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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과 초전자의 신들이 강림하다

현대의 신화, <트랜스포머>와 거대로봇물

07.07.28 15:46최종업데이트07.07.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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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후발주자들의 가세로 영화관에서 퇴장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트랜스포머>는 이미 전 세계에서 본전 이상의 이익을 거두었다. 속편의 제작이야 당연한 일이다(스필버그는 음흉하게도 '긍정적으로 검토'라는 정치인 같은 어법을 쓰며 속편 제작을 암시했다). 물론 예상대로 영화 비평가들과 영화 마니아, 진보 사이트 논객들도 이 영화에 다방면에 걸친 아낌없는 '다구리'를 퍼붓고 있다.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정치나 영화예술이 아닌 다른 면에서 보고 싶다. 우선 질문. 로봇물은 'SF'인가? 엄격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SF의 기본은 탄탄한 지식과 뚜렷한 과학관, 인류관의 결합이다. 아시모프의 소설 등이 진정한 SF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로봇물의 내용은 대부분 다 자유로운 상상이며, 과학의 눈으로 보면 오류로 가득차 있다.

로봇물의 원조 하면 역시 일본인데, 그래서 로봇물 속의 과학적 오류를 분석하여 독자에게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주려는 작업도 발달했다. 애니메이션 잡지인 <뉴타입>에서 연재했던 <공상과학대전>이란 칼럼이 있다. 내용은 주로 '마징가' 등 로봇물이나 울트라맨 등 이른바 '전대물'의 설정이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오류에 차 있는지를 유머를 섞어 설명한 것이다. 유명한 로봇물들 대부분이 이 칼럼 속에서 그야말로 뼛속까지 해부당한다.

 그레이트마징가와 파트너로봇 뷰너스A
ⓒ 미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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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마징가 같은 인간 체형의 거대 로봇은 애초에 만들 수 없다. 만약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마징가는 기세 좋게 적진을 향해 날라가기는 커녕, 약간 바람만 불어도 땅에 엎어져 추한 모습만 보이게 된다. 제대로 땅에 서 있으려면 마징가는 날씬한 다리가 아니라 풍만한 하체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발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어찌 소년들의 '로망'이 될 수 있겟는가?

마찬가지로 로봇들의 멋진 출격신이나 주인공의 스턴트 묘기를 떠올리게 하는 탑승 장면도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들이 쓰는 가지가지 멋진 무기들도 실제로 분석해 보면 절대 만들 수 없거나, 아니면 에너지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지거나(차라리 탱크나 전투기 같은 재래식 무기를 늘리는 것이 더 나을 정도다)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로봇물은 'SF'가 아니다. 그렇다면 로봇물은 어떤 장르로 넣을 수 있을까? 난 로봇물은 일종의 '신화'라고 생각한다. 거대 로봇은 강철을 뒤집어 쓰고 전자파를 후광으로 둘러친 현대의 신들이다.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
ⓒ 드림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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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랜스포머>로 돌아가 보자.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파괴와 정복욕에 가득찬 '메가트론'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크로노스, 또 조로아스터 교의 '선신'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 아리만을 연상하게 한다. 또 비교적 밝은 색깔에 친근한 느낌을 주는 '오토봇' 군단은 올림푸스의 신들, 육중하고 난폭한 '디셉티콘' 군단은 거인족들과 흡사하다.

서양 문화의 긴 흐름을 형성한 것이 바로 이 '빛-어둠'의 이분법이었고, 기독교 역시 이를 받아들여 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계관이 다시 현대 대중문화의 탈을 쓰고 나타난 것 중 하나가 바로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물이다. 인간은 언제나 주위의 사물에서 신들을 보았다. 과거에는 태양과 달에서, 나무와 돌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 고층 빌딩이 하늘을 가린 도시에서 사는 현대의 인간들은 이제 자동차와 건설 기계, 휴대폰에서 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거대 로봇 자체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소환'된 존재들이다. 외계에서 온 고도의 기계 생명체들, 또는 고대 초문명의 유산이다. 물론 본래 전공이 의심스러운 '박사님'이나 수상한 국가기관이 만든 로봇도 있지만, 그들도 고대 초문명 또는 외계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경우가 많다. 그도 아니면 최소한 적 로봇들이라도 외계인 내지 초고대문명의 후예다. <건담> 시리즈는 전혀 다른 경우다(이 시리즈는 로봇물 형식을 빌린 전쟁물로 봐야 할 것 같다).

