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포스터 ⓒ 화인웍스 영화 <마음이>를 보러 복지관으로 가는 길엔 뽀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올해 처음으로 내린 눈인데도 첫눈 치고는 정말 많이 내렸다. 영화관이 없는 양양이지만 군에서는 문화복지회관에서 가끔 영화를 상영한다. 지난주에는 <가문의 부활>을 상영했고, 이번 주에는 <마음이>를 했는데 남편은 애와 개가 나오는 영화라니까 흥미가 안 생기는지 컴퓨터 앞에서 하던 일을 하겠다며 안 가겠다고 한다. 또, 큰 애는 머리가 아프고, 뭐 어쩌고 하면서 안가겠다고 해서 작은애와 작은 애 친구, 나 이렇게 우리 셋만 가게 됐다. 솔직히 나도 그냥 애스러운 영화려니 생각하고 별로 기대도 안했다. 일요일 오후 좁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는 객석에 앉아 큰 스크린을 바라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왔지 정말 아무 기대도 없었다. @BRI@그런데 영화는 뜻밖에 강한 펀치를 숨기고 있었다. 꽤 힘이 센 영화였다. 얼마나 셌냐면 나 같은 무덤덤한 아줌마를 울리더니 그것도 모자라 우리 뒷자리에 앉아있던 껄렁껄렁하게 굴던 청소년까지 울리고 극장안의 모든 사람들을 다 울려 버렸다. 딱딱하게 굳은 가슴이던 시니컬한 가슴이던 메마른 가슴이던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적셔버리는 그 힘이 참으로 놀라웠다.초등학교 때 큰 집에서 봤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이후 영화 보면서 미친 듯이 운 영화는 <마음이>가 처음이다. 사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볼 때는 같이 영화를 관람하던 눈들이 있어서 이불 속에 얼굴을 숨기고 몰래 눈물을 훔치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명이 꺼진 깜깜한 객석에 있었고, 눈물 콧물 흘려도 볼 사람도 없었기에 정말 정신없이 울었다.영화 보면서 찔찔 짜고 있는데 어디선가 "꺼억꺼억"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뒷자리에 있던 불량기가 다분 있어 보이던 여중생이었다. 이 애는 영화는 볼 생각도 않고, 고개 들면 누가 죽이겠다고 했는지 고개를 바닥으로 쳐박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 애뿐만이 아니었다. 극장 전체가 그 옛날 이산가족 찾기에서 봤던 그 눈물바다로 변해있었다. ▲ 주인공을 맡은 찬이(유승호)와 마음이(달이) ⓒ 화인웍스 <마음이>는 예상했던 대로 애와 개가 나오고, 개가 보여주는 아이에 대한 충성심과 깊은 정이 주제였다. 거기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부모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아이가 키우던 개가 자기에게 보인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해 차갑게 얼었던 마음이 점차 녹아간다는 얘기다.오달균 감독과 박은형 감독의 공동 작품인 <마음이>에는 <집으로>에서 귀가 먼 할머니에게 치킨을 달라고 조르던 귀여운 꼬마 상호가 어엿한 소년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유승호군이다. '찬이' 역의 유승호군은 또래 아역 배우들에 비해 한결 진지한 눈빛을 가진 아역 배우로 <집으로>에서도 그랬지만 이 영화 <마음이>에서도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다.그리고 찬이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다른 배우는 바로 개다. '마음이'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달이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으로 우리나라 연기견 1호라고 한다. 아직 개의 연기에는 익숙치 않아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어색하다' '억지스럽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은 걸로 봐서는 무난한 연기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플란더즈의 개>나 <오수의 개>처럼 이 영화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에 관한 얘기다. 앞의 두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면 엄마에게 버림받고, 동생의 죽음을 겪고, 앵벌이들에게 학대당하면서 소년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다가 개가 보여주는 사랑으로 따뜻한 온기가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찬이는 <플란더즈의 개> 네로와 달리 기르는 개에게조차 마음을 닫아버리는 불신감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그런 소년이다.그러나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라는 모토를 가진 마음이는 자기를 버린 찬이를 찾아 밀양에서 부산까지 기찻길을 따라 '찬이 찾아 삼만리'에 나선다. 그런 마음이의 한결같은 마음에 차갑게 얼어있던 찬이의 마음도 녹는다. 외롭다고, 세상에 혼자 달랑 서있다고 여겼는데 자기를 언제나 바라보고 있던 마음이를 느끼면서 찬이의 마음이 열린다.<마음이>를 보면서 울었던 이유를, 내 눈물을 쏙 빼게 했던 게 뭔가를 생각해 봤다. 찬이가 버림받고 상처받는 게 불쌍해서도, 개가 주인 찾아다니며 고생하는 게 안돼 보여서도 아니었다. 마음이에게 감동받아서 울었다. 찬이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보이는 마음이의 순수한 정에 감동 받아서 마흔이 다 돼 가는 아줌마가 체통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눈물콧물 다 흘렸던 것이다.마음이는 정말 순수하게 주인을 사랑했다. 주인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는데도 여전히 주인을 사랑했고, 주인이 부자가 아니어서 자기에게 맛있는 걸 주지 않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사랑했고, 주인이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지 않고 정말로 순수하게 주인 그 자체를 사랑했다. 이런 순수한 사랑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가 있는가.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들어왔을 때 히말라야 봉우리보다 높이 부어오른 눈두덩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잠깐이고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면서 마음이 정말 깨끗해지고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울음에 다 떠내려간 것처럼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행복한 느낌이었다.올 해 처음 내린 첫 눈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이>는 내용 보다는 아마도 극장 안이 울음바다가 됐던 특별한 느낌과 영화를 보기 위해 오가던 눈길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추억의 한 장에 남을 만한 영화다. 한번쯤 실컷 울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