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한번째 엄마'의 두 주인공. 영화배우 김혜수(왼쪽)와 김영찬.씨스타 픽쳐스 제공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요염한 '정마담'(영화 <타짜> 중)은 여기 없다. 배우 김혜수의 육감적인 몸매를 엿보길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설마 한 장면도 없겠어"라 생각하고 극장을 찾지 않길 바란다. 진짜다. 노출은 '전혀' 없다. 런타임 104분 동안 단 한 신(scene)도 없다. 이 영화, 잔잔한 감동을 주겠다는 목적에 꽤 충실하다.
없는 건 노출만이 아니다. 애어른 같은 아이 재수(김영찬)의 '열한번째 엄마' 김혜수는 이름이 없다. 그냥 '여자'다. 재수 아빠(류승룡)는 '그 여자'라고 부른다. 그녀는 '야'(부르는 소리)도 됐다가, 가끔 '미친년' 소리도 듣는다. 재수와 함께 있으면 그냥 '재수 엄마'다. 우리네 엄마들과 닮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름 대신 '~엄마'가 되는 모습 그대로다. 이름이 잊혀지는 게 서운할 법도 한데, 그녀는 재수가 "엄마"라고 부르자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진짜 엄마'가.
스토리는 대놓고 '뻔하다'. 유흥업소 생활을 하던 여자가 소년을 만나면서 뜨거운 인간애를 느낀다는 이야기다. 서로 마음을 나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불행이 찾아온다. 결론은? 지병으로 '엄마'는 죽는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나 지겹게 봤던 내용이다. 이 때문인지, 영화가 끝나고 나면 허전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연기자의 몫이 크다. 김혜수는 병든 엄마 역할을 위해 과감히 '생얼'을 드러냈다. 까칠하고 삭막한 이미지를 위해 머리도 짧게 잘랐다. 베개에 한껏 눌려 떡이 된 머리를 하고, 떡볶이를 게걸스레 먹는다. 틈만 나면 먹는다. 먹고 난 뒤에는 병든 닭 마냥 고꾸라진다. 백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숨을 거두기 전 "우리 재수를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선 '진짜 엄마'의 애틋함이 묻어난다.
류승룡의 손과 혀도 독했다. 잠을 자다가도 "씨발"이라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또 툭하면 어린 아들을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때린다. 행패 부리는 꼴을 보고 있으면, 정말 속이 타들어간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한 대 패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조연들은 보는 맛을 더한다. 특히 서른다섯 살 난 옆집 사는 동네 백수 백중 역을 맡은 황정민은 너무나 '찌질'하다. '삼디다스'(세 줄짜리 트레이닝복) 바지에 몸에 딱 달라붙는 팔 없는 조끼까지. 게다가 손은 조끼에 딸린 작은 호주머니에 항상 넣는다. 버려진 소파에 앉아 꽁초를 주워 피는 모습은 웃기지만, 왠지 슬프다. 어려웠던 백수 시절, 옛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 보기 불편하다.
머리맡에 놓인 작은 라디오에선 항상 같은 노래가 흐른다.
'참 많이 힘들어요/정든 그댈 떠나가기가/단 하루도 참아내지 못한 채 이렇게 난 슬피 울고 있죠/세월은 흘러 사랑도 가고, 아팠던 기억도 멀어지는데/사랑은 왜 하늘아래, 내 삶의 끝에서 헤매이는지/기억해줘. 너의 가슴에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다는 걸' (이승철 - 무정)
'무정'은 가수 이승철이 지난 2004년 발표한 7집에 수록된 곡(5번 트랙)이다.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와 단조로운 선율은 은근히 중독성 있다. 김진성 감독도 아주 제대로 빠진 듯하다. 덕분에 이 노래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다. 아니 들어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검색창에 '이승철 - 무정'을 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재미,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여자 친구의 눈물을 보고 싶다면 꼭 볼 것. 가보면 안다. 씨스타 픽쳐스 제작. 29일 개봉.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