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제작팀이 다시 뭉쳤다.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가 7개월 만에 내놓은 신작 <맨발의 기봉이>는 정태원 사장이 제작과 각본에 관여한 것을 비롯하여 신현준·김수미·탁재훈이 가세했고, 음악과 편집, 스턴트와 특수효과 부문 또한 동일한 스태프가 참여했다. KBS의 <인간극장>에서 방영된 엄기봉(40)씨의 실화를 소재로 이 영화는 휴먼코미디를 표방했다. 시니컬한 글쟁이 'H'와 자칭타칭 투덜이 'L'이 영화를 보고 나눈 '<맨발의 기봉이>에 관한 수다와 딴지 한토막'. ▲ 영화 <맨발의 기봉씨>의 한 장면. "선배는 어떻게 안 웃어?" "기봉씨 보고 웃은 건 왠지..." L "선배는 어떻게 한 번을 웃질 않아? 극장을 통틀어 선배만 웃지 않았을 거야. 신현준의 연기가 그렇게 별로였어? 사람들은 신현준이나 탁재훈이 나오는 장면에선 다들 피식피식 웃음을 못 참던데." H "아냐, 원래 안 그렇다는 거 잘 알잖아. 극장에서 다른 사람 생각 않고 너무 크게 웃어서 탈이지. 그냥, 기봉씨 보고 웃는 건 왠지 장애인을 보고 웃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원래 이런 류의 코미디는 내 취향이 아니잖아." L "<맨발의 기봉씨>가 단순하게 코미디인가? 참, 혹시 <인간극장> '기봉씨' 편은 봤어?" H "응. 영화 보고 나서야 찾아봤어, 공영방송은 다시보기가 무료잖아. 실화 소재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궁금해지기도 했고. 근데 중간 중간 에피소드가 거의 똑같더라고. 많이 놀랐다니까." L "그렇구나. 뭐가 놀랐다는 거야. 영화는 영화일 뿐 소재가 같다고 해서 다큐멘터리와 똑같을 필요는 없잖아. 그런 점에서 <맨발의 기봉이>는 요즘 같은 시대에 주제만으로 나름 괜찮은 영화일 수도 있는 것 같아." H "응, 그 점에 대해선 나도 별로 이견이 없어. 근데 의도가 좋다고 해서 항상 좋은 영화일 수만은 없지, 그런 예들은 수도 없이 많고. <맨발의 기봉이>도 그런 영화의 운명을 걷고 있어." L "또 시작이네. 선배만의 그 개똥철학 딴지. 만듦새와 상관없이 '효'를 주제로 한 영화가 귀한 것도 사실이고, 그걸 노리고 만들었다는 걸 딱히 비난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H: "글쎄, 과연 그럴까? 난 아주 게으른 기획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기봉씨' 정도의 나름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의 유머를 섞은 범작을 만들었다는 건 제작진과 감독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어. 영화를 볼 때는 메말라 있던 눈물이 <인간극장>을 보면서는 어쩜 그리 줄줄 흐르던지." L "까칠하신 선배가 어쩜 눈물이라니. 영화랑 많이 비슷하다며, 근데 그렇게 달랐어?" "영화볼 땐 안 나오던 눈물이 <인간극장>에서 어쩜 그리 줄줄 흐르던지" H "기봉씨가 일기예보를 따라하고 야구중계를 하는 거나 집으로 돌아와서 형광등을 갈아주는 장면, 어머니 이름을 써 드리는 것도 똑같아.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종종 사진관에 들르고 훈련 중반에 종양을 발견하는 것이야 구성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 이해한다만. 심지어는 기봉씨가 흥얼거리는 노래 '노란샤스 입은 사나이'도 같더라니까. 과연 실화를 다룬 영화에서 이렇게 충실하게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를 줄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던걸." L "선배가 너무 실화라는 점에 집착하는 거 아냐? 사실 일기예보나 이름쓰기같은 것은 6~7살에 지능이 멈춰버린 주인공에 대한 일상 묘사로만 봐도 굳이 흠잡을 건 없잖아.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맹점이 관객들로 하여금 그렇게 실제와 영화에 대한 관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거야. 선배처럼." H "아니, 난 똑같았다고 해서 비난하거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어쩜 저리 리얼한 이야기와 소재를 가지고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느냐는 것이 의문이었다니까." L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또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거 아냐?" H "기봉씨가 비장애인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생각이 들만큼 극진한 효심과 마라톤이라는 드라마틱한 소재는 어쩌면 <말아톤>보다 훨씬 더 대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잖아. 형진이는 아직 젊기라도 하지, 기봉씨는 불혹의 나이라구. 근데 <맨발의 기봉씨>는 <인간극장>에 나왔던 실제 에피소드를 나열하는데 그쳤다는 거야. 정말 다큐의 시간순서와 엇비슷하게 내가 얘기한 소재들이 등장하더라니까. 실소를 금치 못했지." L "아, 그러니까 실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영화보다 훨씬 영화적이었다? 그런 뜻이야?" H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원래 <인간극장>은 이금희 아나운서의 호소력있는 내레이션의 힘과 실제 주인공들의 리얼함이 빚어내는 힘이 크잖아.