대표팀은 나란히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지만, 내용 면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조동현호는 브라질, 폴란드, 미국과 같은 ‘죽음의 조’에서 2무 1패로 선전하며 세밀한 기술축구와 탄탄한 조직력으로 새로운 ‘황금세대의 출연’을 예고했다. 그러나 박경훈호는 안방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세계축구와 현저한 수준차이를 드러내며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불과 2∼3년의 차이를 두 세대의 결정적인 차이는, 승리와 결과에 집착하는 학원축구 스타일의 한계와 일찍부터 유소년 축구시스템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동성과 창의성을 익힌 프로출신 선수들의 수준 차이라고 할만했다.


[해외파] 2007년 한국축구 해외파들의 전체적인 실적은 다소 저조하다. 박지성(맨유)은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하던 감격을 누렸으나 3월 31일 블랙번전을 끝으로 무릎 수술로 인하여 7개월간이나 전력에서 이탈해야만 했다. 설기현(풀럼)-이영표(토트넘)-이동국(미들즈브러)은 나란히 팀 내 주전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했다. 설기현은 레딩에서 풀럼으로 소속팀을 옮겼고, 이영표는 마틴 욜 감독이 해임되며 라모스 감독 체제하에서 다시 기회를 잡았으며, 이동국은 현재 방출위기에 몰려있다.


해외파 중 최고의 한해를 보낸 것은 단연 김동진(제니트)이었다. 소속팀 제니트를 러시아리그 우승으로 견인한 김동진은 러시아축구연맹 선정 최고의 왼쪽 수비수 2위에 올랐으며, 무려 3골을 기록하며 골 넣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이천수(페예노르트)는 유럽 이적시장 마감 직전인 8월 말 네덜란드 이적을 확정지으며 고대하던 유럽 진출에 성공했으나, 불과 2개월도 되기 전에 현지 적응 실패와 향수병 등이 도마에 오르며 한때 국내 복귀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2007.12.28 16:3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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