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권투선수의 부모님들은 대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자식 나오는 경기 안봐요. 자식놈이 얻어터지고 싸우고 있는 꼴을 어떻게 두 눈 뜨고 보겠어요." 권투뿐만 아니라 다른 격투기 종목 선수들의 부모님들의 마음도 다 이렇지 않을까?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런 것 같다. 곱게 키운 자식이 남의 주먹에 실컷 맞아가면서 그 고독한 싸움을 이겨내려 하는데, 마음이 안 찢어질 리가 있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힘겨운 싸움을 끝낸 아들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동안 그 고독한 싸움을 이겨내는 그 의지 하나만 믿으면서, 아들이 언제 쓰러졌냐는 듯이 일어나 "어머니"를 불러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건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최요삼 선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돈의 길에서 또다시 의지와의 싸움을 시작하는 선수와, 그리고 그런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 인생은 왜 그리도 모질고 험한 것일까? 레이 붐붐 맨시니와 김득구 유오성 주연·곽경택 연출의 <챔피언>이 기억난다. <챔피언>은 불의의 죽음을 당한 김득구 선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영화를 보고, 김득구 선수의 당시 대전상대였던 레이 붐붐 맨시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봤던 잊을 수 없는 대목이 있었다. 레이 붐붐 맨시니가 <챔피언>의 시사회에 초대됐을 당시의 이야기다. - 만일 김득구 선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건네시겠습니까?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만난다면 그냥 안아줄 것입니다." 레이 붐붐 맨시니가 말했던 그 '포옹', 그의 말대로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사내들 간의 뜨겁고 묵직한 포옹을 생각하자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고독한 싸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내들, 그리고 그들끼리 벌인 의지와의 싸움. 그 싸움이 가정을 그때 막 이루고 풋풋하게 살아가려 했던 한 사내의 목숨을 앗아갔다니, 세상에 이런 비극은 둘도 없을 것이다. 하늘은 비정한 것 같다. 열심히 살려는 자의 꿈과 희망을 비정할 정도로 앗아갈 수도 있음을 하늘은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김득구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비관해 음독 자살했다고 한다. 1897년에 있었던 월터 크루트의 사망 이후 3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불의의 죽음을 당하거나, 식물인간이 됐다는 기록도 있다. 의지와의 싸움, 그 치열한 싸움 끝에 비극을 당한 선수들. 하늘은 왜 그들의 꽃다움을 앗아간 것일까. 일어나라 임수혁, 일어나라 최요삼 최요삼 선수가 부디 김득구 선수의 뒤를 따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심각한 부상과 혼란 속에서도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일어나 버텨냈다는 최요삼 선수가 아니던가. 이런 의지를 가진 선수가 그토록 쉽게 맥을 놓을 리는 없으리라 믿는다. 그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꿈과 도전이 남아 있다. 그에게는 그 꿈과 도전을 일궈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의지를 전해줘야 할 의무가 남아 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아직 곳곳에서는 따뜻한 인간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프로야구 임수혁 선수를 위해 성금을 모아 전해줬다는 누리꾼들의 이야기, 정기적으로 바자회를 열어 성금을 전해준다는 동료 선수들. 이런 향기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떠나야 할 이유가 없다. 임수혁과 최요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싸움에 접어든 그들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속에서, 우리는 큰 기쁨과 희망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한참 더 살아야 할 사람들이며, 해야 할 일과 이뤄내야 할 도전도 많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을 향해 이렇게 든든한 가장이 앞으로도 오래토록 건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이 시련을 극복해야만 한다. 소중한 가족과 지켜보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나긴 꿈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동료선수들이 끝내 이종격투기로 진출할 때도, 끝까지 권투를 놓지 않았던 최요삼 선수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그 시절,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표본이 됐기에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권투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권투는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 쇠락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가 있다길래 반가웠다. 그 치열한 체중조절을 이겨내고 무대에서 꿈을 이뤄내고자 했던 그 사내가 있었던 것이다. 정정당당한 땀과 승부, 그리고 그로 인한 성공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던 사내였다. 이런 사내는 쓰러져서는 안 된다. 일어나서 우리에게 정정당당한 땀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최요삼 선수는 3일째 기나긴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최요삼 선수가 그 꿈에서 더 큰 의지를 발견해 가지고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삶은 먼 길이다. 그는 아직 그 먼 길의 반도 채 걷지 않았다. 그가 누려야 할 시간은 아직 그렇게나 많이 남았다. 강인한 의지로 그 길을 다시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외치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기를 기원했던 많은 사람들과 뜨겁게 안기를 기원해 본다. 도전과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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