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적인 플롯과 화면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거지. 아무리 도자기 틀이 좋으면 뭐해, 도자기를 빚는 장인의 솜씨가 받쳐줘야지." "다큐멘터리가 영화보다도 훨씬 영화적이었다구?" L "그럼 영화가 달라진 부분은 기봉씨에게 힘을 주는 사진관 아가씨와 기봉씨를 보고 변화하는 이장의 아들 정도겠네. 그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드라마틱한 부분을 강조하고 흥행을 고려해 탁재훈과 김효진을 출연시키기 위한 변형이겠구나. 참, 클라이맥스 장면은 어때? 기봉씨가 정말 쓰러지나? 조금 안타깝기도 했는데." H "실제로는 2500명 중에 170등인가 정도의 준수한 성적이던 걸. 물론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기다리고. 근데 클라이맥스 장면도 너무 밋밋하게 찍어서 안타까웠어. 사실 <인간극장>에서 기봉씨가 완주한 후 눈물짓는 이장님과 동네 아저씨의 그 얼굴이 난 더 찡하더라고. 영화에서 동네 주민들은 기능적인 부분에 머무르잖아. 휴먼코미디를 표방했다면 그런 디테일과 촬영, 음악으로 더 관객의 눈물을 짜내도 괜찮지 않았을까? 그래야 기획영화로서 흥행에 더 도움이 됐을 텐데 말이지." L "일부러 그런 극적인 부분을 자제했겠지. 어머니가 시골에서 달려오는 설정도 감동적이고 어머니의 환영을 본 뒤에 다시금 기봉씨가 일어선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봐, 난." H "영화 전반적인 얘기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말아톤>은 어머니와 동생, 코치와 아버지 개개인의 갈등과 변화에 자연스레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구성원이 존재했고 또 섬세한 연출이 설득력을 뒷받침할 수 있게 했지. 반면 <맨발의 기봉이>는 형제들이 모두 도회지로 나가서 노모와 기봉씨 둘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쉽지 않았을거야. 그렇다면 그 아가씨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이장 아들의 심리 변화는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렸어야 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더라구." L "근데 그 점이 배우들의 연기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아. 탁재훈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관객들 반응이 장난이 아니던 걸. 역시 TV에서의 희극적인 이미지가 흥행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아. 나름대로 조절에 성공한 듯도 싶고. 선배는 그 TV 프로그램도 안 보지?" H "아냐, 나두 영화배우들이 탁재훈이나 이휘재와 떠는 수다가 궁금해서 즐겨 봐. 근데 탁재훈이 나오면 으레 웃겨줄 거라는 믿음이 팽배해서 몰입에는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더라. 하긴 예전에 영화에서 박중훈이 가졌던 아우라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 '하야시' '황장군'이 기봉씨라니... 참 보기 좋아" L "난 신현준의 연기변신이 놀라웠고 그래서 더더욱 칭찬해 주고 싶어. 92년에 <장군의 아들>의 하야시로 데뷔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은 물론이구. 한 배우가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해지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아." H "신현준은 이 영화에 감독이나 배우 캐스팅에도 공을 들였더라구. 먼저 시나리오를 받고 감동을 먹었다나. 연기 자체는 나무랄 데 없고 훌륭한데 영화 전반적으로 보면 감정의 진폭이 너무 커서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실제 기봉씨와 비교해 봤을 때는 더더욱. 근데 영화가 웃음을 유발하는 지점을 기봉씨의 천진함으로 잡았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말이야. 김수미씨는 좋았어? 너 열혈 팬이잖아." L "응, <마파도>의 그 카리스마는 없어 아쉬웠지만. 그동안 코믹한 이미지로만 출연해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는 자제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던 걸. 여느 시골할머니처럼 더 극성스럽고 우악스럽게 표현했어도 상당히 설득력있게 보였을 것도 같은데." H "실제 기봉씨의 어머니가 더 그런 편이라고 할 수 있어. 영화 속 어머니가 훨씬 더 정적인 느낌이랄까? 기봉씨의 애틋한 효심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겠지." L "눈사람을 만들어 어머니와 사진을 찍는 라스트도 마음에 들었어. 배경도 너무 이쁘고." H "응, <인간극장>에서도 기봉씨가 눈사람을 만들지. 영화보다는 덜 이쁘지만 말이야." L "하여튼 가족과 함께 보러가기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인 것만큼은 분명해.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 데 없고. 선배도 어버이날 부모님 모시고 극장에도 가고 그래, 원래 불효자잖아." H "그래? 탁재훈이 방송에 나와 불효자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는 하더라."