옛부터 마귀나 악신의 위협이 닥쳐오면 인간들은 불을 피우거나 제물을 바치며 신들을 애타게 불렀다. 그러면 구름 저 너머에서 엄청난 힘을 가진 신들이 강림한다. 인간들은 그저 신과 악신의 싸움을 숨 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사악한 외계인에 맞서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정부도 군대도 부모도 아닌 지하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계전사뿐이다. 종교가 사라진 시대 우리의 새로운 수호신이다.

많은 경우 로봇물의 주인공이 어린 소년 내지 사춘기 청년인 것도 당연하다. 평범한 인간 무리의 기도만으로는 신을 불러낼 수 없다. 신과 교감할 수 있는 일종의 '영매'나 신의 힘을 받아 싸울 수 있는 '대행자'가 필요하다. 이런 자는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성이니 질서니 이익이니 하는 걸 따지며 이 핑계 저 핑계나 되는 어른들은 신의 대행자로 실격이다. 그러나 사춘기의 소년은 순수하다('착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생각하기보다는 행동하며, 맹목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이 에너지는 신을 섬기는 데 필요악인 '광신'과 '미칠 듯한 전의'로 발산된다.

기계 신들의 전쟁은 현대 인간들에겐 공포의 순간이지만 해방의 순간이기도 하다. 너무나 합리적이고 잘 조직되어서 도리어 지겨운 것이 도시와 현대 문명이다. 모험이니 탐험 같은 건 헛소리, 망상이 돼버렸다. 대부분 도시인들의 삶은 그저(높은 자들이 세뇌시키는) 수많은 '의무'와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도 못할) '이윤'의 추구, 그리고 (걱정해 봤자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 '장래'에 치여 살아야 하는 지겨운 회색의 나날일 뿐이다.

강림한 신들은 이 현실을 일격에 부숴 버린다. 그들은 시시한 현실 따위는 미사일이나 레이저 한 방으로 몽땅 날려 버리고, 대신에 용기, 사랑, 증오, 분노, 파괴욕 같은 원시적인 감정을 마음껏 표출한다. 세계는 다시금 장대한 서사시의 무대로 바뀐다. 위험하고 무서우면서도, 전율과 짜릿함이 있다.

기계신들은 우리 문명의 허위도 폭로한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대도시를 기초로 한 현대 문명. 그러나 현대 문명처럼 사실은 비합리적인 것이 없다. 근대의 대중은 자연의 질서에 아직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호기심과 탐구심도 현대인보다 더 컸다. 그들은 모험 정신과 열정으로 무장하고 자연의 진리를 탐구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모든 영역에서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극점'에 달하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
ⓒ 드림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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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은 이 엄청난 지식 중에 몇 가지나 과연 진정으로 이해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기본 원리도 모르면서 첨단 과학기술로 만든 기계들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자연의 신비' 따위보다는 증권투자, 10억 만들기에 더 매달린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말인지 고대 룬 문자인지 헷갈리는 이상한 공식 몇 개 갖고 가보지도 않은 우주를 설명한다는 현대 과학은, 중세 연금술을 능가하는 신비주의 철학이다. 우리 대중은 차라리 이해의 노력을 포기해 버린다. 자기 마을 안에서만 평생 살고 교회가 가르쳐준 대로만 살던 중세 유럽인들보다 나을 게 없다.

사실은 과학자들조차도 이제 자기 전공 빼고는 이해하는 것도 관심 있는 것도 없다. 그들은 그저 좀 더 박식하고 손재주가 많은 자들일 뿐이며, 그저 이윤밖에 모르는 재벌과 정치꾼, 전쟁에 미친 군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렇게 현대 세계는 사실은 중세 유럽보다도 더한 무지와 신비주의, 비합리 위에 세워진 세계며, 거대도시는 그 절정이다. 거대로봇이란 신들이 강림하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의 시대와 장소가 있을까?

그런데 <트랜스포머>는 로봇물 내에서도 엄연한 문화와 정신세계의 차이를 드러낸다.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과 오토봇들의 관계는 친구에 가깝다. 신이나 악마를 가지고도 농담을 할 수 있는 미국인들(<도그마>나 <마스크> 같은 영화·만화들), 엄숙한 '고급' 문화보다는 대중문화, '키치'와 친근한 그들의 특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로봇들은 무언가 거리감 내지 숭고함이 있다. 설령 겉으로는 친구 또는 파트너의 관계일지라도 인간 소년은 강대한 로봇에게 느끼는 경외심과 두려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믿고 두려워하는 일본인들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과연 한국의 로봇 신도들이 영화에서 만화에서, 또는 게임에서 구현할 새로운 신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트랜스포머 로봇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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